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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Jan 08. 2019

습작

두 번째

어제 엄마가 죽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어제 땅에 묻혔다. 아빠는 장례식이 시작하고 이틀 동안은 쉬지 않고 울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는 신기하리만큼 무표정했고, 때때로 웃기도 했다. 어쩐지 나는, 아빠가 외도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사인이 전혀 관계없는 뇌졸중인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별 수 없었다.


경기도 오지의 공동 무덤으로부터 집까지 오는 길은 몹시 길게 느껴졌다. 엄마의 짐은 내일 정리하기로 돼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오기도 했거니와 아빠가 방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서 엄마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엄마의 휴대폰은 삼 년 전으로 돌아가야 겨우 최신폰이라고 해줄 수 있는 모델이었다. 엄마는 종종 화면이 멈춘다고 불평불만하면서도, 새 걸로 하나 맞추라는 말에는 한사코 거절을 놓았다.


나는 죽은 사람의 휴대폰이, 장례식을 끝내고 마음속에서 영영 보낸 사람의 휴대폰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에 짐짓 놀랐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죽은 것이지 사람이 쓰던 물건마저 죽은 것은 아니므로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만 배터리는 이십 프로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자연스레 방전이 된 모양이었다. 출시된 지 한참 지난 모델이라 더욱 심했을 것이다.  


엄마의 휴대폰은 올해 초에 산 내 휴대폰과 비교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어찌나 작은지 되려 내 손가락이 커진 느낌이었다. 나는 엄마의 휴대폰 잠금을 풀어보려 했다. 엄마는 오랫동안 내 생일을 비밀번호 삼아 써왔는데, 언젠가 내게 '그건 너무 쉬운 비밀번호야'라는 타박을 듣고는 바꿔놓은 모양이었다. 사실은 정말 쉬운 비밀번호였다기 보다는, 그저 내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바꿔놓은 비밀번호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고작 바꾼 게 아빠의 생일일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생사여부 이외에는 전혀 다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휴대폰은 볼품없었다. 외양도 그랬고, 내용물은 더더욱 그랬다. 윗집 아주머니와 나눴던 메시지에는, 띄어쓰기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문자가 대문짝만 하게(엄마는 시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문자 크기를 최대로 조절해줘야 했다) 찍혀있었다. 메모 기능은 전혀 쓰지 않았던 것 같고, 유튜브 라이브러리에는 '기름때 5분 만에 쉽게 제거하기' '쉽게 쉬어버리는 밥, 왜 그럴까?' 같은 시답잖은 영상들만 남아있었다. 어플도 별 볼 일 없었다. 기본 어플을 빼면 새롭게 받은 것이 열 개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여섯 개는 내가 투덜대며 깔아준 것이었다. 나머지는 아빠든 윗집 아주머니든 물어물어 받았으리라.


나는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켜봤다. 엄마는 휴대폰에 깔려있는 기본 브라우저를 썼다. 기본으로 주는 건 느려 터졌으니까, 내가 깔아준 크롬을 쓰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역시 바뀌는 법이 없었다. 인터넷 사용기록을 들어가 봤다.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사용내역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쇼핑몰이었는데, 누르자마자 장바구니가 나왔다. 그래, 생전 엄마는 뭘 갖고 싶어 하셨나, 들여다봤더니 마찬가지로 죄 추레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이십만 원도 안 되는 저가형 로봇청소기, 고리가 달린 하얀색 고무장갑, 할머니가 아니라면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늬의 스카프…… 참내.


엄마의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물건 중 그나마 의외라고 할 수 있는 거라곤 홍삼과 고가의 헤드셋 정도였다. 홍삼? 엄마가 홍삼 같은 걸 먹으실 분이 아닌데. 아빠는 옛날부터 몸에 열이 많아서 삼이 안 맞는다고 했고, 취업 준비나 이 년째 하고 있는 내 주제에 홍삼을 먹일 리는 없었다. 고가의 헤드셋은 더 이상했다. 삼십만 원이 넘어가는 그 헤드셋은 무척 멋들어진 마이크가 달려있는, 게임할 때나 쓸 법한 하이엔드 모델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엄마는 생전 게임 같은 걸 해본 적 없는 분이었다. 난 엄마가 게임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었고, 하물며 그런 '장비 빨 세우기 좋아하는 겜창들이나 쓸 법한 헤드셋'을 양쪽 귀에 두르고 있는 모습이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메인 화면에서 잘못 누르거나 했겠지. 엄마가 터치를 잘못해서 일을 저지르는 건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두 달 전에는 관리비에 자릿수 하나를 추가해 송금하는 바람에 사달이 난 적도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나는 엄마의 휴대폰 전원을 껐다. 배터리가 오 퍼센트 남짓 남아있던 것을, 다 방전돼서 꺼질 바에야 내가 직접 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휴대폰을 거실 탁자 위에 던져놓고, 내 방에 돌아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눈을 떠서 일어나 보니 새벽 네 시였다. 방 안은 온통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동안 침대에 걸터앉아서, 야식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집 앞 편의점에 들를지를 고민하다가 말았다.


대신 꿀꿀한 기분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적당히 게임이나 하다가 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배틀그라운드를 한 게 언제였지? 세 달은 족히 된 것 같았다. 나는 컴퓨터 전원을 올리면서, 멀쩡하게 잘하던 게임을 왜 세 달 전에 접었는 지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냥 흥미를 잃었던가? 아니면 '그렇게 게임이나 할 거면 나가서 노가다라도 하라'는 엄마의 타박에 자극을 받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게임을 켜서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컴퓨터에 연결된 헤드셋을 들어 올렸는데, 마이크가 보기 흉하게 부러져 있었다. 난 그대로 침대에 처박혀 몇 시간 동안 울었다. 얼마나 울어댔는지 그땐 해가 뜨는지도 몰랐다. 정말 몰랐다.


<반송함>, 201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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