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의 달인

脣亡齒寒

by 반달

하루 삼시세끼 밥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곤혹스러운 일이다.

예전이라면 몰랐을까 지금은 적어도 아니라 생각한다. 외국에 가야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부터 체인점까지, 그리고 배달앱, 밀키트의 세계는 진심으로 현대인을 음식의 노동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있다. 손가락 몇 번만 까딱이면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심지어 커피를 타주는 로봇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집집마다 요리를 해주는 로봇이 나올지도 모른다.

신세계라 생각할 수 있지만 주부에게는 뭐랄까... 업무 하나를 뺏긴 기분도 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많은 여성들이 반기를 들 것이다. 요즘 세대에 무슨 요리가, 가사노동이 여성만의 일이던가.

맞다. 하지만 나 같은 가정주부에게는 객관적으로다가 주 업무 중 하나이다. 심지어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집안일하는 것도 적성에 맞다. 그렇다면 입장은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남편에게 유일하게 칭찬받는 일은 요리에 관한 건이다. 나는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해왔다. 요리를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면 행복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가정주부의 일은 빛나기 쉽지 않다. 남편은 나의 식사준비와 음식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당연한 일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또한 그러했다. 엄마의 음식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주에 한번쯤은 ‘엄마, 오늘은 짜장면 시켜 먹으면 안돼요?’ 그렇게 나의 마음에 돌을 던지곤 한다. 잔잔한 서러움은 마음의 수면에 여운을 남긴다. 나는 잠이 들 때까지 나와 대기업의 격차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정부모님의 입원으로 간병인으로 1달여 기간에 집을 비우게 되었다. 집 반찬을 바리바리 해 두려 하였는데 우리 집의 세 남자들은 나에게 자유를 주려는 것인지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인지 한사코 가서 간병에 집중하고 오라 했다. 그래... 나 없다고 밥을 굶겠니. 나만 내려놓으면 된다는 생각에 나도 가뿐히 가족을 벗어나기로 했다.


첫 1주는 전화 한 통화 없었다. 오히려 나의 전화 송신이 많았을 것이다. 애달픈 쪽이 먼저 손을 흔드는 법이다. 아이들은 목소리에 신남이 묻어 있었고 때때로 남편의 치맥과 새벽까지 자행된 콘솔 게임 행태를 고발해 주기도 했다. 내가 그들의 자유를 옳아 매고 있었나 반추되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가족 내에서 위치를 제대로 못 잡았나 싶었다. 없어도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는 존재. 그러나 지금은 친정에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존재. 누군가의 사이와 사이에서 과도기의 파도를 타고 있다. 부모님의 간병이 쉽진 않았지만 다행히 가족의 간병은 부모님도 나도 마음 한편을 가볍게 했다.

2주 차가 되면서는 서로 적응을 하여 적잖이 환자와 간병인의 호흡이 잘 맞았다. 부모님 수술 이후여서 간병인으로서의 나의 업무도 바빠졌다. 그러던 중 문득 든 생각. 여전히 나의 남편과 나의 두 아들은 나의 존재를 찾지 않는구나.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게 전화를 오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그만큼 매력적이면 된다. 자꾸 생각나게 하고 없으면 허전한... 그래서 자꾸 바라게 되는.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 걸까.

3주 차가 되자 작은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언제 와?”


평소 애교가 많지만 껌딱지는 전혀 아닌 아들에게서 들은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나의 질문에 작은 아들은 머뭇거리더니...


“엄마 밥 먹고 싶어.”


밥... 가족은 밥으로 이어져 있다. 따끈한 흰 밥에 겨울 내 새코미 영근 김치 한 점 올리면 엄마의 손길이 입안 가득 느껴지고 온기가 도는 것이 우리의 식연(食緣)이 느껴졌다. 평소 반찬 투정 하나 없이 잘 먹어주던 둘째 아들의 말에 갑자기 확 가족의 체온이 느껴졌다.


“아빠가 맛있는 거 안 사줬어? 짜장면이나 치킨 먹고 싶어 했잖아. 아니면 아빠가 밥 해주셨을 텐데.”


“아니 엄마 밥. 사실 아빠도 엄마 밥 먹고 싶대. 근데 엄마 내가 말한 건 비밀이야.”


“그래 알았어. 근데 외할머니 재활치료가 남아 있어. 외할머니 퇴원 시켜드리고 갈게. 미안해. 아빠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해. 알았지?”


“응, 엄마 빨리 와.”


별것 아닌 말에 나는 가족 속에 와 있었다. 우스운 일 일 수 있다. 내가 한 밥을 먹고 싶다는 한 마디에 마음이 왈칵한다는 것. 고작 밥 하나 때문에 나를 찾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족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 가족들을 위한 메뉴 고민, 그리고 언제나 집에 가면 따뜻한 밥이 있다는 믿음이 결국은 나에 대한 믿음으로 오버랩되었다 생각하고 싶다.

4주 차가 되었다. 친정어머니는 다행히 재활을 잘 마치셨고 집에서 요양하고자 퇴원을 계획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나는 퀭한 모습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가족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메뉴가 뭘까? 고민 끝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1달 내내 간단한 안부 말고는 전화 한번, 부탁 한번, 첫째 아들처럼 카톡이든 둘째 아들처럼 언제 오냐는 전화 한번 없던 그대에게 결국 다시금 내가 먼저 전화했다.


“다 좋아. 당신하고 싶은 요리 해. 편한 거로. 뭘 해도 당신은 집밥은 맛있으니까.”


“된장찌개에 불고기 해줄게.”


“그래, 좋아. 근데, 두루치기도 해 줄 수 있니?”


“그래. 알았어. 해줄게. 운전 조심히 와.”


“고마워. 집에서 보자.”


몇 마디 없지만 말투에서 안다. 남편은 이미 된장찌개의 단어에서 설레고 있었다. 두루치기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그 가족 속에서 더 굳건히 우리를 위한 요리를 할 것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리고 거대한 영광과 찬사가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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