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묵돌 Jan 08. 2019

습작

세 번째

월요일 아침에는 으레 회의가 있었다. 판교에는 유리 건물이 많았는데, 내가 다니던 회사도 그 많은 유리 건물 중 한 채의 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 십칠 층 회의실에서 내려다보는 판교는 넓고 공허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회사가 위치한 건물에서 판교역까지 다다르는 길에는 하천이 있었고, 그 위로 짧달막한 다리가 하나 지나고 있었는데, 아주 못 봐줄 정도의 교량은 아니었다지만 매일같이 그 위를 건너 다니는 고가의 외제차들을 떠올려보면 몹시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다리 아래로는 다리보다도 더 초라한 하천이 잡초며 갈대를 둘렀고, 얇아졌다 또 굵어졌다 하며 불규칙적인 물줄기를 용케 사계절 내내 흘러 보냈다. 이 초라한 광경들을 건너자마자 나오는 블록, 엔씨소프트며 안랩 같은 국내 유수의 IT기업들이 그 신화적 위용을 껴안고 높게 하늘을 찔러대는 모습은, 같은 곳에 출근한 지 일 년이 넘어가도록 도통 적응이 되질 않았다. 나는 회의실에서 회의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판교역 가는 길목에 흐르는 그 이름 모를 하천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 바다가 되는지, 그리고 가장 아래층 혹은 지하층에 매장된 국밥과 고깃집들의 초라함에 대비되는 이 층계참의 불빛에 과연 자신이 어울릴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곤 했다.


널찍한 테이블 주위로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차고, 곧 의자가 동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서서 이 아침 조회를 맞이해야 했다. 팔십 명에 달하는 회사 전 직원들이 이삼십 평 남짓의 회의실에 부대껴 서서, 십 분이 넘게 대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나는 원생들 가운데서도 가장 산만한 아이였고, 줄을 서라고 하면 늘 어긋나거나 튀어나오는 녀석이었다. 난 무료할 때마다 간혹 이 의아한 사실을 기억해냈는데, 어째서 의아한 사실이냐면,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나만큼 가만히 앉아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도 없기 때문이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회사 대표가 지지난달부터 ‘매주 월요일 아침에 전 직원이 모여 회의를 하자’는 의견(사실은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지만)을 냈을 때도 그랬다. 업무 정리하기도 바쁜 월요일 아침에 무슨 회의냐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동료 직원들과 달리 나는 그저 군말 없이 이십 분 일찍 출근해 할 일을 정돈하고,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텅 빈 회의실 자리에 앉아 한 주의 시작을 기다렸던 것이다.


“자, 이번 주도 활기차게, 시작해볼까요? 오늘 날씨 많이 춥죠?”


대표가 회의실에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아홉 시가 되고도 십 분이 더 지난 시간이었다. 한창 북적거리던 회의실 분위기는 어느새 잦아들어서, 이내 수군거리는 소리만 몇 줄기 남아있었다. 그리고 약 백사십 개의 시선이 대표의 동선을 따라 좌에서 우로 천천히 옮겨갔다. 입밖에 낸 적은 없지만, 나는 가끔 대표가 이 같은 시선을 독점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들었고, 그래서 일부러 십 분에서 길게는 삼십 분까지 늦게 들어오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아니, 대답들이 하나도 없네. 역시 월요일 아침은 이렇다니까, 하하. 다들 주말들은 잘 보냈어요?”


“네” 직원들 가운데 열 명 정도가 일제히 대답했다. 대단히 힘 빠지는 소리였다.


“에이, 이게 뭐야. 좀 더 힘들 내봐요.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됐잖아요? 저도 노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이렇게 연휴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나만 그런가?”


“저도 그렇습니다!”


사업팀의 수염 기른 남자 한 명이 패기롭게 대답했다. 워낙 인상적인 마스크이고, 회사 안에서도 목소리를 잘 내는 터라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별안간 튀어나온 목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했는지 몇 명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되려 장난스런 분위기가 돼버렸다. 대표는 표정상으로는 웃고 있었다.


