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심당
꼬질꼬질한 날씨였다. 모텔방에서 기껏 말리고 나온 머리가 바람에 다 헝클어졌다. 뉴스에선 중부지방에 강한 비가 내린다고 했다. 논산은 꿉꿉한 하늘에 바람만 불어대고 있으니 아마도 남부지방일게다. 난 모텔건물 뒤쪽 아무도 없는 공터를 거닐었다. 지난밤엔 보이지 않던 철로가 머리위로 우뚝 늘어져있다. 나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두 번쯤 지켜보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해가 뜬 논산. 논산역으로 가는 길에는 허름한 가게와 아저씨들이 서있었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장정 다섯이 농기구인지 뭔지 모를 기계를 중간에 놓고 떠들었다. 그 기계가 도통 무엇인지, 아재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초 뭘 알기 위해 떠난 여정도 아니다.
논산역은 고속철도가 정차하는 역 치곤 아담했다. 역에 오긴 왔는데 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살면서 튀김소보로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역에서 서대전으로 향하는 표를 끊었다. 흠, 먹었는데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럼 맛이 없었다고 글로 쓰면 될 일이다. 실로 명료한 결정이었다.
고속철도는 지나치게 빨랐다. 이미 지불한 운임은 둘째치더라도 그렇게 빠른 교통수단을 쓸 이유는 없었다. 도리어 내겐 도착지까지 여유가 있는 쪽이 좋았을 것이다. 창밖으로 넘실대는 풍경을 옆에 놓고 글 쓰는 일엔 익숙하다. 그럼에도 고속철도를 잡아 탄 이유는 하나였다. 논산에서 서대전으로 향하는 노선 중에 고속이 아닌 철도는 없었다. 세상에 그만큼 빠르고 싶어서 빠른 것들이 얼마나 있겠나 싶다.
서대전역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난 고작 하룻밤 있었던 논산을 기준삼아 비교했다. 이리 놓고보니 서울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은가, 좁아터진 공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고 있는가. 한숨같은 생각을 하며 서대전역 앞 버스정류장에 섰다. 대흥동성당으로 향하는 육백십이번 버스는 도착까지 십일 분이 남았다. 나는 용케 택시를 타지않고 버스를 기다렸다. 살던 동네에서 삼 분남은 버스가 답답해 택시를 탔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웃었다.
버스는 예닐곱 정류장을 지나 성당앞에 도착했다. 나는 성당이 좋다.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다섯살에 세례를 받았지만 그 때문은 아니다. 성당은 대개 과함이 없다. 동네 여느 건물들 사이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서있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성당이 똑같겠느냐만, 적어도 내가 봐온 성당들은 그랬다. 수줍다면 수줍고, 단아하다면 단아하다 할 수 있는 멋 같은 것이 있다. 성당 앞에는 번화한 사거리가 있었다. 대흥동성당은 그 사거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는데, 그럼에도 높이 올려다보아야 거기 있었다. 성전은 베이지색으로 합장을 하는 듯했다.
나는 길모퉁이를 돌아 성심당 본점으로 향했다. 조금 전 사거리보다 더 번화한 거리가 펼쳐졌다. 성심당 앞에는 유난히 사람이 붐볐다. 나는 성심당에서 두 가지.. 빵의 종류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과, 빵가게에서 틀어놓은 배경음악이 한화이글스 응원가라는 것에 놀랐다. 이빵저빵을 둘러보다 결국 튀김소보로와 목장우유만 하나씩 사서 나왔다.
튀김소보로는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물론 정말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안구건조증이 있기 때문에. 내가 느끼기에 튀김소보로의 진가는 튀김보다도 팥 앙금에 있었다. 꽉 차있으면서도 넘치지 않는, 달게 발려오면서도 물리지않는 기적의 팥앙금. 오갈데 없어 길거리 벤치에 앉아 먹는데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하나 쯤 더 사먹어도 좋지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 번 더 먹는다고 똑같은 맛이 나진 않겠지. 가장 맛있게 먹은 지금 떠나야만 또 올 수 있겠지. 난 성심당으로부터 발길을 돌려 나가는 스스로가 기특해 죽을 지경이었다. 상으로 나중에 튀김소보로나 줘야지. 그땐 팥 아니라 고구마 앙금이 들어간 것으로 줘야지.
나는 조금 떨어진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그리고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는 지인과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서울을 떠나온 감상에 대한 이야기, 회사를 정리한 이야기, 최근 느낀 인간관계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 오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허기가 졌다. 카페에서 프레첼과 진저비어를 주문해 함께 먹었다. 프레첼에는 크림치즈가 있었고 진저비어에는 알콜이 없었다. 나는 배불리 먹고 지인의 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닌텐도 스위치를 처음 만져봤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조금씩 플레이해봤다. 아주 잠깐 해봤을 뿐인데. 글을 다쓰고 서울로 돌아가면 반드시 닌텐도 스위치를 사야겠다. 남의 집에서 오래 게임을 붙잡고 있는 건 실례 같아서, 곧 끄고 이야기를 나누다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침대위에서 내게, ‘내일은 어디로 갈 거냐, 어디가지 말고 같이 전시회나 가자’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새벽 다섯 시쯤 역마 발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그 길로 집을 나와 터미널로 향했다. 아직 잠들어있을 지인에게는 미안했다. 다음에 또 보자는 짧은 문자만 남겼다. 내가 어딜 가겠나? 나도 잘 몰라서 터미널 직원에게 아무데나가는 가장 빠른 표 주세요, 했다. 직원은 눈썹을 들어 내 얼굴을 살피다가, 이내 육천구백원입니다, 한다. 나는 내민 카드를 표와 함께 받았다. 표에는 오전 여섯 시 삼십 분에 전주로 가라고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