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Aug 06. 2020

습작

백일흔한번째




 몇 년 전 한 여름으로 접어드는 장마 속에서 네오를 만났다. 푹푹 찌고 흐린 하늘에, 불쑥 소나기가 내리고 그치는 일이 며칠이나 이어지던 참이었고, 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투명색 비닐우산을 덮어쓴 채 집으로 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비에 젖는 걸 무척 싫어하는 내가 왜 그런 뜬금없는 행동을 했는지는, 솔직히 말해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한때는 네오가 ‘애옹-’하고 날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그 땐 빗줄기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통에 그런 고양이 울음소리정도는 들릴 리 없었거니와―지난 십 년간 네오만큼 얌전하고 말없는 고양이도 따로 없었으므로, 영 설득력이 없는 발상이다. 


 하여간 나는 집근처 골목의 담벼락 아래에서, 그 검은색 비닐봉투 같은 것이 소나기에 두들겨 맞는 모습을 봤다. 그 때만해도 난 고양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고양이가 물에 젖는 걸 싫어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흐릿한 형체가 검은색 털로 뒤덮인 새끼 고양이일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그 검은색 덩어리를 집으로 데려온 건(물론 당시에는 ‘가져온 것’에 더 가까웠지만) 몇 가지 기막힌 우연이 기적적으로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다만 나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외로운 인간의 곁에 찾아오기 위해 최소한 하나의 우연을 가장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 시절의 나처럼 고독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이거나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건들은 실상 아무 짝에도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그 검은 고양이의 이름이 다른 무엇도 아닌 네오라는 것을, 또 네오의 두 눈이 눈이 부시리만큼 청명한 에메랄드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운명이나 필연 이외의 단어를 가져다 쓴다면 참 비겁한 일이 될 것이다.      


-     


 나는 소싯적부터 유난히 자주 울었다. 떠올려 보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네오를 주워온 그 날조차 난 울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런 날더러 고양이보다 자주 운다고, 차라리 내 딸이 네오고 니가 고양이였으면 얼마나 좋았느냐고 넋두릴 했다. 나도 내가 고양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양이로 태어났다면 공부도 안 하고, 책도 안 읽고, 그 지긋지긋한 학교도 안 가도 됐을 텐데. 네오는 이런 혼잣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저 멍하게 내 두 눈을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물론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없다.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거나 핥아주는 법도 없다. 만약 고양이가 이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가 고프거나 간식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걸 바보 같은 자기위안에 불과하다고 말할 걸 알지만, ‘일부러 위로하지 않는 존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 지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좀체 알 수 없다. 


 네오는 알게 모르게 잔병치레가 많았다. 어째서 ‘알게 모르게’냐면, 이제와선 정말 몰랐던 경우가 태반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언급했다시피 네오는 웬만해서 우는 경우가 거의 없는 신기한 고양이였다. 소리를 내는 기관에 어떤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랬다. 심지어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에도 영 티를 내는 법이 없어서, 정기검진을 할 때가 돼서야 다 나아가는 걸 캐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말 한 마디만 하면 뭐든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너한테 미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 누워있는 내 머리 밑으로 어깨 죽지를 괴고 있던 남자친구의 목소리였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귀었던 그 친구를, 과장 좀 섞어서 한때는 네오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네오는 내 가족이고, 나는 네오 보호자인데. 무슨 걱정거리가 있을 때 내가 함께 해주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절대 미안한 게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돼”


 “넌 그렇게 생각해?” 남자친구가 물었다.


 “응. 너는?”


 “음, 나도 대부분은 동의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있지 않을까. 너무 소중한 사람한테는, 너무 소중해서 다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니까.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많잖아. 아무래도 그런 것들은 이야기할 수 없겠지. 얘기해봐야 걱정만 끼치고, 마음만 아플 테니까. 네가 네오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네오도 널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네오가? 날?”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그럼”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보면 알지. 나는 고양이 말도 어느 정도 알아듣거든” 남자친구는 아주 능청스럽게 대답해왔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정말인데. 왜냐면 난 전생에 고양이였단 말이야”


 “듣다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네…… 계속 해봐”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서 죽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고양이별에 있었어”


 “아하, 그래서?”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꾹 참느라, 이불 밑에 있는 허벅지살을 스스로 꼬집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인간세상을 딱 내려다보다가 충동적으로 사람이 돼버렸지. 어떤 여자애가 너무 내 스타일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


 “하하! 하하하!!”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다섯 평 남짓한 내 자취방이 웃음소리로 가득 울렸다. 의자 위에서 웅크려 자던 네오가 화들짝 놀라 도망쳤다. “진짜, 극혐이다. 하하…… 그딴 건 대체 어디서 들어서 나한테 써먹는 거야? 너무 궁금해. 무슨 산악동호회 카페 같은 거 하냐?”


