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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구함 Oct 05. 2022

나는 주식 대신 육아일기를 증여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물려줄 글다발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증여 얘기가 나왔다. 주식을 사서 준다는 친구들이 많았고, 좀 사는 친구는 토지 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 또한 주식 열풍에 휩쓸려 딸에게 준다는 명목으로 삼성전자와 카카오를 몇 주 사면서 주식에 발을 담그게 됐다. 시간이 지나, 강원랜드 앞에서 서성이는 김 모 씨의 표정으로 이름이 예쁘고 멋진 잡주와 잡코인을 사는 나를 발견했다. 도박꾼들의 평범한 말로가 그렇듯이, 결국 미친 수익률을 기록하며 돈 복사가 아닌 돈 삭제의 짜릿한 맛을 본 후에야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빠 왜 그때 비트코인 안 샀어?라고 물어보면

어~ 아빠는 비트코인 안사고 잡코인 샀었어~ 근데 그거 다 없어졌어~ 라고 변명할 준비가 되었다.


  

나도 딸에게 증여란 걸 해주고 싶은데 증여할 돈이 없다. 물론 통장에 몇 백 정도야 있지만 그걸 증여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쓰기엔 너무 작고 민망한 돈이다. 최소 몇천은 돼야 증여가 아닐까. 증여할 돈을 모으는 일은 딸내미 시집보낼 때까지 계속 해야 할 일이고, 나는 다른 것도 주고 싶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시간 동안 내가 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그러다 오은영 선생님이 강의에서 했던 상담자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와 어색한 사이였던 딸.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쪽 끝에서 덩치가 큰 남자가 오고 있더래요. 아버지였대요. 아버지를 본 순간 발이 얼어붙었대요.  

그 순간 아빠~ 이러고 달려가야 될지, 아버지 다녀오셨습니까 해야 될지, 어째야 할지 몰랐던 거예요. 아버지가 싫진 않았지만 이 분과 아버지 사이에 실질적인 상호작용이 부족해서 당황하고 긴장했던 거죠.

그런데 저쪽에서 걸어오던 덩치가 큰 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줍더래요. 그래서 딸이 뭐를 하시는 건지 쳐다봤대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허리를 세우더니 걸어오시더래요. 어느 순간 바로 앞에 딱 멈추시는 거예요.

아버지를 올려다봤는데,
아버지의 손에 들꽃 다발이 들려있던 거예요.
딸을 보고 아버지가 길에 있는 들꽃을 꺾은 거예요.

들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엉성하게 엮어서 윤지야 하며 꽃다발을 탁 안기더래요.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마음은 사라지고 눈물이 왈칵 나더래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안기면서 보고 싶었어요 했대요. 아버지가 자기를 꼭 안아주는데 아버지와 자기 사이에 퍼지던 들꽃 향기가 너무 좋았대요. 그리고 그 향기를 잊을 수가 없대요.

한 5분 남짓의 시간이었는데 자기가 우울할 때면 언제나 그 들꽃 향기가 떠올랐대요.
그 향기를 떠올리면, 그때 나는 너무 행복했는데 마음이 너무 따뜻했는데, 그런 날이 다시 오겠지 마음을 추스르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대요.  


영상 링크는 아래



글로 적어 보니 정말 별 것 없는 이야기인데 코 끝이 시큰해진다.

아버지의 사랑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져서 아닐까.   


분의 아버지가 들꽃을 모아 안겨준 것처럼, 나는 딸에게 내 글들을 모아서 안겨줘야겠다.

서툰 솜씨지만 일상의 기억들을 주워 글다발로 만들어줘야지. 행복한 기억, 아픈 기억, 조금은 창피한 기억들을 기록하고 내보이는 일은 어쨌거나 우리 가족을 들꽃 가득한 행복으로 인도해줄 거다. 생각해보니 글이 조금 더 밝아져야 할 것 같긴 하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스스로 정한 목표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이다. 일주일에 글 하나를 쓰면 한 달엔 4개, 일 년엔 48개의 글이 생기겠지. 그러다 보면 나 자신도 성장하고 그보다 더 딸은 성장해 있을 거라 믿는다. 물론 나는 그만큼 새치가 늘긴 하겠지만 딸이 한글을 읽게 되고, 단순히 한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이해하고, 글 뒤에 비치는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껴준다면 그것으로 딸은 미래의 일상을 버텨내겠지.


오은영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온 상담자처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던 내 딸의 마음이 어느 날 팡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아빠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해주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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