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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ul 10. 2023

불을 찾아서 마지막 회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82


2화에서 이어집니다.


"로피 접속해 줘"


"모사! 무슨 일이야?"


"우리 다른 서버에서 산책을 할까?"


"어휴 또 그놈의 불 타령을 시작할 생각이구나! 알겠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둔 사막 서버로 장소를 옮겼다. 이곳은 로피와 내가 비밀얘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둔 공간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레거시 공간너머에 있다는 진짜 사막과 비슷한 환경으로 이 서버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비밀 공간으로 만들었는데도 종종 외부인들이 방문한다.


모래를 밟을 때 느껴지는 깔깔한 촉감, 건조한 바람,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 그리고 로피가 특별히 세심하게 만들어둔 오아시스.. 로피는 이곳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불'을 부활시킬 계획이야!]


[도대체 그걸 해서 뭘 하려고]


[중앙 통제 센터에서 불을 금지시킨 이유가 밝혀지겠지]


[너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분명 이 불이라는 것을 부활시킨다면 이 허상만으로 가득 찬 서버 세계의 환상을 깨줄 것이라고 생각해]


[이 서버? 이게 뭐 어때서?]


[우리가 느끼는 것들 보는 것들은 '실재'가 아니야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라고...]


[그게 뭐가 문제야? 이 사막이 실제 사막이 아니고 다른 모습이라는 게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데?]


로피는 오아시스를 거닐며 말했다. 자 이 대추야자를 먹어봐. 로피가 대추야자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내밀었다.


[어때 달콤함이 느껴져?]


[응... 입안을 가득하게 달콤함이 느껴져]


[대추야자 맛 설정 변경: 실제 레거시 버전]

로피가 식물 설정을 변경했다.


[자, 이제 다시 맛을 봐.]


[아.. 이건 지나친데?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아...]


[이게 바로 레거시 세계와 우리 세계의 차이야 우리는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이 세계를 만들었어.. 레거시 세계란 아직 이런 개선과 안정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조악하고 거친 곳일 뿐이야 그곳에 네가 찾는 '실재'는 없어]


[나는 그것이 중앙통제센터의 음모라고 생각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존재에 대한 가치는 서버가 아니라 레거시 시티 아니 그 너머의 실제 세상에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중앙 통제 센터의 외부 환경 탐사단을 신청해서 나가봐 대체 왜 불을 부활시켜야 하는데?]


[중앙 통제 센터를 따라서 그들이 만들어둔 패키지여행 같은 외부 세계 여행을 다녀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 나는 이 조막만 한 코쿤과 서버 속의 허상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를 바꾸고 싶어]


[휴, 너도 참 고집이 세다. 아무리 해봐도 소용없어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이 코쿤과 서버를 위협할 위협 요소는 모두 제거되었어.]


[그래도 분명 어딘가에 방법이 있을 거야. 그리고 불을 부활시키는 것이 실재와 존재의 이유에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난 믿어!]


[서버 메시지: 외부인들이 당신들의 서버에 방문하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방문객들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어머! 우리 서버가 점점 더 인기가 많아지나 봐]


[서버 메시지: 방문을 수락합니다.]


[로피! 외부인들을 받아들이지 마!]


로피가 방문을 수락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들어왔다. 외부 사람들은 로피가 만들어둔 오아시스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참 동안이나 칭찬을 했다. 로피는 신이 나서 그들을 이끌고 오아시스와 사막에 대해 알려줬다.


[서버 접속 종료]


나는 서버의 접속을 해체했다.  레거시 시티에서 알아낸 바로는 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금속끼리 강한 충격을 일으키면 불꽃이 튀는데 이 불꽃을 통해서 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본체의 생명유지를 위한 코쿤이 전부인 이 작은 공간에서 금속을 얻을 수는 없다. 서버에서 방의 구성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이 방의 일부가 금속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며칠 동안이나 꼼꼼히 살펴본 결과 문손잡이의 일부가 금속이었고 코콘이 금속이었다. 몇 시간 동안 매달린 끝에 문에서 손잡이를 떼어냈다.


"좋아! 이제 불꽃을 만날 수 있어!"


손잡이로 코쿤을 내려쳤다.  "깡!"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불꽃을 낼 수는 없었다. 코쿤에 다시 들어갔다.