“그래요, 이런 패기 좋습니다. 결국 우리 같은 회사는 패기란 말이에요. 스타트업 정신, 뉴프론티어 정신, 이런 피상적 단어 같은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월요일 아침에 업무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올린다는 그 마음가짐으로부터 모든 혁신이라는 것이, 생겨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역시 지금도, 그다지 큰 회사는 아니지만은, 이 팔십 명의 훌륭한 직원을 가진 회사의 대표가 되고도 매일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납니다. 이 얘기는 전에 했던 가요? 아니,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했던가? 조선일보였나? 음, 아무튼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단은 기쁜 소식으로 시작을 하고 싶은데요……”


대표가 월요일 아침 회의마다 하는 말들은 어떤 면에서 주말 아침 목사님의 설교 말씀 같았다. 엇비슷한 내용들을 다른 표현,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바꿔 이야기한다는 면에서는 더없이 똑같았다. 대표는 한 달 전부터 말해왔던 외부 투자유치의 성공적인 무드를 또다시 언급하고 있었고, 따라올 말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직원들은 티 나지 않게 쪽잠을 자고 있었는데 나 또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게 졸다 일어나 보면 대표의 일장연설은 대강 마무리가 돼있었다. 이제는 절차상 필요한 질문들이 이어진 뒤에 자리에 돌아가는 것이다.


“자, 얘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대망의 주간 건의 시간입니다. 제가 말을 너무 길게 했나요? 시간이 조금 오버가 되긴 했는데. 괜찮죠? 어차피 월급은 똑같이 나가니까, 하하. 아무쪼록 직원으로서, 아니, 회사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제게 필요한 것을 이 자리에서 말해주시면, 최대한 빠르게 검토해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 건의사항 있으신 분?”


대표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 말 않은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서있었다.


“아니, 말하는 걸 다, 웬만하면 들어주겠다는데, 매주마다 건의사항이 하나도 없어요? 이건 조금 별론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게 아니잖아요. 필요한 게 있으면 재깍재깍 말할 수 있어야지. 사람이 좀 많아서 부담이 될 수는 있는데, 저도 겁쟁이지만 매주 이렇게 잘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아무나 뭐라도 제안을 해봐요. 이번에는 한 명이라도 없으면 안 끝내겠습니다. 난 정말 소원…… 건의사항을 들어주고 싶다니까요? 정말로! 이건 기회에요. 어서!”


대표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인공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거의 소리를 질러대는 수준으로 이야기했다. 직원들은 이제야 주변 사람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서서 건의사항을 말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몇몇 직원이 예의 수염 기른 사업팀 직원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남자는 애써 부끄럽다는 제스처를 하며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나! 아무 나라도 말해봐요! 빨리! 응? 정말 아무것도 없나? 우리 회사가 너무 좋은 회사라서 건의할 게 단 하나도 없는 거에요? 그런 겁니까?


“저…… 대표님”


“오! 드디어 나왔네요! 손은 안 들어도 되는데, 이리, 이리로 나와봐요. 어서”


대표는, 한 남자 직원이 선서하듯이 수줍게 들어 올린 손을 부여잡고 회의실 맨 앞까지 끌고 나왔다. 남자는 적당히 통통한 체격에 꽤 두꺼운 안경을 쓰고, 회색 맨투맨과 기장이 꽤 남는 넓은 통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 남자의 이름을 몰랐다. 그러나 남자의 수수한 인상과 착의로 미뤄봤을 때 개발팀 소속의 직원이라는 건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직원은 그중에서도 서버 딴을 맡고 있게 생겼다는 구체적인 추측까지 내놨다.


“그래요, 당신 이름이 뭐죠?”


“저는 배……”


“아니! 본명 말고! 회사에서는 본명 쓰지 말자구요”


“아, 음, 저는 찰리입니다. 개발팀 소속이고……”


“아하, 찰리! 왜 나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지, 이상하네, 그래요, 찰리. 필요한 게 뭐죠?


“그게, 의자요”


“의자?”


대표가 의외라는 투로 되물었다. 직원들 몇 명이 수군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개발팀은 업무 특성상, 물론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의자에 앉아서 오래 작업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몇 시간 일하다 보면 허리 통증이 엄청나서……”


“아, 의자를 바꿔달라구요?”


“음, 의자를 바꿔도 괜찮고……”


“아니, 잠깐만, 우리 회사 의자 괜찮은 건데? 시디즈라고, 꽤 유명한 브랜드에요. 거기서 산 건데. 또 내가 거기 아는 분이 계셔서 단체로 구매한 건데…… 아무튼 그게 허리가 아프다는 거죠?”


“아무래도 그렇죠”


“흠, 그런가? 지금 쓰는 것도 단가가 꽤 비싼 건데. 집에서는 무슨 의자를 쓰길래 회사 의자가 허리가 아프다는 거야? 하하. 농담이에요. 그런데 전체 직원들의 의자를 바꿔주는 건 좀 효율적이지 못할 것 같고, 아무리 비싼 의자라도 사람마다 안 맞을 수는 있는 거니까. 찰리 것만 내가 다른 걸로 바꿔줄게요. 어때요?”


