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얼마 전 주말 백팩에 그림책 한 권을 찔러 넣고 경쾌하게 집을 나섰다. 매일 출근할 때 타는 버스를 똑같이 탔는데도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설렜다. 2년 전에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아껴왔던 책의 북토크가 우연히 열렸고, 곧 그 책을 쓰신 작가님을 만나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만드느라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를 들으며 어디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꾸역꾸역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안의 감정 둑이 터져 교정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날 점심시간에 서점에 들러 평소 궁금했던 이 책을 내게 선물했다.
표지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잔잔하고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년이 담겨 있다. 이 표지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림책이니만큼 분량이 적으니 점심시간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사무실에 복귀해 책을 펼쳤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활자는 다 읽었지만, 책을 쉽게 닫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울림과 잔열이 오래 남았다. 평생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은 이렇다. 학교에서 맨 뒷자리에 앉는 소년은 늘 말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바람이 애석하게도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한 사람씩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고, 소년이 말할 차례인데 소년의 입은 꼼짝도 안 한다. 발표를 망친 울적한 기분을 알아챈 아빠는 소년을 강가로 데리고 간다.
아빠는 내가 슬퍼하는 걸 보고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어요.
그러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빠는 말했어요.
내가 강물처럼 말한다고.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울음을 삼킬 수 있거든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이 책 내용은 조던 스콧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다. 어렸을 적 말을 더듬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내는 게 고통스러웠던 시인에게 아버지는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라고 이야기해 주셨다고 한다.
이 책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말을 더듬지는 않았지만, ‘말소리가 작은 아이’였다. 가장 상처로 남은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일으켜 “목소리가 너무 작다”고 비아냥거리셨다.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운동장을 뛰고 오라고 명령하듯 말씀하셨고, 그렇게 운동장을 뛰었던 거 같다. 그날 하필이면 엄마가 학부모 참관 수업에 오시는 날이었고, 열 살의 나는 내 모습을 엄마에게 들켰을까 봐 마음 졸였다. 어린 나이에도 분명한 수치심을 느꼈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그 시절 누군가가 나에게 “목소리를 키워야만 해”라는 위압적인 말보다는, “너는 풀잎처럼 말하는 아이야” 같은 섬세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줬으면 어땠을까. 더 많은 말을 신나게 떠드는 아이가, 어쩌면 좀 더 경쾌하고 해맑은 아이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어렸을 적 깊게 베여 있던 상처 하나에 연고가 덧발라진 느낌이었다. ‘그림책이 건네는 위로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거대한 치유를 받았다.
내가 참석한 북토크는 ‘와우북페스티벌’이었고,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조던 스콧 시인이 캐나다에서 직접 오셨다. 이 책을 번역한 김지은 문화평론가님과 정용준 소설가님이 함께하셨는데, 이 자리 한 귀퉁이에 내가 참석해 있다는 게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김지은 평론가님이 이 책을 번역한 걸 아는 한 아이가 평론가님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말 더듬는 걸로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야”라고 종이에 적은 후 필통에 넣어 자주 들여다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나처럼, 다정한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이 여전히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함께 북토크에 참여한 정용준 소설가님의 《가나》라는 소설집 속 단편 〈떠떠떠, 떠〉에도 말을 더듬는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한다. 소설가님 역시 어렸을 적 말을 더듬었고, 자신이 투영된 이야기라고 말씀하셨다. 정용준 소설가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중에서도 보물 같은 귀중한 내용이 많았다.
“자전적 경험을 글로 남기는 건 온전히 저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독자에겐 작가의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설명할 수 없는 진심이 닿게된다. 이것이 자전적 경험이 주는 힘”이라고 하셨다. 또 “어렸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라도, 이 경험의 진실이 하나의 깨달음이 되는 게 예술과 문학의 접점”이라고 하셨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조언해 주셨는데, 학교에서 일기와 감상문 쓰기 등 여러 글쓰기를 시키지만, “내가 좋은 게 뭔지, 내가 느낀 느낌을 표현해 나가는 게 창작”이라고 하셨다. 소설가님께서는 지금도 편한 자리에선 긴장을 안 해도 되니 말을 더듬는다고 하셨다.
조던 스콧 시인은 아들이 학교 숙제로 일기를 쓸 때면, 시간 순서도 다르게 또 상상을 가미하며 쓰는데, 선생님께서는 “이게 말이 돼?”라고 아이의 글을 평가하신다고 한다. 시인은 그런 선생님의 첨삭 말을 찢어버리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다고 한다.
말을 더듬든, 말소리가 작든, 일기에 상상을 덧붙이든 틀린 건 없다. 적어도 평가를 내리기보단, 시인의 아버지처럼 또 시인처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섬세하고 다정한 언어로 응원해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버지가 나를 강으로 데려가 주시면 외로움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는 강물을 가리키며 강물의 이미지와 언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강물 같은 내 은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아버지는 자연의 움직임 속에도 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덕분에 나는 내 입이 바깥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강물 앞에 서면서 유창하다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어요. 강에도 강의 어귀가 있고, 물살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합쳐지는 곳이 있어요. 강물은 자연스레 꾸준히 흐르면서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요. 자신의 길을 만들어요. 그런데 강물도 더듬거리며 흘러가요. 내가 더듬거리는 것처럼요.
말을 더듬으면서 나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기도 해요.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