[서버 메시지: 본체 관리 메뉴]


 - 본체 관리, 본체 능력 강화, 팔 근섬유 증가


 [서버 메시지: 근 섬유의 불필요한 증가에는 추가 영양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 실행 -


며칠 동안 코콘에서 본체의 팔 근육을 배양했다. 로피가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내 서버는 부재중으로 설정해 두었다. 로피는 걱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서버 접속 종료]


"좋았어! 근육이 배양되었군"


코쿤 옆에 내가 떨어트려 놓은 문고리가 보였다. 다시 집어 들었다. 배양된 근육 덕분인지 본체가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해볼까? 문고리를 다시 한번 코쿤의 외부에 내리쳤다. "깡!" 하는 더욱 큰 소리와 함께 뭔가 반짝 튀는 것이 보였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불쾌한 냄새가 느껴졌다.


'이거야.. 불은 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어.. 이 불꽃을  불이 머물 수 있는 자리로만 옮기면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어!'


- 코쿤 손상이 감지되었습니다. 잠시 후 수리 드론이 도착합니다.-


처음으로 코쿤 밖에서 나는 경보 소리를 들었다.


'역시.. 중앙 통제 서버에서 방해하는 군'


- 수리 드론이 당신의 집을 수리할 동안 코쿤 안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무슨일들을 하는지 지켜봐야겠어.'


[코쿤 본체 관리 모드 시작]


나는 코쿤에 들어가 서버에 접속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았다. 드론들이 내방으로와 문고리를 수거했다. 그리고 코쿤 외부에 내가 내려쳐 찌그러진 부분을 수리했다. 드론이 나간 뒤에 문고리를 봤더니 금속 부분이 더 이상 떼낼 수 없게 바뀌었다.


'중앙 통제 센터가 가만 놔둘 리가 없지'


집 안에 다른 금속 부분을 찾아 떼어내려고 시도해 보았다. 모두 너무 단단하게 붙어 있어 분리 할 수 없었다. 레거시 시티에 가서 금속 재료들을 찾아봐야겠다.


레거시 시티에도 역시 내가 사용할 만한 금속은 보이지 않았다. 열람할 수 있는 외부 정보 매체들을 내리쳐 보았다. 그것들은 부서질 뿐 금속처럼 불꽃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레가시 시티 손상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뭐 하시는 것이죠?"


중앙 통제 센터의 제복을 입은 관리원이 찾아왔다. 이름표에 '로메'라고 쓰여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찾는 게 있어서요..."


"레가시 시티의 물건들은 소중한 우리 모두의 재산입니다."


"죄송합니다. 손상된 부분은 제 개인 서버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정보 매체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고대의 유물입니다. 정보의 내용보다 더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부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그... 찾고 싶은 게 있어서요..."


"명백한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당신의 본체에 대해 불이익을 가할 수 있습니다."


불을 찾고 있다고 말하면 분명히 방해할 것이다. 뭔가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데... 본체의 손에 축축한 액체가 뿜어져 나오고 긴장으로 인해 팔 사이에서도 무엇인가 축축한 것들이 밀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팔!'


"제가.. 본체의 근육을 배양했는데 성능을 시험하고 싶었습니다."


"..... 근육의 크기가 상당하군요... 본체 사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더니.... 정말 특이한 취미군요"


"네.. 우리 선조들은 이 본체의 모습을 가지고 서로 차별을 하고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던데요. 저는 그 이유를 한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레거시 시티의 재산을 파괴하시면 곤란합니다."


"네..."


"당신이 레거시 시티에 온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상당히 자주 오셔서 과거 기록들을 살펴보셨더군요?"


'이런.. 낭패다.. 중앙 통제 센터에서 여기까지 추적을 하고 있을 줄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중앙 통제 센터 소속이긴 하지만 그들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로메라고 합니다."


로메가 손을 내밀었다.


"아.. 악수에 대해 모르시는군요? 저는 레거시 시티에 자주 오시길래 과거인들의 습관을 잘 아시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본체의 팔을 서로 접촉하는 것으로 과거인들은 서로 믿음을 확인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모사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본체를 만져보았다. 서버에서 느끼던 느낌과 비슷하지만 뭔가 달랐다. 내 본체에서 긴장으로 나온 수분이 로메의 본체에 묻는 게 신경 쓰였다.


