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이 나도 멈출 수 없다 - 멕시코 시티의 먹거리
8박 9일의 멕시코 시티 여행이 끝났다. 자세한 여행기는 글 마무리에 링크로 달아두었다.
모든 사람이 걱정을 했다. 특히 멕시코 시티 출신의 나의 보스는 조심해야 된다며 이틀에 한 번씩 생사확인 문자를 보내왔다. 하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멕시코 시티(에 한정되는 치안의 이야기이다)는 뉴욕보다 더 위험하지도, 덜 위험하지도 않았다.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늘 주위를 살피며 안전하지 못하다, 싶은 곳에서는 빨리 벗어나면 된다(그런 곳도 딱히 없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2시간 정도 동남쪽에 위치한 프랑스의 침략에 항전을 해 싱코데 마요가 지정되게 한 그 푸에블라는 멕시코 시티보다도 더 안전한 느낌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센트로 주변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호텔 직원도 해 진 이후에 돌아다니는 것이 괜찮다고 했다. 혼자는 모르겠지만 멕시코 시티 센트로도 동행이 있으면 밤에 다닐만했다. 밤에 보는 센트로는 낮과는 다르게 운치가 좋다. 멕시코 시티를 짧게 여행할 생각이라면 센트로에서 머무는 게 좋을 것 같다.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멕시코 시티는 정말 정말 정말 공기가 나쁘다. 한두 시간쯤 밖에서 돌아다니면 손톱에 때가 끼고 손바닥 손등에 먼지가 한 겹 둘러진 게 느껴질 정도. 정말 덥지 않은 이상 웬만하면 하루에 두 번 샤워를 하지 않는 나도 아침 외출 후에 한번 샤워, 저녁 외출 후에 한번 샤워를 해야 찝찝함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멕시코를 여행/계획 중인 여행자 단톡 방에서도 복통에 설사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도 셋째 날 길거리의 뇌 타코를 먹고 설사가 시작되었다. 의심을 할 뿐 설사의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물갈이인지, 아니면 길거리에서 파는 대장균이 득실득실하다는 맛있는 주스를 매일같이 사 먹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나저러나 모든 음식이 너무 맛있고 잘 맞아서 먹고 싸(!)자는 생각으로 그냥 계속 먹었다. 배탈은 꽤 고통스러웠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이틀 정도만에 멎었다.
음식은 최고다. 사실 여행 전 가장 기대했던 것이 음식이었고 멕시코는 기대에 완전히 부응해주었다. 입맛에 찰떡같이 맞는다. 매운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점(매운 음식이 우리들을 다혈질로 만드는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옥수수를 더 많이 먹지만 밥을 곁들여 먹는다는 점, 곱창이나 돼지껍질 등 부속 재료를 조리해 먹는다는 점 등 에서 우리나라 음식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음식은 정말 잘 맞았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몇 년, 텍사스에서 몇 년을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텍스-멕스(텍사스 스타일 멕시칸 음식)라는 음식에 익숙하고 또 좋아하는데 이 "텍스-맥스"라는 것은 한낱 미국 음식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한 여행이었다. 말하자면 치폴레나, 부리또나 하는 음식들은 멕시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음식들이라는 것이다. 뭐 타코는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의 오렌지는 정말 기가 막히다. 어느 통계에서도 보았다시피 길거리 과일이라는 게 청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장균이 그렇게 득실득실하다고.
현지인은 물론 한국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곱창 타코 집, El Torito de Tripa Tacos, 은 두 번 갔는데 타코 마스터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주문을 매번 정확하게 기억하고 음식을 내어주셨다. 곱창은 바삭하게 좀 더 오래 굽고 실란트로, 양파를 많이 넣고 살사는 조금만 넣어달라는 귀찮았을 법한 주문을 말이다. 함께 마시는 7up의 리모나다(레모네이드 소다) 또한 기가 막혔다. 사이드로 먹는 양파 고추 피클도 진짜 맛있었다. 동행님이 멕시코 시티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 곱창 타코 집이 가게를 닫아 찾아 나선 다른 타코 가게에서는 곱창은 물론 뇌, 눈, 목, 뺨, 혀 등의 색다른 타코 재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뇌와 눈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눈은 다 팔리고 없어 먹어보지 못했고 뇌만 먹어볼 수 있었는데 뇌는 곤이 같은 식감이었다. 뺨은 지방 없이 담백하니 맛있었고 곱창은 말할 것도 없고 뇌는... 한 번 먹어봤으니 되었다 싶다.
푸에블라는 결정적으로 음식이 특히 맛있고 몰레의 고장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몰레는 생각보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대신 나의 멕시칸 보스가 강력 추천했던 칠레 엔 노가다(chile en nogada)를 먹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메뉴는 시즈널이라 어떤 식당에서는 7월부터만 팔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 디쉬는 초록 고추, 하얀 크림소스에 석류알을 뿌려 나오는데 이는 색깔들은 멕시코 국기의 색깔과 같다.