“아, 아뇨, 그런 건 괜찮습니다”


“왜요? 부담돼서 그래요? 하하하, 새로 사는 건 좀 그런가? 아니면 저기, 제가 쓰는 의자를 대신드릴까요? 그건 이케아에서 산 건데, 지금 쓰고 있는 시디즈 거보다 단가는 낮지만 꽤 편해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의자보다는 서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시면”


“아, 서서 일하는 게 더 편해요?”


“네. 서서 일하면 허리는 안 아픕니다”


“아니, 그러면 자기 자리에서 그냥 서서 일하면 되지, 그게 굳이 공간이 필요한 거에요? 하하…… 아, 비웃는 건 아니에요, 오해하지 말아요, 그게 아니라, 정말 이해가 안 돼서”


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말하곤, 웃음기 띤 얼굴로 주위 직원들을 쓸어봤다. ‘이놈 좀 봐요’ 하는 표정이었다. 찰리는 어, 어, 아닙니다, 쿠션이라도 받치고 하면 될 것 같아요, 네, 하며 횡설수설하다가, 대표가 손목을 놔주자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도망치듯이 돌아갔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 상황을 무표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자, 건의사항을 받기는 했는데, 뭐랄까, 조금 더 합리적이고 리저너블한 그런 건의였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회삿돈을 허투루 써댈 순 없는 거니까. 쓰는 거야 문제가 없다지만 꼭 필요한 곳에 써야죠. 그럼 오늘은 일단 시간이 늦기도 했고, 나머지 건의는 쌓아뒀다가 다음 주 월요일에 말하는 걸로 하죠”


“네” 직원들 몇 명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지난주에 제가 건의한 거 있잖아요? 직원으로서 건의했던 거. 매일 법인 카드 같은 걸로 식대를 처리하는 게 비효율적이고, 매 점심마다 메뉴를 고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까, 요 아래층에 케이터링을 불러서 먹어보자는 거요. 그걸 구글 폼으로 투표에 붙였던 거 기억나요? 한 삼십 명 정도가 투표했는데, 찬성표가 스무 개라 일단은 기존의 방식을 버리는 것으로 하고, 오늘부터 케이터링을 불러 식사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오늘부터 점심은, 쓸데없는 고민할 필요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드시면 돼요…… 놀랐죠? 물론 이 방식이 싫다, 기존처럼 식사 메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좋다는 분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소수의 의견도 저는 존중하고 있어요. 다만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사안이니만큼 당분간은 케이터링으로 식사를 해보다가, 영 별로다 싶으면 원래의 방식이나, 더 좋은 방법으로 바꿔도 되는 거구요. 우린 스타트업이니까, 식사에 있어서도 린하게 가는 거죠. 괜찮죠? 근데, 케이터링은 아마 마음에 드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 건너편 건물 있잖아요? 거기서 오는 케이터링 서비스인데 거기 대표님과 제가 또 아는 사이거든요. 그래서 오성급 호텔 주방장들이 직접 조리하는 음식들을 회사에 앉아서 먹는데, 그걸 또 반값에 계약했다는 거에요. 효율적인 방식일 뿐만 아니라 생각지 못한 비용 축소 효과도 얻은 셈이 됐죠. 이렇게 아낀 비용은 또 여러분들에게 돌아갈 수 있구요. 멋지지 않나요? 자, 그럼 이번 주도 열심히 해봅시다! 파이팅!”


대표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가장 먼저 회의실을 나갔고, 뒤따라 나머지 칠십 명의 직원들이 줄지어 나갔다. 나는 대략 열다섯 번째 순서로 나올 수 있었다. 회의실과 회사에서의 내 자리는 꽤 거리가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 앉게 되면 또 점심시간까지는 일어날 일이 없었으므로, 난 천천히 회사를 둘러보며 걸어 돌아갔다. 늘 똑같이 켜져 있던 수십 개의 전등이 유독 창백했다. 나는 돌연 찰리가 어떤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다만 뒤돌아보니 두세 명 정도를 제외한 모두가 자리에 돌아간 모양이었고, 난 회사의 어느 방향에 개발팀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제자리에 돌아간 뒤에, 본격적인 업무를 앞둔 내 머릿속의 고민이라고는 고작 점심에 뭘 먹을지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난 지체 없이 스프레드시트를 띄워 일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의 회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그 뒤로 건의사항을 말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수평적 조직>, 2018. 12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