"긴장하지 마세요.. 저 역시 당신과 같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여기 와서 당신이 찾아다녔던 기록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저와 같은 것을 찾고 계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불에 대해 아시나요?"


"당신 역시 이 서버를 파괴하고 싶으신 거죠?"


"네? 아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불, 폭발, 정화, 새로운 세계, 부활 이것이 당신이 찾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로메가 레거시 시티의 골동품 저장 매체에서 내가 검색한 시록을 찾아내 보여주었다.


"아 제가 찾았던 기록을 보셨군요?"


"모사 당신을 계속 예의 주시 했습니다. 당신의 코쿤룸에서도 약간의 파괴 행위가 있었지요?"


드디어 중앙 통제 센터에서 나의 행동에 대해 감시를 시작한 것인지 두려워졌다. 본체는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분을 뿜어 내었고 내부 순환계가 통제를 잃고 혈류량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 결과 몸이 붉어졌다.


"제가 중앙 통제 센터의 사람이라 생각하시는군요? 걱정 마십시오 얼마 전에 서버 전체에 내려졌던 사고사례 기억 하십니까? 외부 식물 반입에 대한 경고였죠?"


"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 이것을 좀 보세요."


로메는 중앙 통제 센터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녹색의 물체를 꺼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식물입니다."


"이 것이.. 식물?"


"냄새를 한번 밭아 보십시오"


"음.. 무엇인가 콧속에 두꺼운 안개 같은 것이 끼는 느낌이군요.. 서버에서 맡았던 향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아련한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느낌이군요"


"그것이 바로 실제 꽃 향기입니다.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죠"


"이것이... 진짜 장미, 그리고 그 향..."


"네 우리가 서버에서 맡고 있는.. 아니 맡고 있다고 착각하는 향은 이 냄새를 바탕으로 수백 년 동안 정제되고 변화된 향입니다. 나는 이 진짜 향을 되돌리기 위해 서버를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앗"


뭔가 번쩍이는 느낌이 손 끝에서 느껴졌다.


"조심하십시오 이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메가 황급히 장미를 빼앗아 갔다. 장미 줄기를 보니 뾰족한 가시들이 달려 있었다.


"저는 불이라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불? 불이라면 서버에서 밝기를 조절하거나 코쿤룸의 조명으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오 그것은 불에 한 속성인 빛입니다. 빛과 열이 불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물체를 변화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이나 서버에서 재미로 하는 게임 속 마법 같은 말이군요.. 불이 라는 것에 그런 힘이 있다구요?"


"네 저는 이 레거시 시티에서 그 증거들을 찾아 모으고 있었습니다. 식물이 죽고 나서 수분이 없어진 본체에 불이 머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장미를 발견하고 지키기 위해 중앙 정보 통제국의 감찰관 자리를 포기해야 했죠... 저는 사람들이 이 장미를 본다면 분명 실제 세계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두려움과 배척뿐이었죠... 서버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이미 실재하는 세계에 살아갈 힘을 잃었을지 모릅니다."


"그 식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 식물은 분명 불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모사씨... 죄송하지만 그 불이라는 것은 레거시 시티 외부에서는 매우 흔한 것입니다. 그 불이라는 것이 우리 세계의 큰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로메씨 당신은 불... 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중앙 통제 센터의 외부 세계 감찰관이었습니다. 우리는 외부의 에너지와 자원이 이 코쿤과 서버가 있는 곳으로 문제없이 유입되도록 관리하고 외부의 위험 요소를 미리 제어하는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외부 세계에 자주 나가지요.. 그 불이라는 것도 꽤 자주 보았습니다."


"그 불은 어떻게 생겼나요? 어디서 찾을 수 있죠?"


"음... 종종 우연히 발생하기도 하고 과거 유적들에 들어가면 종종 불을 만드는 물건을 줍기도 합니다."


"혹시.. 그 물건을 제게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중앙 통제 센터는 코쿤 시티 내부에 불을 가져오는 것을 엄금했습니다. 본체에 영양을 공급하고 본체를 유지하는 코쿤 내부의 액체가 불에 매우 취약하다고 합니다."


"역시.. 불이라는 것이 결국 이 세계를 다시 만들 수도 있고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군요! 그래서 우리는 불이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모사 당신에게 이 장미를 주겠습니다. 제가 그 불을 만드는 물건을 발견하고 당신에게 가져다줄 때까지 그 식물을 잘 보관하도록 하세요. 그 식물이 불이 머물 자리가 될 것입니다."