 “아, 안 믿으면 어쩔 수 없고……”


 “아니, 믿어. 믿는데…… 고양이면 중성화수술부터 해야지. 이리와!”


 “넌 진짜 미쳤어. 집에 갈래” 별안간 남자친구가 기겁을 하며 침대를 벗어나려고 들었다. 


 “아, 농담이야!” 내가 말했다.      


-     


 내 인생의 첫 남자친구가 전역하기 무섭게 유학을 떠나자, 나와 네오는 다시금 단 둘만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네오는 어질러진 자취방 곳곳에서 식빵을 굽는 자세로, 악랄한 교수들이 마구잡이로 낸 과제와 졸업논문에 시달리는 나를 쭉 지켜보곤 했으며, 나는 바쁜 와중에도 네오의 화장실 청소나 정기검진 그리고 좋아하는 사료와 간식을 구비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그 시기의 네오는 내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다.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하고자 1년간 휴학계를 내고 돌아오니 연락할 친구가 없었고, 멀리 떨어진 부모님은 막내 남동생의 수험생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연락이 끊겼다.


 머잖아 5년간의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학사모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오직 네오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네오에게, “나 드디어 졸업했어, 잘했지, 칭찬해줄래?” 하고 말하자마자, 나는 못내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며 한참을 울었다. 네오는 그런 나를 평소와 다름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아옹―”하는 소리를 내며 식빵 굽는 자세로 바꿔 앉았다. 살다보면 언제라도 그렇게 슬픈 날들이 있다.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마냥 고양이로서 있는 것뿐이라는 듯.


 그 뒤로도 네오는 쭉 나와 함께 있었다. 그 좁아터진 자취방에서 일 년을 더 살면서…… 이력서를 내는 족족 탈락을 거듭하다가 겨우겨우 취업에 성공했을 때도, 첫 회사에서 아득바득 버텨가며 티끌 같은 경력을 쌓아나가고, 지옥과 다름없는 회식을 끝내고 만취된 채 집에 돌아왔을 때도, 그러다가 우연히 인연을 마주치고, 어느 순간 속도위반으로 덜컥 결혼생활이 다가왔을 때도 네오가 있었다.


 심지어 예비남편이 노파심에 “네오가 우리 아기를 질투하면 어떡하지? 막 노려보다가 할퀴고 괴롭히고 그러면” 하며 되도 않는 걱정을 할 때도, 그걸 들은 내가 “네오는 절대 안 그래, 우리 가족이니까……”하고 평온히 대꾸할 때도. 네오는 곁에 앉아 식빵을 구우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줄 알았다.     


-     


 “……아무래도 사람보단 짧으니까요. 고양이의 수명이라는 게” 수의사는 무섭도록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오도 내년이면 벌써 열네 살인데, 이만하면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산 셈이에요. 건강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고양이였다면 이만큼이나 장수할 수도 없었을 거고요”


 “……네” 나는 목이 메어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동안 정말 좋은 집사셨어요. 저 뿐 아니라 네오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요. 지금 네오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게 아닙니다. 십 수 년 동안 행복한 고양이로서의 삶을 살다가, 조금씩 늙어가다가 곧 자연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뿐이에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동물병원 한쪽 구석에 놓인 케이지, 그 안에서 소리 없이 잠들어있는 네오를 생각하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나는 네오에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울지 않는 법’을 배우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라는 족속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제 멋대로 하다 가버린다. 결과적으로 말해 네오는 죽지 않았다. 죽음이 임박한 어느 날 아침, 늘 앉아있던 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난리가 났고, 난리통에 아이는 울상이 돼 한동안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갑작스런 실종이야말로 네오가 내게 베푼 최후의 슬픔이란 것을.


 네오가 사라진 그 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나는 세상에서 오직 외로운 사람들에게만 네오 같은 고양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네오는 외로운 내게 나타나서 외롭지 않을 때 떠났다. 그래서 지금은 저 멀리 어느 외로운 별로 되돌아가서, 어딘가 끝없는 장마를 지나보내고 있을 고독한 소녀 앞에 되살아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양이 별 헤는 밤>, 2020. 8     



-




<고양이 별>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아래 링크에서 이 글과 그림을 구매하거나, 혹은 다음의 작업물을 미리 예약함으로써 이 활동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오랫동안 쓰고 그릴 수 있게끔 작업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자 분께는 오직 하나 뿐인 글과 그림을 보내 드립니다. 


이 글과 그림 구매하기




+ 2018년 ~ 2019년에 쓴 약 일흔 편의 작업물 및 미공개본을 묶은 첫 단편소설집, 「시간과 장의사」가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