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을 먹거나, 설거지를 할 때 침착맨을 챙겨보는 나의 관심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모를 리 없었다.
코로나로 빠진 조세호를 대신해 갑작스레 출연한 침착맨은, 역시 그 누구보다 침착했다.
과감한 애드립, 선을 넘지 않는 침투력, 그리고 무엇보다 침착해 보이는 여유.
보는 내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나였다면,
섭외 전화를 받은 그 순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을 거다. 아니지. 나는 아마 섭외 전화를 받고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결국 출연을 거절했을지 모른다. 유퀴즈에 내가? 내가 나가서 유재석 옆에서 서브 엠씨? 조세호 역할을 대신한다고? 만에 하나 출연을 결심한다고 해도.
아마 유재석이라는 거성 옆에서, 그리고 족히 20대는 돼 보이는 카메라 앞에서, 나는 뚝딱 소리만 내다가 통편집이 되는 결말을 맞았을 거다.
다행이다. 섭외 전화를 받을 일 없는 30대 평범한 아저씨라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새로운 친구를 사귈 일이 없었고, 없고, 아마도 많이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일로 만나는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니까 논외다. 그런 나에게 새롭게 생긴 친구 중 하나가 바로 침착맨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 피곤한 내가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을 때 만나는 친구, 이병건.
그 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
세상의 모든 책을 뒤져도 이보다 긍정적인 기운을 갖고 있는 다섯 글자가 있을까?
이 문장을 듣고 난 후부터 내 인생은 조금 더 편해지기 시작했다. 팀장이 나를 갈궈도, 후배가 이해 안 될 짓을 해도, 딸의 사회성이 늘지 않는 것 같아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크고 작은 어떤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나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어떨 때는 근데 왜 오히려 좋지? 라는 반문이 생기기도 했다. 엥? 반문이 생겨서 오히려 좋네. 뭔지 모르지만,
오히려 좋아!
이러한 오히려 좋은 기계적인 오히려 좋아적인 내 반응은 나에게 오히려 좋은 여유를 오히려 좋게도 가져다주었다. 뭐랄까 이제는 저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 건지 조차 헷갈릴 정도의 미시감이 일어나서 오히려 좋다.
생각이 많아 무거웠던 머릿속을 한 번에 정리해 준 적도 많았다. 침착맨이 침착한 이유도 어쩌면 저 태도 때문이 아닐까 추정했다.
마흔을 약 2년 앞두고 아내와 나는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오메가 3와 비타민 C, D, 그리고 유산균까지.
영양제를 먹을 때마다 나는 저 문장도 함께 챙겨 먹기로 했다. 내 마음에 주는 영양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