로메는 나에게 장미를 주고 떠났다. 코쿤 속 시간으로 21일이 지난 뒤 이곳에서 다시 만나 불을 만드는 장치를 준다고 하였다.


"로피! 로피 어서 접속해 봐!!"


"무슨 일이야 모사... 며칠 동안이나 접속도 안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우리 다른 서버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제발.. 이제 그 불 얘긴 듣고 싶지 않아"


"로피.. 이버에는 네가 좋아할 식물 얘기야"


"모사 네가 식물에도 관심이 있었어? 어떤 식물 얘기인데?"


"장미야.. 나는 장미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모사... 네가 장미 얘기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이 서버 내에서 장미에 대해선 아주 큰 권위자라는 걸 알고 있지? 네가 만든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만들어낸 사막의 여왕이라는 내 장미가 서버 내에 모든 장미 이미지를 바꿔 놓은 거 알아?"


"아니 나는 장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말하고 싶어.. 장미의 모습이 서버에 업로드되었던 최초의 그 원본 말이야."


"장미의 원본?"


"그래 우리가 수백 년 동안 우리 마음대로 바꿔온 그 수많은 장미가 아니라 서버에 업로드되기 전의 진짜 장미 말이야."


"좋아 그 정도라면 내가 관심을 가져볼 수 있지"


[서버 접속: 사막 접속 대상: 비공개]


[모사 자 보여줘, 너의 그 태초의 장미]


[여기선 보여 줄 수 없어]


[어째서? 이미지와 정보를 불러와봐 정말이지 궁금해 처음 업로드 되던 장미의 원형, 어떤 색이고 어떤 향이지? 그리고 어떤 촉감일까? 맛은 어떨까? 내 사막의 여왕보다 붉을까? 더 향기로울까? 더 맛이 있으려나? 잎사귀는 어때?]


우리가 만나고 있는 오아시스에는 모사가 만들어낸 사막의 여왕이라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달콤한 사막의 여왕의 향이 오아시스에 넘실거렸다. 검은 잎사귀와 하얀 줄기에 도드라지게 피어난 빨간 장미는 사막의 풍경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진짜 장미는 잎이 녹색이야. 그리고 꽃잎의 색은 빨간데 갈색이 좀 섞여있어]


[빨강에 녹색이면 촌스러운 보색인데... 그게 원형의 장미라고? 그럴 리가 어서 이미지를 보여줘]


[할 수 없어 로피.. 장미는 내 코쿤 방에 숨겨져 있어.]


[뭐? 너 지금 진짜 식물을 말하는 거야?]


[응 너 저번에 외부에서 식물을 반입하다 처벌받은 사례 기억나?]


[기억나지...]


[그 사람을 만났어 로메라는 사람인데, 가끔 레거시 시티 외부에 나갈 수 있다더군.. 그 사람이 가져온 게 장미야]


[정말이야? 정말 보고 싶다. 그 색깔, 촉감, 향, 맛, 어떨까?]


[서버 시간으로 21일 뒤에 본체를 사용해서 내방으로 올 수 있어?]


[본.. 체로?? 나는 내 본체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어렵지 않아. 서버 밖은 서버의 세상보다 훨씬 단순해. 본체를 사용해서 코쿤을 연 다음 내 방 번호를 찾아와 내 방은 GR-10002-B-3이야]


[알겠어 서버 시간 21일 뒤라고? 기대된다. 그럼 그때 봐]


로피는 접속을 종료했다. 이제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코쿤 옆에 걸어둔 장미는 이제 다 말라서 녹색이 사라지고 갈색의 바스락 거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겉 모습이 변했지만 장미라는 그 본질은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향기도 여전했다. 이제 로메가 불을 가져오면 이 마른 식물의 잔해에 불이 머물 수 있을 것이다.


21일 뒤 로메는 나에게 작은 밝은 색의 막대 같은 물건을 주었다. 안에는 무엇인가 액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그 윗부분은 금속으로 되어있었다. 금속의 동그란 부분을 빠르게 돌린 뒤 아래의 플라스틱 버튼을 누르면 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로메는 말했다.


