촌스럽고 화려하게

夫婦之情

by 반달

순애 씨는 오늘도 곱게 단장을 한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형광등을 켜고 눈을 비빈 뒤 곧바로 화장실로 가서 세숫비누로 얼굴을 쓰다듬는다.


‘오늘을 맞이 함에 감사하자’


늘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순애 씨는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 본다.


‘곱다...’


80세를 바라보는 노인네에게 ‘고움’이란 젊은 시절의 빛남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름이 자글 하지만 억세지 않고, 눈꺼풀이 좀 내려앉았지만 총명함을 가리지 않는, 피부가 백옥 같진 않아도 세월의 살색이라면 그거대로 지금이 제일 젊은것이 아닌가.

봄이지만 아직 이른 아침은 쌀쌀한 날씨여서 방안의 히터를 켜고 화장대에 앉았다.

화장대라고 해봐야 마을 경로당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거울 하나 장 선반에 얹어 둔 것이지만 그거대로 멋이 있다. 딸내미가 사준 스킨케어 제품을 아주 조금 손에 덜어내어 얼굴에 고이 펴 바르고 손에 남은 잔향도 맡는다. 비싼 것 아니라 하지만 안다. 지 엄마 주겠다고 백화점 가서 샀겠지. 시장에서 상시 세일하는 매대 화장품 아무것이나 5천 원짜리 골라 바르면 그만인 것을, 노인네가 뭐 좋은 거 쓴다고 젊은이 될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맙지 않은가. 아까운 마음은 접어두고 조금조금 고마움을 덜어내 바르고 있다.

순애씨는 환갑 때 처음으로 가 본 해외여행에서 같이 간 여자들이 파운데이션을 하나 사길래, 그게 뭔지도 모르고 나도 덥석 하나 사 온 것을 꺼낸다. 거울이 달린 동그란 것에 순애씨 본인 얼굴을 포개어 톡톡 얼굴에 허연 가루가 묻어지면 조금은 이뻐 보이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시장통에서 산 분홍색 루즈를 입술에 바른다.


‘곱다... 고와.’


스스로 말해본다. 그간 살아온 세월이 나를 이렇게 더 곱게 만드는구나. 늙으면 늙은 대로 분홍색 루즈가 발린 순애 씨 입술에서 얼핏 17살의 모습을 본다.


순애 씨는 17세에 얼굴도 본 적 없는 신랑이랑 결혼 했다. 그땐 그랬다. 당연히 부모님이 가라면 가는 거고 여자는 시집이 인생 목표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순애씨는 결혼을 가고 나니 알았다. 순애 씨 말고 다른 여자가 있는 남자라는 것을. 시쳇말로 순애씨는 ‘첩’이었다. 근데 그땐 다 그랬다. 서럽고 속은 것 같아도 그래도 순애씨는 그 가정에서, 친정을 위해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했다. 순애씨는 딸 하나 낳고 이듬해 아들 하나를 낳았다. 큰어머니를 대신해서. 순애씨는 그러기 위해 신랑과 결혼을 했으니까 그 일을 했다. 그 외에는 그냥 식모처럼 집안일을 해댔다. 그래도 그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다행히 큰어머니는 순애씨 아이들을 잘 보듬어 주었다. 내 자식 만치라고 한다면 순애씨가 너무 억울할 테니, 그런대로 구김살 없이 아이들을 대했다. 아이들도 큰어머니와 친모인 순애씨 모두를 잘 따랐다.

아이들은 남편과 큰어머니 앞으로 호적에 올랐다. 남편이 순애씨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영자 앞으로 올려도 섭섭한 거 아니지? 당신 생각 내 안 하는 거 아니여.”

순애씨는 안다. 자신이 신랑에게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큰어머니와 사이가 껄끄러웠냐고 물어본다면 시어머니만 할까 싶다. 순애씨는 무던하고 순한 사람이다. 그만큼 안으로 마음을 삭히지만 본디 사람을 미워하는 원한 따위 담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큰어머니 또한 도량이 있어 순애씨를 배려하려 애썼다. 아이들에게 잘하고 순애씨에게 좋은 것 있으면 하나씩 내어주고 집안일도 거들며 도란도란 지냈다.

