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가는 노래
“마지막 날이니까 하나만 더 알려 줄게. 이건 쉬어 가는 노래야.”
고수가 전학생에게 이야기하며 시범을 보였다.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를 곡이었다. 전학생은 조용히 지켜봤다.
아침바다 갈매기와 저녁 바다 갈매기가 각각 금빛과 행복을 싣는 굉장히 서정적이고 시적인 <바다>라는 곡이었다. 우리는 이 곡을 ‘아침바다’라고 불렀다. 이 곡은 다른 곡과 다르게 한 소절이 6박이다. (4분의 3박자 곡) 못 갖춘마디로 시작하는 듯한 착각이 들지만 정박으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뛰었던 8박과는 달라서 조금 헷갈릴 수도 있지만 잔잔하고 서정적인 곡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 고무줄을 뛰다가 너무 힘이 들 때 편안하게 숨 고르기를 하기 위해 쉬어 가는 곡으로 이 곡을 뛴다. 고수가 ‘쉬어 가는 노래’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시작 부분은 <금강산>의 동작과 비슷하다. 그런데 금강산과는 달리 점프 없이 잔잔한 아침 바다처럼 고요하게 왼 다리를 뒤로 넘기기만 한다. 두 번 넘기고 돌아서면 또 반복이다. 마치 클라이맥스가 없는 서사처럼 잔잔한 움직임이다.
“나중에라도 힘이 들 때 숨 고르기가 필요하면 이 쉬어 가는 노래를 기억해. 가사도 너무 예쁘고 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져.”
이번에도 고수가 시범을 보였다. 이 장면은 이상하리 만치 기억이 생생하다. 열심이었지만 그것은 어떠한 감정을 감추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전학생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종이 칠 때까지 전학생과 번갈아 가며 혼자 뛰고 또 뛰었다. 우리도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날 뒤 운동장은 두 사람의 독무대처럼 보였다.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 햇살이 사선모양으로 조명처럼 내리비쳤었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떠 다니던 먼지들도 저녁 바다 물결처럼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덕분에 흐림 효과까지 만들어졌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듯 펄럭이던 단발머리도 평소와는 다르게 슬로우 모션으로 내 기억 속에서 흔들렸다.
이상하게 전학생이 가고 난 후에 뛰는 <바다>는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무언가 아련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쉬어 가는 노래는 그렇게 나의 마음에 추억을 회상하며 쉬어 가는 시간을 안겨주었다. 고수와 전학생은 잘 있을까? 나처럼 나이를 먹었겠지.
고무줄놀이를 개인적인 신개념 유산소 운동의 방법으로 채택하면서 이 놀이가 충분히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초반의 낮은 단계에서는 뛰기의 주 효과인 유산소 운동의 효과가 있었고 단계가 높아지면서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근육이 사용되는 것을 느꼈다. 발등 근육을 시작으로 점프를 하며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는 한 번도 인지해 본 적 없는 허벅지 안쪽의 가느다란 심부가 사용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존재조차 몰랐던 근육들이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근육통이라는 존재감으로 차례 차례 나와 인사했다.
‘아. 너라는 근육도 내 다리에 존재하고 있었구나. 만나서 반갑다.’
초반에는 몸이 보이지 않는 기초 공사를 시작하며 주변을 정리정돈을 하는 모양이었다. 기초가 어찌나 엉망이었는지 고작 하루 5분 뛴 거 가지고 초반에는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하고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스러움은 운동을 괜히 시작했나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뛰는 것에 일상생활에 타격을 줄 만큼 내 몸이 망가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함에 있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숨이 헉헉거릴 정도로 굉장한 노동이었다. 어릴 때는 몇 곡을 연속해서 뛰어도 거뜬했었기 때문에 충격이었다. 꾸준히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몸무게는 오히려 늘어나기 시작했다. 근육이 먼저 생기고 있었나 보다. 건강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었고 몸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는 작은 활기가 좋아서 체중계는 일부러 멀리하고 계속해서 고무줄놀이라는 작은 루틴을 실천했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1절이 2절이 되고 높이가 점차 올라가는 과정들이 다 재미있었다. 그 결과 두 번째 달부터는 컨디션이 초반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아졌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 몸에서는 중요한 대사작용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기초 대사량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는 동안에는 살이 빠지는 작용도 일어난다고 하는데 단순하게 질량 보존의 법칙만 생각했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했던 호흡 속에 그 답이 있었다. 지방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고 하는데 자는 동안에 폐를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이산화탄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좀 가벼웠던 것일까. 그래 그래. 숨결로 살아 빠져나가라.
몸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평생을 잔소리처럼 들어왔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올바른 자세’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마음가짐이 바뀐다.’라는 말은 정말 맞았다. 평생 굽은 등과 거북목으로 살아왔던 나는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특성이라고만 생각을 했기에 굳이 고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더 맞다. 그런데 자세를 만드는 것은 그 주변 근육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나도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싶다는. 자세가 좋아지면 여기저기 힘을 잘못 줘서 생긴 통증들도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실제로도 자각한 이후부터 통증이 점차 덜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모든 변화는 일단 체력이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체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고 체력이 좋아지게 되면 마음가짐도 바뀌고 평상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에도 관심이 새긴다는 것.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일만 남았다. 시간이 문제이다. 꾸준함이 뒷받침되는.
이 책에서는 고무줄놀이가 만능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훌륭한 운동들 중에서 고무줄놀이를 유산소 운동으로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한때 즐겁게 갖고 놀았던 친근한 놀이이며 다른 어떤 유산소 운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고무줄놀이. 이 놀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k놀이의 부흥에 힘입어 고무줄놀이도 현대적으로 재발견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