[절대로 코쿤의 수용액에 불을 가져가면 안 됩니다. 코쿤 수용액과 불이 닿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몇 백 년 전의 중앙 통제 센터에서 불을 금지했다더군요. 이 장치도 반입이 금지되어있습니다. 당신이 이 불을 통해 무엇인가 이 서버를 바꿀 것을 찾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무리 바라봐도 모르겠더군요..]


로메는 사라졌다. 며칠 뒤 전체 공지로 추가 안내받은 사항으로는 외부에서 위험 물질을 반입한 테러세력이 잡혔다는 공지가 돌았다. 그 방에서는 다량의 위험 물질과 허가받지 않은 외부 식물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서버 세계에 지대한 위험을 줄 수 있는 물품들이었고 그 테러 유발자는 본체가 영원히 서버와 분리되었다고 했다. 로메가 잡힌 것 일까?


똑똑똑


"누구세요?"


"모사! 나야 로피"


"로피! 앗"


로피의 본체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서버에서 보던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로피의 본체는 주름이 잔뜩 졌고 하얀 머리카락에 피부의 모습이나 신체의 비율이 이상했다.


"내 본체는 너무 오래되어서 모습이 흉하지? 여기까지 오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


"고마워 로피"


"모사 장미는 어디 있지?"


"이거야 로메에게 받을 때는 녹색에 붉은색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갈색으로 변했어"


"이것이... 장미..."


"아직 향은 남아 있어 맡아봐!"


"이 향은 뭘까.... 이 간지럽고 부드럽고 사막의 향같으면서 저 멀리 약간은 시큼한 것이 장미의 향일까?"


"로피, 그리고 드디어 불을 찾았어."


"불을?"


나는 로메가 준 물건을 꺼내어 보여줬다. 로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막대를 살펴 보았다.


"독수리당구장"


"뭐라고? 로피?"


"나 고대언어 몇 개를 배웠거든 이건 한국이란 나라의 글자야 제일 배우기 쉬워서 배워 뒀어."


"무슨 뜻인데?"


"아무 뜻도 없어. 독수리라는 조류와 당구장이라는 과거 놀이의 합성어야"


"무슨 암호나 경고 같은 게 아닐까?"


"숫자가 쓰여있긴 한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02-727-5525야"


"불을 나타내는 뜻일까?"


"불을 만들어봐 너 만들 줄 아는 거지?"


"사실 네가 오면 만들어 보려고 기다렸어.. 자 이제 만들어 보는 거야"


나는 로메가 알려준 대로 시도해 보았다. 불꽃을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불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리 줘봐"


로리가 빼앗아 가더니 다시 몇번 동그란 금속을 돌렸다. 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 생일 축하 아이콘 같은 것이 나타났다.


"와! 이게 바로 불이는구나! 앗 아파!"


나는 불에 손을 댔다가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본체의 손이 흉하게 변형되었다.


"이것 봐 로피 손의 모습이 변했어.. 그런데 너무 아프다."


"모사..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


"로피 이 장미에 그 불을 가져다 대봐 장미가 무엇으로 변하는지 알고 싶어"


"응."


로피는 다시 독수리 당구장 막대로 불을 만들어 장미에 가져다 댔다. 장미에 불이 닿자 신비한 향이 나기 시작하더니 장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와!! 이걸 봐 불이 장미의 모습을 바꾸고 있어. 본질을 바꾸고 있어!"


"모사 불이 더 커지고 있어!"


- 화재 경보 / 화재 경보 / 코쿤룸에서 화재가 감지되었습니다. 코쿤 수용액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십시오! 소방 드론이 올 때까지 본체는 절대 코쿤 수용액에 닿지 마시길 바랍니다. 코쿤 수용액은 휘발성 물질입니다.-


밖에서 알람 소리가 들리더니 소방 드론이 들어왔다. 드론은 나와 로피를 거칠게 들어내었다. 이대로 불을 잃을 수는 없다. 나는 불이 붙은 장미를 코쿤 수용액에 던졌다.


-

-

-

-


우리는 최초로 불을 가져다준 프 로메 테우스와, 호 모사 피엔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오스트랄 로피 테쿠스를 기리며 다시 동굴에 불을 쓰고 남은 재로 벽화를 그린다. 우리에게 불을 가져다준 세 영웅을 기리며 우리는 불의 상징인 독수리와 장미를 우리의 상징으로 여기에 그린다.

 

-최초의 동굴에 새겨진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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