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빠지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
깊이란 도랑과 강의 차이
깊이 없는 하루가 겨우 연명 된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나면
휘휘 휘젓는 생각
나는 깊이가 없어서
금세 흙탕물이 된다
할짝할짝 물을 핥는 길고양이
해골 물이라 해도 토하지 않을
심연을 지니고 있다
깊이가 나를 피해 달아난다
꼬리를 치켜들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표창을 날린다
어떤 유리도 깨지 못하고
툭 떨어지는 명함
다른 얼굴을 빌려줄 것도 아니면서
빌려주겠다고 빌리라고 빌다시피 하는
이 하루를 빌려 쓰고 나면
하루 뒤에 하루, 하루 뒤에 하루
내가 갚아야 할 건 뭘까
얼굴 대신 헬멧을 빌려 쓰고
달려 볼까 부릉부릉 저 깊은 곳으로
급류를 타고 곤두박질치더라도
-「문장웹진_콤마」『문장웹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