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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ul 27. 2020

습작

백예순아홉번째




 또 커피를 쏟았다. 플라스틱 컵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잠겨있던 얼음이 우수수 쏟아졌고, 차가운 커피가 얼룩처럼 제 땅을 넓혀나갔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쏟아진 액체의 표면을 거울삼아 비춘다.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날 쳐다본다. 몇몇은 금방 고개를 돌려 자신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쯔쯔, 조심 좀 하지, 하며 입방아를 찧는 사람도 있다. 그래, 맞는 말이다. 누가 모르겠는가. 가능하면 커피를 쏟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나, 일이 터지기 전에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실수하지 않을 능력이 있는 사람과, 그럴 능력이 없는 주제에 애쓰다 들키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살면서 쏟아버린 커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긁어모은다면 옥상의 물탱크 하나를 다 채우고도 몇 컵이 더 남을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그만큼 커피를 자주마시면서, 커피를 쏟지 않는 법은 깨닫질 못했다.


 나라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하고 싶지는 않다. 도대체 너는 학습능력이 없냐, 왜 맨날 비슷한 실수를 하느냐, 같은 말들을 더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겪는 딜레마란 이런 속편한 말들로 해결될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커피를 몇 번 쏟으며 잔소리를 듣고,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어떻게든 조심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몸이며 정신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긴장하는 것은 실수를 저지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나는 실수투성이다. 살아감에 있어 크고 작은 실수가 너무도 많아서, 나의 삶 자체가 거대한 실수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아주 가끔씩 내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거나, 계획대로 잘 되어가는 느낌이 들면 덜컥 두렵기까지 하다. 실수하는 사람이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큰 실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나는 태어나기를 실수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걸핏하면 “널 낳은 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야”같은 말을 퍼붓곤 했다. 실제로 날 유산시키겠답시고 계단에서 뒹굴었다가 양수가 일부 흘러나오기도 했다는 둥, 주제파악에 도움이 될법한 말들은 모조리 해댔다. 그 덕분인지 나는 오늘도 실수를 하고,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들을 위해 또 한 번 한심한 인간이 된다.


 한동안 커피를 흘리지 않고 마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명백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전에 있었던 결함을 고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런 안이함과 안도감, 편안함과 오만함이 쌓이고 쌓여 찰나의 순간에 터져 나온다. 나는 또 다시 커피를 쏟고 말았다. 베이지색 바지 자락에 거무튀튀한 물기가 튀어 번졌다. 오, 변함없는 실수, 발전 없는 어리석음. 


 부랴부랴 카운터에서 휴지 한 덩어리를 가져와 바닥을 훑어 닦았다. 나는 돌아온 실수에 무릎을 꿇었다. 남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일그러진 얼굴을 흘려보낸다. 그런 오늘의 실수. 카페인 한 줄기 없이 병든 정신을 일으켜 세우는, 한 모금의 시원함도 없이 동공을 열어젖히는.


 각성한 나의 곁으로 잠깐 동안 걸음을 늦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세상엔 너 빼고 실수 한 번 못 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찼다는 듯이. 저 역시 실수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이. 용납되지 않는 실수들을 뒤로 하고 완벽의 세계로 걸어 나갔다. 나 아닌 누군가의 실수로 온몸을 흠뻑 적셔가면서…….          



<엎질러진 커피>, 2020. 7     



<엎질러진 커피>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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