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반했다면, 그건 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刻苦勉勵

by 반달

길거리를 전전해왔던 삶에 전환점이 생긴 건 그날부터였다. 여느 때처럼 영역다툼에 밀려 이리저리 구역을 방황하던 내게 몸을 피할 장소를 내어준 그를 만나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보호’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그 따뜻함이 충만한 단어는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 상기시켜 주었고, 그렇게 사랑을 나누며 여러 날을 보냈다. 그 또한 태생부터 길거리 생활의 시작이었으니, 서로 처지가 가엽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또한 내게 처음부터 느낀 연민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리라. 연민에 가여움은 애착을 낳고 우리는 서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의 행복은 그림자처럼 슬픔을 가져오곤 한다. 그는 요즘 내내 기운이 없다는 나를 대신해 홀로 먹이를 찾으러 길을 나섰고, 그날 이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주변에선 흔한 일이니 단념하라 했고, 누군가는 애써 위로의 선물을 주기도 했다. 처음부터 쭉 혼자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슬픔을 나는 그날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날로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또다시 혼자가 아니니, 두 눈 질끈 하고 살아야 될 것을 알게 되었다.

따뜻하다 못해 햇빛이 잔인하리만큼 눈부신 날, 내 배 또한 점점 둥근 해만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뭘 제대로 먹어야 하지만 몸도 무겁고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이제 홀몸이 아니니깐,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곤두서는 신경을 어쩌지 못했다. 주변에 무언가만 스쳐도 하악질을 하는 나를 발견하며 스스로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하지만 나에게 혈연관계의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삶의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위해 온전히 내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배가 아파오지만 내가 사는 곳은 차가 씽씽 지나다니고 사람들의 부산스러움이 느껴지며 눅눅하고 어두운 곳이다.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의 따뜻한 사료 온기에 감사하면서도 혹시 독을 타진 않았는지 염려하는 것은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의 온기가 낯섦과 두려움을 타고 왔다. 자꾸자꾸 배를 핥으며 제발 우리가 무사하길 스스로 빌며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비는 매일을 거르지 않았고, 내가 지켜갈 때쯤 내가 방황하는 구역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우산을 쓰고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녀는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포근한 말투로


‘괜찮니?’


라고 물었다. 그 어떠한 말도 전할 수 없는 내 모습을 그녀도 이해한다는 듯, ‘내가 지금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어서, 집에 가서 따뜻하게 할 것 좀 가지고 올게. 너 여기서 기다릴 수 있니?’라고 했다.

비가 개일 즘, 그녀가 내게 다시 돌아왔다. 깨끗한 생수와 보드라운 담요, 그리고 적당한 사료는 마치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듯한 살림살이였다. 귀신 같이 나의 은신처 인근 처마에 이것들을 놓아주며 그녀는 ‘내일 너 또 보러 올게. 너 혼자 힘들 수도 있어’라고 하며 적당한 관심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무릇 사람이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존재였었다. 발로 차고 저리 가라 찌르고, 욕은 차라리 못 알아먹기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의 하찮음에 주변에 대한 경계는 당연한 태세이다. 그러나 뭔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게 되면 세상은 한 뼘 달라지게 된다.

그녀는 약속대로 내일도 왔다. 그리고 그 모레도 왔다. 조건 없는 떠돌이에게 주는 다른 종의 관심은 세상에 대한 마음을 열게 했다. 이제 산고를 슬슬 느낄 만한 시점에 만난 그녀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싶을 정도로 나는 온전히 그녀에게 몰두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출산일을 맞이했다. 오늘도 그녀가 도와주리라. 그녀 또한 나를 마음에 두었겠지.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왜일까.... 사고가 났을까? 아니면 오늘 못 올 사연이 있었나? 아니면... 나를 잊었을까...

이런 일로 슬프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넉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난 이제 정말 오늘내일 중 내 아기들을 만나게 생겼다.

다시금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누구든 믿지 말자. 믿음이 불행으로 바뀌는 순간에서 나는 빠른 판단을 해야 했다. 판단은 곧 생존과 직결된다. 나는 어느 주택가의 후미진 곧 지하창고에 자리를 잡고 통증 있는 배를 계속 핥았다. 그 순간 인기척이 났다. 검은 그림자의 할머니는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도 아닌가 보다. 헐레벌떡 자리를 떴다. 제일 서러운 것은 집도 절도 없는 것이다. 지금 집보다 안전함을 원한다. 곧 터질듯한 통증을 다시 부여안고 아파트 화단을 찾아 들어갔다. 조금 더 후미지고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눈물이 밀려왔지만 아껴두었다. 지금은 우는 것도 사치니까. 그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화단 안쪽 1층의 물이 똑똑 떨어지는 난간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을씨년스러운 비와 깎아질 듯 아슬한 처마 같은 블록이 불안한 내 마음을 기댈 곳이었다. 누구도 도움 주지 않고 도와줄 수 없는 삶. 어느 것 하나 행복하지 않은 삶 속에서 지금 나의 이 고통이 온전히 이어질 고통일지 다른 세상을 줄지는 낳아봐야 안다.

지나가던 동네 까마귀가 높이서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너도 고통을 낳고 있구나’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느꼈다. 나는 아마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자주 찾아오는 통증을 부여잡고 혼자서 비 내리는 오후를 끙끙댔다. 밤에 접어들자 비는 잦아들고 내 통증도 잠잠할 때쯤, 불현듯 강한 통증이 배를 압박하고 나는 있는 힘을 쥐어짜 내 첫째를 낳았다.

꾸물거리는 아가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그를 핥아주었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아가에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해.’


나도 모르는 본능과 행동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 둘째와 셋째를 낳고 기진맥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음에도, 아기들을 일일이 핥아주며 다독였다.

찬찬히 아가들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일련의 일들이 순간의 일처럼 지나갔다. 내가 세상에 반했다면, 그건 지금 순간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의 호의도 까마귀의 연민도 누군가의 놀라움도 아니다. 나는 어두 축축한 곳에서 세 마리의 내가 살아갈 이유로 인해 실오라기 같은 햇살을 느꼈다.

살아보자.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 일어날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질 테니.


cats_animals_photo_g_gatos_animales_a77_gphoto-469799.jpg!d

사진 출처: https://pxhere.com/ko/photo/469799

keyword
이전 16화인생에서 한 뼘쯤은 위안이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