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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30. 2020

습작

백일흔번째

 “그는 얼굴을 맞고 나뒹굴었다. 상처가 극심해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았다. 결국 그는 반항한 번 하지 못하고 괴한에게 가진 돈을 모두 빼앗겼다. 그녀는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헤어진 것은 일주일 뒤였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교수는 그쯤에서 꺼끌꺼글한 턱을 만지작대며 물었다. “……봐봐, 진지하게 대답을 해줘. 넌 문학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지?”


 “……네? 문학이요?” 긴장한 얼굴의 학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자네가 대학에서 주전공으로 배우고 있는 거 말이야”


 “그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정의가 달라질 것 같은데요. 가령 사르트르에 의하면……”


 “아니, 그런 거 말고. 자네가 생각하는”


 “저요?” 학생은 대뜸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래” 


 “저는…… 글쎄요. 제가 뭐 문학이 뭐다 할 정도의 수준은 아직 아닌 것 같아서……”


 “그럼 내가 말해주지” 교수가 손에 들고 있던 몇 장 분량의 소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적어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 제가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요약본이잖아? 뭔 놈의 소설이 이러냐? 이야기의 속도가 빠르다 못해 무슨 내용인지조차 모르겠어. 영화 시놉시스도 이 것 보단 요약을 덜할 걸. 진짜 뭔 생각으로 이런 걸 쓴 거냐?” 

 

“교수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분량은 한정돼있는데 제가 쓰고 싶은 건……”


 “아니. 여기서 분량은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A4용지 열 쪽 밑으로만 써오라 그랬지. 몇 백 장은 써야할 것 같은 내용을 다섯 쪽으로 요약해서 오라고 하진 않았잖아”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뭐?” 교수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더 이상 그 말도 안 되는 소설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번거로웠다. 바로 그러라고 학교에서 급여를 받는 주제에, 그런 생각이 떠오를 만큼 그 소설(이라 주장하는 것)이며 그런 걸 쓴 학생과의 대화가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그만하고 말을 하라니까”


 “하지만…… 문체라는 것도 제각기 개성이 있지 않습니까? 헤밍웨이같은 케이스도 있고……”


 “아, 니가 헤밍웨이냐? 그냥 일개 학부생이잖아. 여기서 뭔 헤밍웨이를…… 그럴 거면 영문학과를 가든가. 왜 이런데 까지 와서 날 괴롭히냐고. 그리고 헤밍웨이는, 표현을 하드보일드하게 할 뿐이지 디테일이 부족하지는 않아. 걔 설명 겁나 해. 그 염병할 이탈리아 지형에 대해서 헤밍웨이보다 장황하게 설명한 작가도 별로 없을 걸…… 너랑은 근본적으로 달라. 너는 디테일이 없는 건 고사하고 전혀 이해를 못 하게 해놨잖아. 이런 건 간결한 게 아니라 개연성을 내다버렸다고 봐야지. 도대체, 이런 거에는 내가 어떻게 피드백을 해줘야할지 감도 안 잡힌다니까. 내가 교수 생활만 십 년이 넘었는데……”


 “아, 그러니까 디테일이 부족하단 말씀이신 거죠?”


 “그래……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얼마나 디테일을 더해야 개연성이랄 게 생길지 모르겠어. 다시 써오라고는 안 할 테니까, 그러니까……”


 “아뇨. 다시 써오겠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게 있어서요” 학생은 돌연 얼굴에 화색을 띠며 강의실을 나갔다. “그럼 급히 가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교수님!”