물가는 정말 싸다. 어떻게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나 아띠뜰란 호수 주변에 있는 마을보다 더 쌀 수 있는지 싶다. 과테말라에서 내가 갔던 곳이 관광지여서 그랬나? 멕시코 시티는 여행자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2천만 인구가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곳이고 멕시코 시티의 최저시급은 102페소 정도라고 하니 미화로 5불 정도이다. 동행이 있었던 날은 한 명당 12불(한화 14,000원) 정도면 하루 종일 배 터지게 먹고 우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총 여행 경비: 897불, 한화로 백만 원 정도.
현찰: 300불
대충 5,500페소를 환전해 가서 200 페소를 남겨왔다. 멕시코시티에서는 우버도 현금으로 지급했다.
비행기: 240불, 미국에서 멕시코 시티 왕복
숙박: 멕시코시티 에어비엔비에서 8박에 310불 - 콘데사에 있는 아파트에 딸린 방 하나
푸에블라 호텔 1박에 624페소 - 200페소는 현찰로 냈고 나머지는 카드로 결제 (24불 정도)
교통: 우버가 미국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쌌기 때문에 여행이 끝나고 돌아보니 불필요하게 남발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막판에 현찰이 딸려갈 때쯤 5페소를 내고 탄 메트로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여성 전용칸도 잘 되어 있었다. 인류학 박물관에서 폴랑코로 이동하기 위해 탔던 빨간 버스는 에어컨도 빵빵하고 한국 버스보다 더 좋았지만(버스 기사는 돈을 받지 않았다..) 차풀테펙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탔던 보라색 버스는 약간 찝찝한 느낌이 들어 가방을 사수해야 했다. 특히 푸에블라에서 멕시코 시티로 돌아왔을 때 퇴근시간에 딱 걸려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숙소까지 우버를 타면 30분, 메트로는 20분이 걸린다 하여 타게 된 메트로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을 뿐 빠르고 저렴했다. 다음에 멕시코 시티를 또 간다면 메트로를 더 자주 이용할 것 같다.
카드 사용내역: 47불 - 우버를 현금으로 계산할 수 없었던 푸에블라에서의 우버 비용, 푸에블라의 호텔 부분 비용 등
상세내역
1일 차
공항에서 숙소로 우버 128페소
저녁 하마치돈 220 페소
2일 차 (코요아칸)
코요아칸 왕복 우버 비용 107페소, 116페소
프리다 칼로 하우스 입장권 140페소, 오디오 가이드 80페소, 사진 촬영권 30페소
알 팔파 주스 50페소
타코 저녁식사 200페소
슈퍼마켓 50페소
3일 차 (테오티우아칸)
왕복 버스 티켓 104페소
테오티우아칸 입장료 75페소
숄, 자석, 티셔츠 등 기념품 330페소
별로 맛이 없었던 케사디아 점심 53페소
싸구려 주스 20페소
곱창 타코 식사 64페소
4일 차 (센트로)
우버 180페소
맛있었던 포솔레, 소페스 점심 103
맛있었던 주스 40페소
예술 궁전 맞은편 시어스 카페 50페소
뇌/곱창 타코 저녁 135페소
5일 차 (차풀테펙 성)
설탕물 맛 나는 길거리의 끝내주는 오렌지 주스 15페소
미용실 340페소
순대국 180페소
6일 차 (푸에블라)
아도 터미널까지 우버 107페소
푸에블라행 아도 버스 티켓 214페소
칠레 엔 노가다 250페소
촐룰라 이동 우버 235 페소
몰레 테이스팅 280페소
7일 차 (푸에블라)
멕시코 시티행 아도 버스 티켓 214페소
숙소로 가는 메트로 5페소
8일 차 (인류학 박물관, 센트로)
인류학 박물관 75페소
메트로 10페소
구아바-오렌지 주스 45페소
곱창 타코 64페소
9일 차
공항까지 우버 120페소
좋았던 점: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 맛있는 주스!!! 싼 물가. 유럽과 아메리카를 융합해놓은 성당들과 분위기.
아쉬웠던 점: 계속된 이유를 모를 설사. 오염된 공기. 더러운 도시. 메트로에 가졌던 편견. 우버 대신 더 자주 이용할 걸.
외전:
방탄 소년단 때문인지 몰라도 내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포솔레와 소페를 다 먹고 나서는 식당에서 나를 붙잡고 당신은 참 아름답다(ㅋㅋ)고 했던 멕시칸은 나와 동행이 주스를 마시는 곳까지 따라와서 관심을 표현했고 여기저기서 만난 교복을 입은 (여자)애기들은 쑥스러워하며 나에게 사진을 요청하기도 했다. 예술궁전을 바라보기 위해 앉은 시어스의 카페에서 만난 커플도, 차풀테펙 성의 경비아저씨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예쁘다!"라는 멘트를 날려줬다. 이탈리아를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멕시칸들도 이탈리안들을 뺨치는 사랑꾼들인 듯. 메트로에서는 태극기를 흔들고 다니는 아가들도 봤다.
멕시코 시티는 정말 강추한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갈 것이다. 역사가 깊으니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다. 시티도 제대로 다 보지 못했을뿐더러 다음에 가면 과나후아토랑 유카탄 반도, 와하카 주와 치아파스 주도 꼭 가봐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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