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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Sep 30. 2022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는 달처럼

줄과의 혼연일체

우리가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된 전학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정성껏 쓴 손 편지뿐이었다.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근처 외국인 학교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에 오래 동안 살다 보니 한국에서의 교육 방식이 많이 낯설었나 보다. 우리가 전투적으로 고무줄놀이에 임했던 것도 어쩌면 없는 시간에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숨통을 좀 트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미안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의 학습 환경에서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전학생도 이게 맞는 선택인 건지 확신에 차지 않는 듯 혼란스러워 보였다. 사진 속의 전학생은 치어리더를 할 정도로 활달하고 활기차 보였었는데 여기서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조용해 보였다. 어쩌면 마음속에 야생마 같은 자유로움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맞는 환경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전학생에게도 오히려 더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이 마지막인 거야? 그럼 고무줄놀이도 마지막이겠네. 외국인 학교에서는 고무줄놀이도 안 할 테니.”

“고작 몇 달 있다가 이렇게 가다니 너무 섭섭한데.”

“멀리 가는 건 아니라고 하니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푸르다> (박경종 작사, 권길상 작곡) 노래에 맞춘 고무줄놀이 발 동작. 박자에 따라 동그라미 하나에 가사 한 음절씩 넣어 부르며 발 동작에 맞춰 뛴다.


오늘의 노래는 산의 푸르름을 푸른 푸른 푸른 산으로 강조하는 <푸른다>라는 노래이다. 우리는 이를 ‘푸른 산’이라고 불렀다. 동작은 매우 간단하다. 마음도 찹찹하니 간단한 노래를 배워보기로 했다. 오른발로 줄을 밟았다 땠다 하는 건데 줄 가두기를 잘해 두면 시작 부분에서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고무줄을 왼 다리에 걸쳐 두고 오른발로 밟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사로 엇갈린 대형으로 서서 왼발에 고무줄을 걸어 둔다. 고정된 줄이 딱 붙어 서서 오른발로 밟았다 땠다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두 번째 소절 들어가기 직전부터 반대쪽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왼발이 줄을 곧장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 대형에서 미리 고무줄을 왼 다리에 걸쳐 가 둔 후에 밟기 동작을 한다.



이 노래에서의 중요한 키포인트는 왼발이다. 딱히 역할이 없어 보이지만 농구공이 농구선수 손에 자석처럼 붙은 채 움직이듯이 왼발에 고무줄이 착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했던 방식처럼 원을 그리면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고무줄을 왼 다리에 붙이기 위해 좌우로 왔다 갔다 원을 그리듯 움직인다.



왼발을 고무줄에 붙여야 하는 이유는 높은 단계에서도 오른발로 고무줄을 밟기에도 수월하고 고무줄을 넘어가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고무줄을 밟을 때는 왼발의 발등 방향이나 발 안쪽 방향에 걸쳐 두면 오른발로 뒤 쪽으로 고무줄을 수월하게 밟을 수 있다. 그런데 하다 보면 간혹 높은 단계에서 고무줄이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고 뒤로 고무줄을 밟기가 어려워진다. 그럴 때는 오른 다리를 성큼 들어서 앞쪽으로 내어 줄을 밟기도 한다. 


고무줄 밟기의 여러 가지 방식.



‘밟기’ 동작 후에 ‘돌면서 줄 넘어가기’ 동작을 하려고 고무줄로 다가가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높은 단계에서 고무줄이 위로 올라가버리기 때문에 손쓸 겨를이 없다. 그래서 정말 잽싸게 왼 다리로 줄을 넘자마자 그대로 밀어서 반대편에 도달해야 줄을 잘 가둘 수 있다. 가둔 뒤로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이렇듯 이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고무줄을 양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그 동작들이 한 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놓치기 십상이다. 

이 흐름을 잘 익히면 물 흐르듯이 곡을 완주할 수 있다. 마치 고무줄과 왼 다리가 하나인 듯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인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달이 자꾸 따라오지? 그 밤하늘의 달처럼 줄을 따라가야 해. 딱 붙어서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놓치는 순간 줄이 달아나버려.”

