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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May 15. 2020

습작

백쉰일곱번째

 “저는 방금 그 말에 동의하지 못 하겠습니다. 교수님” 내 목소리가 강의실 내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소름끼치는 침묵이 따라 붙었고,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들 모두가 나와 교수의 얼굴을 번갈아 응시했다. 


 이 교수는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은커녕 동료 교수들이 하는 말조차 건성으로 듣고 넘기기 일쑤였다. 그런 양반이 십 몇 년째 대학 강단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학 총장이나 이사회에 무슨 연줄이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그의 강의는 매년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따분했으며, 뭇 학생들로부터의 평가도 좋지 않았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일이년 전부터는 강의 도중의 질문이든 이의제기든 하여간 피드백 비슷한 것들에는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 교수가 제 나름대로 침착한 답변을 내놓았다. “할 말이 끝났으면 그만 앉게. 중간시험을 별 탈 없이 보려면 이 부분을 꼭 들어야하니까……”


 “아뇨, 교수님” 나는 교수의 말허리를 끊고 퍽 반항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이 교수의 성격이며 평판을 익히 알고 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쟤가 미쳤나’ 하는 표정이었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타과 학생들조차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쯤은 눈치 챈 모양이었다. “저는 할 말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이 방금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 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교수님께 꼭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걸 꼭 지금 해야 하나? 대학에서는 교수 면담이라는 것도 있는데” 교수는 다소 쏘아붙이는 투로 덧붙였다. 다만 이 교수는 학생과의 면담을 받아주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고, 나는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의견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여기서, 다른 학우들이 듣고 있는 가운데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내가 자못 공손해진 태도로 되물었다. 명목상으로나마 부탁하는 입장에 있었으니 별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일대일 면담을 할 만큼 대단한 이야기는 또 아니라서요. 개인적인 궁금증이라……”


 “아……” 이 교수는 당장이라도 드러눕고 싶은 사람처럼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한 말에 뭐가 그렇게 큰 문제가 있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불만이지?”


 “조금 전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회가 어떤 일이나 직업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그 일의 가치가 구별된다고 했지. 그게 문젠가?” 교수는 계속해서 답답해 죽겠다는 식이었다.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단순히 구별이 아니라”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지. 자네는 길거리 좌판에서 떡볶이를 파는 일과, 나처럼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연구에 기여하는 일이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나?”


 “그야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각각 다른 형태의 가치를 갖고 있을 뿐이죠. 거기에 절대적인 우열을 나눌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고 말씀하신다면, 교수님께선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주장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자네 이름이 뭐지?”


 “김민철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김민철, 김민철…… 그래. 여기 있네. A대학 사회학과 모 학번……” 교수는 강단 한 쪽 구석에 놓여있던 학생명부를 들춰 내 이름을 찾은 뒤 다시금 말을 이었다.“좋아. 김민철 학생. 자네는 왜 여기 있나?”


 “강의를 듣기 위해서 여기 있습니다” 


 “강의는 왜 듣지?”


 “대학교육을 정상적으로 수료하려면 필요한 과정이니까요”


 “아! 그럼 대학교육을 왜 받지? 졸업장을 받으려고?” 교수는 그런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곧장 되받아쳤다.


 “물론 졸업장을 받기 위함도 있겠죠”


 “‘있겠죠’가 아니라 ‘있다’겠지. 왜 유보적으로 얘길 하지? 자신의 모순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단지 저는 제가 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말하는 게, 제가 한 질문과 당최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모르니까 학교를 다니겠지? 그럼 가만히 들어봐. 자네들이 여기 앉아서,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을 듣는 이유는 단 하나야. 대학졸업장을 따서, 그걸 바탕으로 사회에서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지. 조금이라도 더 귀한, 또 조금이라도 덜 천한 직업을 차지하기 위해서. 내 말이 틀렸나?”


 “제가 드린 질문과는 논점이 다른 것 같은데요, 방금 하신 말씀은” 나는 찌푸려진 미간을 도로 폈다. “직업에 절대적인 귀천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소재입니다”


 “논점이탈은 자네가 하고 있지. 내가 아니라. 내가 교수인데 그 정도도 모를 것 같나?”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있는 힘껏 이죽거렸다.


 “교수님께 저보다 더 높은 학문적 권위가 있기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수가 하는 말이 늘 옳고, 학생이 하는 말이 늘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겠죠. 교수님도 사람이니 실수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래, 나도 사람이지. 하지만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은 아니야. 요즘 학생들은 사람이라는 게 뭐든지 공평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맞지 않나요?”


 “그런 당위적인 태도로 접근해선 안 되는 문제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을 모두 동일한 가치로 취급하는 게 더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네”


 “……방금 그 말씀은” 나는 끝끝내 당황한 티를 내고 말았다. 교수의 입에서 그만큼이나 적나라한 주장이 튀어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래. 사람은 애초에 불공평해. 애당초 생물이라는 존재가 불공평하게 만들어졌으니까. 유전학이나 진화론이라는 것도 아주 확률적인 영역에 기대고 있고. 예를 들어볼까? 다섯 살짜리 애를 흐르는 강물에 던져 넣는다 치자고. 그게 윤리적인 행동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이건 어디까지나 예시니까. 아무렴 다섯 살짜리라면 강에 빠졌을 때 죽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겠지? 상식적으로는 그럴 거야.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열 명 중 한 두 명, 아니면 백 명 중 한 두 명은 꼭 그런 애들이 있어. 어떻게든 헤엄을 쳐서 살아남는 애들이 있지. 그게 재능이고, 가치고, 인류사회가 보존해 나가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살아남은 개체들이 문명을 발전시켜온 거야. 그런 반면에, 순전히 운으로 살아남은 개체들은 세대를 거쳐 가면서 도태될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어. 운 이외의 순수한 능력치. 그런 것들이 인류의 발전과 개인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봤을 때, 거기서 굳이 우열을 가리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나?”