 “……뭐야?” 교수는 그 학생이 빠져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그 괴한은 이제 막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남성이었다. 백팔십센치미터가 넘는 큰 키에 골격이 좋아 오랫동안 경기도 소재의 건설용역업체에서 일해 왔는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자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어느덧 첫 번째 아이와 만삭의 아내를 끼고 있는 한 가장의 입장이 돼있었으며, 도움을 청할 곳 하나 마땅치 않았던 상황에 어떻게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복면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그 복면은 중고나라에서 직거래가 삼천 원에 올라왔던 것을 사정사정해 이천 원으로 깎아 산 물건이었는데, 얼마나 오래된 물건인지 티비쇼 진품명품에 내놓으면 오십만 원은 족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평소에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그러한 사실을 모른채 범죄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렇게 괴한은 세 시간 삽십이분동안 지하철역 부근을 떠돌다가, 홀로 으슥한 골목(빛이라고는 주황색 플라스틱 가로등 하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보통 이런 게 켜져 있는 골목 어귀가 범죄현장이 되고는 한다.)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 남자를 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역시 뜨거운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범행을 저지르기 앞서 두려운 마음이 먼저 일었는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한다는―그의 아버지도 그렇게 해서 그는 그런 강박이 아주 대단한 수준이었다― 의무감이 그의 말초신경에 끊임없이 자극을 줬다. 감정작용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신경세포를 통해 명령을 내렸다. 그 남자를 때려, 그 남자에게 돈을 빼앗아, 넌 할 수 있어! 마침내 괴한은 침을 꿀꺽 삼키고, 삼십미터의 간격을 서서히 좁혀나가다가 그 젊은이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참고로 그 괴한의 팔은 체격에 비해 조금 짧은 편으로서, 윙스팬으로 치면……이런 미친놈! 정신 나간 놈!” 교수는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다, 참고 있던 고통과 분노 같은 것들이 한 번에 폭발해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는 듯 몸둘바를 몰라 하다가, 학생이 다시 써서 제출한 소설(이라 주장하는 무언가)을 북북 찢어 단상 옆의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너는 지금 나를, 문학사에 기여한 모든 위대한 문호들에게 큰 모욕을 주고 있어. 어떻게 이런 걸 쓸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런……”


 “하지만, 하지만……”


 “아! 뭔데!” 교수의 대꾸에는 어딘지 모르게 광기가 서려 있었다. 대학 교수가 그 정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 같았다. 


 “하지만…… 교수님이 부족하다고 하셨잖아요. 디테일이……”


 “너한테 부족한 것은 디테일이 아니야. 제대로 된 정신머리…… 아니, 문학에의 존중이고 진지한 태도지. 문학이 장난이냐? 대학이 장난이야? 부모님이 내준 등록금으로 이런 짓이나 하다니.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교수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학생은 자신과 교수밖에 남아있지 않은 강의실을 공연히 둘러보면서, 우물쭈물하는 태도로 말을 꺼냈다. “다만 제가 이해를 잘못 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지도편달을 그릇되게 받아들인 제 책임이죠. 허나 정말,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실 수 없을까요?”


 “싫은데” 교수는 딱 잘라 말했다. “난 더 이상 네 글을 읽을 자신이 없어. 이미 기말과제 제출 기간도 끝났고”


 “제발, 교수님.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정말…… 제 글의 문제점을 깨달았어요. 이번에야 말로 정말 절실히 깨달았다고요”


 “……그게 뭔데?” 왠지 교수는 되묻고 나서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별 수 없이 저질러버렸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제 글에는 영혼이 없습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문호들, 그러니까. 제인 오스틴이나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와 사람들을 바탕으로 영혼이 충만한 이야기를 써냈었죠. 그런 게 저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제 글에는 저의 이야기가 단 하나도 없어요. 모든 게 지어낸 이야기들 뿐이죠. 이런 건 정말,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아, 교수님. 정말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게…… 저의 경험과 이야기를 담아 진솔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주세요. 네?”


 “싫어” 교수는 또 한 번 대답했다. “그냥 재수강을 해. 그게 빨라”


 “오, 교수님…… 교수님이 뭐라고 하든 저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다음 주까지 다 써서 교수님께 면담을 가겠습니다. 교수님의 얼굴과 명예에 먹칠을 하지 않는 그런 글을 써서 찾아 가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 오지 말라니까?” 교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학생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     


 “……어떻게, 제가 쓴 글은 어떠신지요?” 나는 원목 탁자에 마주 앉은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교수님과 필담을 주고받으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소설을 쓴 건데……”


 “어, 그건 알겠네. 확실히 우리가 대화한 내용이 들어가 있어” 교수가 코 끝에 쓴 돋보기 안경을 벗고 말했다. 


 “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꽤 괜찮지 않습니까?”


 “하하…… 이것 참 골 때리는 학생이구만. 자네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나이를 먹고나니 이름을 자꾸 헷갈려놔서” 


 “아, 저는 김민철이라고 합니다”


 “좋아, 민철군…… 자네에게는 내 두 발 두 손 다 들었네. 내 교수 생활하면서 자네 같은 학생은 정말이지 처음 경험해봐”


 “과찬이십니다”


 “아니, 아니야. 절대 과찬이 아니야. 그냥 사실을 이야기한 것 뿐이네. 그러니까 이런 건,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거지. 에……” 

 

“에?” 


 “아, 그래. 이건 그거야. 에, 에에……” 몇 초간 말끝을 흐리던 교수는 이제 겨우 단어가 떠올랐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F”           


<종강을 앞 둔 대학생의 불안>, 2020. 7     




<극과 극>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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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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