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全心全力

by 반달

바람이 분다.

나는 바람이 불면 손을 하늘로 뻗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시간을 떠올린다. 오랜 버릇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일종의 스스로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 바람, 그건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일이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것이다.

이제 택배 일을 시작 한지 반년 되었다. 스스로 돈을 벌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직 세상에 익숙하지 못한데 나는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보육원에 맡겨졌었다. 결코 부모의 사랑이 더디거나 모자라진 않았다. 자식 사랑에도 현실과 이상이 달라 그 차이를 받아들이거나 좁히는데 실패해서 그래서 타협점으로 나를 위해 보육원에 맡겼다 한다. 나도 그 말을 믿고 싶다. 먹고사는 삶이 부모 또한 고달팠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미움과 분노를 품고 살지 말라고 했다. 가장 위대한 복수는 보란 듯이 성공하고 잘 사는 것이다. 나는 이 악물 것 까지도, 복수 따위라 생각은 없었지만, 보육원 세월은 가족이 없다는 면에서 사무치게 외로운 편이라 견뎠다는 표현이 맞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다정했던 수녀님과 짓궂지만 천진난만하고 세상의 속임이란 없는 녀석들과 부대끼며 지내와서 심심하진 않았다.

지금은 혼자이다. 철저하게. 일 특성상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말 섞을 일도 별로 없다. 그저 빠르고 정확하게 묵묵히 정해진 시간 안에 물품을 배달하면 된다. 내 성향에도 잘 맞는다. 몸이 아프지만 않다면 계속 이렇게 생각 없이 물품을 나르고 싶다. 그게 마음은 편하니까.

점점 날이 더워지고 있다. 나 같은 자립청년에게 택배일은 귀하긴 하지만 이런 더위에는 죽을 맛이기도 하다. 때때로 건물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을 느낀다. 바람은 손가락 사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손 마디마디를 휩쓸고 간다. 그 바람결 속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매서운 겨울 날씨에 한강 난간에 서서 진지하게 떨어질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혼자라는 내적 고립감에 사춘기 시절 사묻쳐 있었다. 그땐 그랬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밤 강바람에 손을 들어 손가락 사이 길을 내어주니 그 매서운 강바람도 고요히 지나갔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는 듯 천천히 그리고 숨죽여 지나가는 길을 느끼며, 그래.... 지금은 내가 살아 있음을 온전히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참 서 있다 돌아왔던 적이 있다.

언제나처럼, 바람은 그저 새로이 바뀌고 불어오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위안이며 길이며 살아가야 할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이따금 수녀님이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자립하게 되면, 뭐 할지에 대해, 그러니까... 꿈 생각한 거 있니?’

그때는 잘 답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한편으로는 지독한 1인가구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저 독립을 피하고만 싶었다.

‘혼자 시작하지만 혼자 아니라는 거 알지? 힘들면 언제든지 전화해라’

수녀님의 말씀에 마음속으로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혼자 지낸 첫날부터 줄곧 전화기를 만지작 거렸다.

세상에 버려진다는 것...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는 것.... 어떻게 해석할지는 나에 달려있는 것인데 그 마음은 언제나 긍정과 부정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럴 때 손을 들어 구해달라고 외치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내 손에 깍지를 끼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끄집어 내준다.

‘굳세게 살아야 한다’


못할 것도 없다. 택배 일 한다고 무시당할 필요로, 언젠가는 좀 더 꿈다운 꿈을 꾸며 살아가도 된다.

오늘도 더위에 지치고 택배는 여전히 차량에 쌓여 있다. 달리는 차에서 창밖으로 손을 내민다. 달리는 차에 달리는 바람, 그 손가락 사이사이 지나가는 바람이 ‘너 오늘도 잘 살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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