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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영현 Sep 22. 2023

장마

 장마




  그러니까 나는 애인이 없다. 아니 애인이 있다. 사랑 없는 사람은 없다. 아니 사랑 없는 사람이 있다. 사랑하다가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이 있다. 사랑하지 않다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있다. 있을까. 그러니까 나는 애인이 없다. 아니 애인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애인이라 해도 될까. 왜 나를 사랑하는 일을 비밀로 할까. 그러나 비밀은 없다. 내가 그의 비밀을 안다. 비밀은 밝혀져야 한다. 밝혀지지 않으면 썩는다. 썩은 냄새가 사랑을 지운다. 지워진 사랑은 거름이 되어 더 환한 사랑을 피워야 하지 않나. 그러나 꽃은 피지 않고 파리만 날린다. 파리도 사랑을 한다. 구더기를 낳고 구더기는 눅눅한 똥 무더기에서 다시 파리가 된다. 그러니까 나는 애인이 없다. 아니 애인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애인이라 해도 될까. 사랑한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가 나를 사랑할까. 고양이는 애인이 될 수 없다. 될 수 없을까. 애인이 없다고 말하면 슬플까. 애인이었다가 애인이 아닌 사람을 만날 때의 어색한 기분을 무어라 할까. 그러니까 나는 애인이 있다. 아니 애인이 없다. 애인이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받는 사람과 사랑을 잃은 사람과 사랑을 버린 사람과 고양이와 파리와 구더기와 똥 무더기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러니까 나는 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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