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살아야 해

生死苦樂

by 반달

‘씩씩하게 살아야 해...’


남편의 그 말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방향이 되었다.

나는 어제 남편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령으로 백년해로의 로망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영변에 들었다.

나는 남편 밖에 없다. 부모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자식 없이 몇몇 애완동물을 기르며 사실상 한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았다.

슬픔이 거대하면 모든 마음을 덮쳐서 현실을 망각하기 마련이다. 지금 그런 상태이다. 누구 하나 남편의 가는 길을 도와주기에는 내 주변은 이제 공허함에 가득 차 있다.

남편의 담당 의사가 장례식장을 연계해 주었고, 나는 소박한 장례로 3일 장도 치르지 않고 간단히 끝냈다. 긴 시간을 위로하는 것은 나에게 사실 힘든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실은 수 없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목록화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었다. 감히 손을 대기 어려웠다.

혼자서 장을 보는 것도 은행일이나 간단한 전기 수선 등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사실 중요한 것은 마음일 것이다. 마음이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아직 여렸다.

나는 눈물이 많았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휴지를 얼마나 써댔는지 모른다. 옆에서 남편은 휴지를 뽑아 주며 웃으며 ‘눈물싸개’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의 울음을 바라봐 주고 위로해 주는 남편이 있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남편의 죽음에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마치 눈물샘을 막아버린 것처럼.

누구나 인생은 고달프다. 나도 그러했다.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못했다.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그래도 일은 있었고 둘이 먹고는 살 정도였다. 딩크족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인생 최대의 고비였다. 그러나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우리는 갖지 못한 수렁과 절망에서 둘의 힘으로 버텼다.

남편은 나보다 씩씩하고 어른스러웠다. 삶에 유연했고 고난에도 평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매 삶이 물속에서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오리발 같던 내게 남편은 고요한 물이 되어 주었다. 그런 반려자가 없다는 것은 다시금 내가 발버둥 치는 오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의 사망신고서를 들고 구청에 갔다. 행정처리에 딱딱한 공무원에게 괜스레 억하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는 그의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니 내 감정을 죽이는 것이 맞다. 뭐가 이렇게 허무한지.... 처리되는 것은 한순간이구나. 마치 죽음처럼.

몸이 고단했다. 누일 곳이 필요하다. 그 보다 마음이 쉴 곳도 필요했다. 내 집은 남의 집처럼 어색하고 고요하다. 가구며 살림살이가 변한 것이 없는데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 조각이 드리 누워 슬픔을 나눈다. 남편의 짐을 정리해야 할 것이 많지만 쉽지 않다. 그저 삶의 흔적이라고는 소박한 몇 가지의 옷뿐이겠지만 그건 이제 온전히 옷조각으로 치부하기에는 남편을 아른거리게 하는 의미 있는 물건이 되었다.

경비 아저씨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주머니도 건강 잘 챙기셔요.’

위로가 슬픔을 부를 때도 있다. 그 말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눈물을 뚝 흘렸다.

불 켜기가 어렵고 몸과 마음은 기댈 곳을 찾는데 기둥이 없다. 앞으로의 내가 걱정되는 것은 내 온전한 삶을 살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인 삶을 살았던 나이다. 가만히 주름진 내 손을 보며 포개어진 남편의 손을 어스름히 찾아본다.


‘씩씩하게 살아야 해...’


마치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아이에게,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누군가에게 하는 응원처럼 남편은 본인 없는 삶에 놓인 나에게 궂은 흙을 딛고 양지 마른 곳으로 가라 한다. 그 말을 수십 번, 수천번 대뇌 인다.

내일은 또 우리 집에 해가 드리울 것이다. 그 햇살을 딛고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 그게 내가 내일부터 할 일이

다.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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