<푸르다>에서 왼발의 동작을 설명하면서 고수가 말했다. 

전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나도 달아나는 걸까?”

한국식 수험생활을 이어 나갔어야 했는지 아직까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해. 인생은 각자가 자신만의 고무줄을 뛰는 거야.”

고수가 말했다. 우리는 이미 편하게 보내주려고 마음속으로 결정을 했기에 더 이상의 부담은 지우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아쉬웠던 건 사실이었다. 그건 전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겨우 이 ‘혼연일체’의 느낌을 알기 시작했는데 홀연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외국인 학교라면 더 이상은 고무줄을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에게 그리 중요했던 바로 그 고무줄을 말이다. 





고무줄 운동을 하면서 달라진 점을 조금 적어보려고 한다. 몸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무엇보다도 정말 싫어하는 유산소 운동을 함에 있어서 고무줄놀이에 대한 사심이 곁들여지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타났다.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렵지만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 고무줄을 시작했을 때는 심장도 빨리 뛰고 살도 위아래로 너무 출렁거렸다. 특히 평상시에 느껴 본 적 없는 등살이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졌을 때가 정말 충격이었다. 지금은 좀 더 빨리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주 간단한 고무줄 하나로 이렇게 훌륭한 운동을 할 수 있다니 심지어 낯선 운동도 아니고 우리에게 친근한 전통 놀이로 말이다.


일주일 정도 무릎 높이에 묶어 놓고 8곡을 차례로 뛰었다.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로 난이도를 조절했는데 총 8단계 중에서 발목과 만세는 빼고 실제로는 무릎에서부터 시작했다. 즉, 무릎, 엉덩이, 허리, 겨드랑이, 귀, 머리의 6 단계로 나눠서 진행했다. 다음 단원에서 다룰 곡까지 합쳐 총 8곡을 다음과 같은 루틴으로 운동삼아 뛰었다. 고질적인 편두통 때문에 운동을 하지 못한 날 빼고는 거의 매일 운동삼아 고무줄놀이를 뛰었다. 


두 달 동안의 고무줄놀이 유산소 운동 프로그램 계획


첫째 주에는 8개 노래를 무릎 높이에서 1절만 한 번씩 뛰었는데 시간상으로는 5-6분 정도밖에 안 걸렸지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둘째 주부터는 8개의 노래를 엉덩이 높이에서 1절만 한 번씩 뛰었다. 

그다음 셋째 주에서는 한쪽만 허리 높이로 올려서 고무줄을 사선으로 만들고 8개 노래를 1절만 한 번씩 뛰었다. 사선으로 만든 이유는 무난한 것은 허리 높이 가까이에서, 어려운 것은 엉덩이 높이 가까이에서 하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요령이었다. 

그 후 넷째 주에는 양 쪽을 다 허리 높이에서 했는데 여전히 곡들은 한 번씩만 뛰었고 가끔 더 뛰고 싶은 곡들만 두 번 뛰었다. 

드디어 다섯째 주부터는 높이는 그대로 둔 채 노래를 2번씩(2절)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고무줄 처음 시작했을 때만큼 숨이 차오르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여섯째 주에는 계속해서 2번씩 부르는 것을 겨드랑이 높이에서 이어 나갔다. 

일곱 번째 주에는 귀 높이에서 두 번씩 뛰었고 여덟 번째 주에는 머리 높이에서 두 번씩 뛰었다. 


여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긴 사이클이었지만 두 달 동안 지루하지 않게 유산소 운동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여러 곡을 한 높이씩 정해서 뛴 이유는 혼자서 뛰는데 주 높이를 노래 끝날 때마다 바꾸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노래 한 곡씩 익히려면 같은 곡으로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단계를 바꾸면서 연습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위의 예시처럼 곡을 정하고 횟수와 높이 및 기간을 정해서 자신에게 맞는 고무줄놀이 유산소 운동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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