순애씨의 시어머니는? 그 시대 시어머니를 다 알지 않는가. 그래도 순애씨가 버텼던 건 아이들 덕분이다. 대를 이어 주어 그래서 순애씨는 그나마 시어머니 눈 밖에 날 일도 묻어졌다.

뭐.. 잘 사는 집도 아닌데 그저 농사짓는 평범한 집에서 순애씨는 소처럼 일하기도 하고 말처럼 달리기도 했고 양처럼 순하게 지내기도 했으며 닭처럼 어느 가족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 살림을 했다. 그게 일상인 사람이었다.

순애씨가 50세가 되어갈 무렵 시어머니가 1~2년 암을 앓다 돌아가셨다. 그래도 호상이었다. 순애씨는 시어머니 병수발도 했다.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순애씨에게 ‘아가’라고 불러주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했다. 노인네가 죽기 전에 고해성사인가 싶지만, 순애씨는 몇십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눈물이 났다. 이듬해에 큰어머니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 또한 암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 순애씨에게 돈 천만 원이 든 통장을 주며


‘자네 이제 내 그림자로 살지 말고 꽃 피면 꽃 보고 눈 오면 눈을 바라보면서 즐기며 살어’


라고 하며 갔다.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녀에게도 없는 살림에 천만 원은 큰돈이었으리라. 자신 또한 조강지처로 지내기 어려운 삶이 힘들었으리라, 순애씨는 십분 그녀의 마음도 이해한다.

이제 남편과 순애씨 둘이 남았다.

무던했던 남편, 무심하다고 말하기에는 삶이 팍팍했다. 이제는 자식도 다 키우고 진정한 부부가 되었으리라.


“늘그막이지만... 혼인신고 할까?”


남편이 순애씨에게 먼저 제안했다. 자식들은 찬성했지만 순애씨는 망설였다.

내가 그래도 되나...

그래도 이제 60세가 다 되어 가니 순애씨도 내 인생을 사는데 욕심 내어도 되지 않나 생각도 들어 60세가 되던 해 혼인신고를 했다.

환갑 기념으로 가는 해외여행을 보내며 남편이 순애씨의 손을 잡고 장에 갔다. 시장이라면 남자가 발 붙일 곳 아니라 생각하는 고지식한 양반이 순애씨의 고운 손을 잡고 시장을 다니며 순애 씨 옷을 골랐다.


“이거 참 화려하고 곱다. 당신에게 잘 어울리겠어.”


남편이 순애씨에게 꽃자주색의 꽃무늬 셔츠를 건넸다.


“아이고 이리 보는 눈이 없소? 촌스럽구먼”


피식 웃었지만 순애씨는 좋았다. 그리고 그 옷을 사서 여행 때 입고 가 사진도 여러 방 찍었다.

이듬해 남편 또한 암 진단을 받았다.


“이제 결혼한 신혼부부인데 아파서 미안해. 끝까지 당신 고생만 시키네.”


남편의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살아온 삶이 울었다. 응어리가 녹는 울음이었다.


“당신 이뻐. 내가 이뻐서 결혼한거여. 알지. 순애야?”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다.


남편 없이 또 십여 년을 산다. 적적함을 어린 날 외로움과 서글픔 어느 쯤에 묻고, 여전히 밭을 일구고 소일거리를 하며 산다.

남편이 사준 그 꽃자주색 꽃무늬 셔츠를 1년 만에 꺼낸다.


‘곱다.... 고와’


누가 보면 번진 꽃무늬가 촌스럽기 그지없는 화려한 시장표 셔츠. 딸이 ‘또 그 촌스러운 옷이아?’ 하는 그 옷. 아들내미가 ‘엄마, 십 년 넘게 입었으면 많이 입었다. 백화점 가서 옷 하나 삽시다’ 하는 그 옷.

곱게 입고 오랜만에 곁들여 아들이 사준 치마도 입는다. 꽃무늬 양말도 신고, 아침 고구마와 사과를 간단히 먹다 보면 시간이 벌써 7시이다.


빵빵!


밖에서 진한 크랙션이 울렸다.


“엄마! 엄마 가자! 차 막혀서 지금 가야 해요.”

“그랴, 가자.”


‘나 오늘 당신 만나러 가요. 당신이 사준 고운 옷 입고. 촌스럽지만 화려하게 하고 가요. 이쁜 순애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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