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한 뼘쯤은 위안이 있길

逆境不屈

by 반달

젖었다.


이런 날은 딱 질색이다. 비는 언제나 몸을 같이 내려앉게 한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에 냉혹을 더해 싫어하는 것들을 패키지로 보낸다. 굴곡 진 인생이라며 누구나 자신은 언제나 최악임을 곱씹는다.

일이 이제 알아서 찾아와 줄 법도 한데 이놈의 취업난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다. 이 또한 언제나 극단적 결말이라 생각하며 나는 한구석에서 예외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련하게 살아가는 이유를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집도 없고 이렇다 할 적금도 없고 소위 영끌할 자본이 없다. 부모를 탓하려는 것도 과거의 나의 소비성향을 되짚어 볼 이유도 없다. 그냥 근본적으로 없다. 이것 또한 극단적인가 싶지만 정말 그렇게 밖에 설명이 안된다.


‘저기에 올라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위를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뭐든 위로 가야 뭔가 풀리는데 나는 여전히 평지이다. 잘난 자식도 그렇다고 내가 기댈 수 있는 배우자도 내게는 없다. 그저 열심히 일만 죽어라 찾고 닥치는 대로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사람들 천지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뭐가 안 풀리면 울고 투덜대는 것이 가증스럽고 못마땅한 날이 대부분이다. 배알이 꼬이는 것이라 직언해 주는 사람도 없다. 철저한 사회적 고립은 마음의 고립까지 이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뺏겨보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외모의 한계는 그리고 가진 것의 힘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이쯤 되면 ‘쟤 참 최악이다’라고 혀를 차거나 ‘불쌍도 하여라’라고 연민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면 요즘처럼 냉혹하게 ‘그래서 어쩌라고, 너만 그러냐’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렴 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 향하는 곳에서 시작하니깐.

밑바닥 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그래도 무언가 부여잡을 동아줄을 찾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만 하면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수백의 일꾼들 사이에서 항상 생각한다. 이것만 나르면, 이것을 나르다 보면, 또 닥친 일들을 그냥저냥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하면 안 된다. 정말 불현듯 찾아오는 행운처럼 동아줄을 기다리는 것은 드라마 이야기이다.

게임, 여행, 애인, 운동, 가족....

이 중 하나를 고르시오라는 듯한 편협한 카테고리도 지겨워지는 때, 불현듯 내리는 비를 손바닥을 펼쳐 막아내며 이 한 뼘이 내 머리를 나를 보호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한 뼘...


20센티미터 내외의 작은 면적이 쓸데없이 커버린 나를 막아준다.

이 넓은 세상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지만 내 머리 위 내리는 빗방울들을 온몸으로 막는다. 처마 밑으로 들어가 젖은 나의 손을 바라본다. 질색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축축하지만 가여운 손. 그 손을 오래 바라보며 이 한 뼘이 오늘 나의 위안이었다 여긴다.

집에 돌아오자 별이가 꼬리를 마구 흔든다. 조건 없이 나에게 온 마음을 주는 착한 녀석이다. 사람들은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너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간식 앞에서 한 없이 무너지는 별이를 보며 ‘너도 별수 없는 거군’이라고 웃픈 미소를 지어 보인다.

대충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하릴없이 tv소리에 멍을 때리고 있으면 전화가 울린다. 엄마의 전화쯤은 가볍게 무시한다. 아니, 미안해서 받지 못한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자존심이 바닥이라 지금은 부모님을 멀리하고 싶다. 언젠가 성공 따위를 보장해 드리는 것은 아니므로,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다.

자발적 고립이 히키코모리를 만든다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자 하신다면 그것 또한 맞다. 적어도 복권 5천 원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얄팍한 행운도 기대했던 적이 있지만 그런 건 나한텐 오지 않는다 여기면 마음이 편안하다. 내 옆에서 얼굴을 갸우뚱하며 꼬리를 살랑대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에게도 내 한 뼘의 위안을 아낌없이 준다.

그 한 뼘으로 나는 얼굴을 씻고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그리고 그 한 뼘을 하나밖에 없는 내 가슴에 얹고 나를 토닥이며 잠을 청한다.

누구에게나 위안은 필요하다. 구닥다리 인생에도 셀럽 같은 걱정 없는 인생에도 잘할 수 있어와 잘하고 있다는 위안모두 안도와 힘을 준다. 내 손을 나 스스로 바라보며 나처럼 ‘오늘도 잘 부탁해. 넌 나에게 위안이야’라고 말해보자.


그 손이 비록 의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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