 “그야 당연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일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물론 동물의 탄생과 생존에는 확률적이고 불공평한 부분이 명백히 존재하니까요. 상대적으로 우월한 유전자가 살아남아 온 것도 대체로 사실일 거구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런 태생적 불확실성과 불공평함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극복해왔습니다. 수천, 아니, 어쩌면 수십 수백만 년 동안이나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었던 유전자, 그러니까, 성별과 신체조건, 피부색이나 장애와 같은 것들로부터 가능한 불이익을 받지 않게끔, 그래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누구라도 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발전해온 거죠. 결과적 불평등을 극복하고자하는 이런 의지야말로, 단순한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나는 이쯤에서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앞뒤로 조용히 앉아있던 학우들이 하나둘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해, 이내 강의실 전체를 메울 만큼 큰 소리로 울려 댔기 때문이다.


 “조용, 조용히 해. 박수는 왜 쳐? 시끄럽게” 교수가 더럭 신경질을 냈다. 겉보기엔 태연해보였지만 여러모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 그가 싸우고 있는 건 일어서 질문하는 나나 내가 내놓은 질문이 아니라, 그간 이 교수가 보였던 조소며 차별적 발언에 알게 모르게 상처받아왔던 학과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세대차이를 많이 느껴. 오 년 전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도대체가, 요즘 대학생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들질 않아. 사람이면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그런 일종에 강박관념이 있는 건가? 왜 그러는 거지? 모든 인간이 반드시 평등하다고 말할 이유가 있나? 아니면, 불평등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같은 그런 불평등함은, 태어날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영역에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히려 그런 확률적 요소로 ‘반드시’ 차별받아야할 이유가 있느냐고 여쭙고 싶습니다. 똑같은 살과 피, 그리고 심장을 가진 사람인데도요”


 “그건 당연히 이유가 있지. 인류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그렇게 확률적으로만 탄생하는 것들이 필요하니까.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뛴다고 다 같은 인간은 아니야. 전에 없던 물리학 법칙을 발견하고, 컴퓨터처럼 놀라운 물건을 발명하거나 하는 건 죄다 그런 확률적인 영역의 결과물아닌가? 그런 게 희소성 있는 가치인 거고, 사회는 그런 희소성에 더 높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이런 단순한 문제에 인간성이니 뭐니 하는 걸 갖다 붙일 이유가 어디 있는데? 김민철 학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식당에서 밥짓는 사람과 인류가 가진 지식의 최첨단을 개척하는 사람, 이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강의실에 있는 건가?”


 “그건 너무 극단적인 선택지인데요”


 “예시라는 건 다 극단적이지. 그렇게 안 하면 대부분이 이해를 못 하니까” 교수는 단상 위를 좌우로 어슬렁대며 말했다. “하여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야. 우리는 각자가 더 희소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거라고. 어느 쪽이 더 사회에 중요한 능력인지는 자명하고”


 “교수님은 밥 짓는 사람이 학문하는 사람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원숭이들이라 보실 순 없으신가요?”


 “원숭이도 원숭이 나름이야. 우두머리 원숭이가 있고 노예 원숭이가 있는 거지. 같은 원숭이일지언정 가진 능력도 쓸모도 달라. 말했잖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제 생각은 다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은 분명히 차이가 있으니까요. 이 세상 누구도 밥을 짓지 않는다면, 학문하는 사람들은 매일 뭘 먹고 공부를 하겠습니까? 뭘 발견하기도 전에 다 굶어죽을 텐데요”


 “그러니까 희소성의 문제라고 하잖아. 왜 계속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거지? 보게. 나는 평생 공부만 했고, 밥을 짓거나 다른 집안일 같은 건 손끝하나 대본 적이 없지만 이렇게 잘 살고 있지. 학문적 재능은 사회에서 희소한 가치이니까”


 “어떤 직업의 가치가 그런 희소성에만 있다고 하면, 그런 일들이 인간사회에는 대체 어떤 쓸모가 있는 겁니까?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것 말고는요”


 “김민철 학생은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이렇게 단순한 걸 구구절절이 설명하려니까 진이 다 빠지는데. 점심시간도 다 됐고. 뭣보다 자네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겠나? 잘은 몰라도 실망하시지 않을까? 비싼 등록금 대가며 대학까지 보내 놨더니, 이렇게 아무짝에 쓸모없는 논쟁에나 열을 올리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별 생각 없으실 겁니다. 제 어머니는 대학은커녕 한글도 잘 쓸 줄 모르시고, 지금쯤 식당에서 열심히 김밥 말고 계실 테니까요. 오히려 기특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 이런! 그렇게 아득바득 얘기한 거에도 이유가 다 있었구만” 교수는 엷은 미소와 함께 탄식했다. 또 고개를 돌려 정오가 다 된 시계를 슬그머니 쳐다보고,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희미한 조롱기를 섞어 말했다. “내 미안하이. 내가 참, 자네 어머니의 직업에 대해 너무 고려하지 않고 이야기해서. 나이 먹고 글자도 하나 못 쓴다고 해서 무가치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그럼요. 교수님께서 밥 한 끼 스스로 못 짓는다고 쓸모없는 인간이 아닌 것 처럼요” 내가 대답했다.


 교수는 한동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별다른 대꾸도 없이 강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머잖아 단상에 서 있던 교수, 그 앞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차례로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흑연과 다이아몬드>, 2020. 5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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