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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Sep 30. 2022

놓치면 죽고 밟으면 산다

공중에서의 줄 제어

끊어진 고무줄 조각들을 매듭으로 묶어서 긴 고무줄을 만든다. 사람 수에 따라 많은 조각을 묶으면 아주 긴 줄이 될 수도 있고 덜 묶으면 짧은 줄이 될 수도 있다. 끊어진 고무줄은 매듭을 지어 묶어서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 매듭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데 있어서 크게 걸리적거리지도 않는다. 그냥 긴 직선 위의 군데군데 점들 일뿐이다. 


살면서 무언가 단절되고 관계가 끊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들 때도 고무줄을 있는 것처럼 단순하게 다시 이어버리면 된다. 이때 생기는 매듭은 큰 불편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는 작은 흉터일 뿐이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짧은 가닥가닥을 엮어서 긴 줄을 만드는 것은 아주 긴 기차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즐겨 뛰었던 노래 중에 <장난감 기차>라는 노래가 있었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 칙칙 떠나가는 귀여운 가사에 걸맞지 않게 난이도가 있었다. 초반부터 뜀뛰기로 힘을 빼놓고 나중에는 점프로 줄을 밟아야 한다. 여기서 실패해서 사람들이 대거 탈락을 한다. 


의외로 전학생은 공중에서 줄을 제어해야 하는 점프에 아주 능했다. 역시 치어리더 다웠다. 

그날도 아주 재미있게 <장난감 기차>를 배우고 있었다. 


똑같이 한 소절이 8 박자인 곡이었지만 주로 반복을 통해 노래를 마쳤던 다른 곡들과는 달리 이 곡은 딱히 반복이랄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 자체가 너무 짧아서 이 노래는 기본으로 2번 불렀다. 2절까지 불렀다면 좋았겠지만 노래 가사를 제대로 외우는 사람이 없기도 했다. 


나중에 악보를 보고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 단순한 노래도 박자를 아주 다르게 부르고 있었다. 첫 소절인 ‘장난감 기차가’에서 박자가 동일하게 끊어져야 하는 데 웬걸 우리는 온갖 기교를 다 넣어서 엇박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무려면 어떠리 즐거웠으면 됐지.


<장난감 기차> (작사 미상, 전종화 작곡) 노래에 맞춘 고무줄 놀이 발 동작. 박자에 따라 동그라미 하나에 가사 한 음절씩 넣어 부르며 발 동작에 맞춰 뛴다.



처음부터 장애물 달리기 선수 마냥 줄을 넘어가며 열심히 뛰어야 한다. 여기서 힘이 다 빠져버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다음에 최대 난 코스인 ‘점프하여 줄 밟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릎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서 줄을 밟는 것은 웬만하면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딱히 줄을 제어할 필요가 없다. 그냥 줄을 보며 무릎 높이에서 폴짝(정말 폴짝) 뛰어서 오른발로 딱 밟으면 된다. 줄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흔들리면 낭패이다. 


단계가 어려울수록 단순히 점프하여 줄 밟기는 점점 불가능해진다. 생각해보면 당장 엉덩이 높이만 해도, 그 이상 머리 높이는 점프가 불가능한 높이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스킬이 바로 고무줄놀이의 매력이다. 


여기서도 앞서 이야기했던 줄 가두기 스킬이 적용된다. 즉, 줄은 발목에 잘 걸어 두어야 한다. 다른 점은 걸어 두고 줄을 넘어가는 것이 아닌 걸어 둔 바로 그 오른발로 점프해서 그 줄을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밟았다고 생각하고 잠시 멈춰 서있으면 이내 줄이 위로 ‘팅’하고 튕겨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대거 탈락한다. 이 스킬도 혼자 일대보다는 여럿이서 같이 할 때 더 잘 먹히긴 한다. 그렇지만 혼자서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점프하여 줄 밟기. 줄을 가두는 기술이 중요하다.



이 ‘점프하여 줄 밟기’가 최대 난 코스 인 이유는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떠 있는 점프 상태에서 고무줄을 제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중에서까지 발목에 걸려있던 고무줄을 마지막 순간에 ‘꽝’하고 밟으려면 공중에서 발 모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발을 바깥 방향으로 90도 돌려서 착지해야 한다. 이때 제자리에서 뛰는 것이 아니라 몸을 약간 바깥쪽으로 보내야 하기에 공중에서 그리는 포물선이 마치 탈 춤을 추는 것 같다. 이 어려운 동작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연달아해야 한다. 탈락자들이 대거 속출하는 구간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언제나 왼발잡이 고수였다. 우리는 모두 넋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도 한데 줄이 빠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전학생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수에게 이야기했다. 


“고무줄놀이는 참 재미있는 것 같아.”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매일 나와서 하는 거지.”

“그게 좀, 아쉬워.”

“응? 뭐가?”

“아니야.”

“왜 그래? 다시 안 볼 사람처럼.”


우리는 그저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례시간이 선생님이 전학생이 곧 다른 학교로 다시 전학 갈 거라고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뭐야? 이사가? 어디로 가?”

“….”


대답 대신 전학생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미안한 건 우리였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떠난다는 것은 서로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내일까지는 학교 나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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