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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estories Nov 29. 2020

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

9년 2개월 하고도 19일.

검은 새벽녘 사옥 가는 길도 찾지 못해 헤맸던 신입사원에서 퇴사를 아쉬워하는 몇 명의 팀원을 둔 팀장이 될 정도로 꽤 오랜 시간 몸담았던 나의 첫 회사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마음이 맞는 동기, 그리고 선배와 사업을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창업 아이템으로 어떤 것이 좋을지 간간이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자주 모여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 만남이라는 것이 밥 먹고, 커피 한잔 하고, 술자리로 이어지는 것이 부지기수라 한 달에 드는 비용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우리 이럴 바에는 공간을 하나 얻자! 그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창업은 여러 가지 분야로 가치 지기 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빈티지샵이다. 한국에서는 ‘빈티지’ 하면 ‘구제’라는 인식이 강하고, 수요가 많지 않은 시장이기도 한데,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빈티지샵을 경로에 넣어서 꼭 방문하고 우리가 소비하는 것과 다른 형태로 빈티지 혹은 중고품을 향유하는 외국의 다양한 유통 형태를 보면서 우리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 가졌던 생각처럼 ‘저렴한 가격에 막사서 입어보는 빈티지’ 가 아니라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재미있게 입을 수 있는 소중하게 다뤄진 빈티지’ 를 판매하고 싶었다.  


퇴사 후 한 달간 퇴사 기념 여행 및 빈티지 바잉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캐나다와 미국을 다니며 빈티지샵을 다녀보고, 각기 다른 유통형태와 소비문화를 관찰했다. 동네마다 빈티지샵이 있었고, 나이에 상관없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 샵을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동네마다 빈티지샵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얼마나 그들의 삶에 밀접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놀라웠다.


내가 살펴본 빈티지샵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   Antique store (골동품 가게) : 오래된 골동품이나 가치가 있는 아이템들을 판매하는 상점. 희귀한 아이템이 많고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    Vintage store (빈티지 가게) : 도매상 또는 중간 셀러를 통해 중고물품을 바잉해서 판매하는 상점. 보통 브랜드나 컨디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며 중~고가로 형성되어 있다.

 -   Consignment store (판매대행 중고 가게) :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위탁해서 판매를 맡기고,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형태로 운영되는 상점. 일정 기간 판매하고 그 후에는 반환받거나, 기부가 가능하다. 현재 운영되는 브랜드의 옷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   Thrift store (기부형 중고가게) :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기부하고, 그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상점. 보통 수익금도 기부하는 비영리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아름다운 가게 같은 형태지만 보통 그 규모가 훨씬 크다.

 -   Vintage flea market (벼룩시장, 중고거래 지역행사) :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주기에 따라 운영된다. 셀러는 미리 신청을 통해 선정되며,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판매가 가능하다.


퇴사 및 바잉여행을 통해 내가 가져온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는 온라인 기반의 빈티지 스토어를 오픈하고 추후 consignment store 형태까지 확장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상호가 남았는데 우리의 가치관과 운영방침이 잘 녹여진 이름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서로 가져온 여러 이름을 살펴봐도 다음 날 되면 또 마음이 바뀌곤 했다. 그렇게 고심 끝에 정해진 이름. (무엇보다 사업자를 내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다. 뭐든 저지르고 보면 일이 빨리 진행된다.)


As you like it.


뜻대로 하세요.

뜻하는 대로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하기 원하는 마음을 담아.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끔 현장 근무를 할 때가 있었다.

매장을 찾은 손님들을 응대하다 보면, 일단 옷을 입어본다는 것에 대해 눈치를 보는 손님들도 많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는 손님도 많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누가 나를 이렇게 저렇게 볼까 봐 걱정하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


빈티지는 일단 빈티지라는 영역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취향이 드러나는 일이고, 대부분 원하는 것이 명확한 손님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뜻대로,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만들었다.


이름을 정하고, 첫 촬영을 하고, 판매 준비가 끝났다.


온라인 기반으로, 그것도 인스타그램을 판매 플랫폼으로 정하고 누가 알아줄까 하며 판매 피드를

올리고 이틀째 되는 날, 덜컥 코디한 아이템이 세트로 판매되었다. (미팅 때문에 셋이 나란히 앉아 있다가 주문이 들어와서 소리 지르며 박수 치던 그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각보다 반응이 있어, 온라인으로 오픈하고 두 달 뒤 쇼룸을 갖게 되었다. 세 명 모두 패션회사 출신이고, 도합 수백개가 넘는 매장을 오픈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은 작은 평수라도 쉽지 않았다. 빈티지 샵이지만 편집샵 같은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 세탁과 수선이 완료되어 빈티지 특유의 냄새가 없고 향기로운, 옷을 마음껏 입어보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오픈한 쇼룸은 이제 일 년 반이 되어간다.


한 벌에 재고 하나.

한 벌에 주인 한 명.

오직 한 명만 만날 수 있는 옷을 판매하는 지금, 하루하루가 신데렐라를 찾아 돌아다닌 왕자의 신하가 된 기분이다. 꼭 맞는 유리구두를 신은 것처럼 각기 주인을 찾아가는 아이템을 발견하는 일도, 보내주는 일도 꽤 재미가 있다. 특히 빈티지 구매는 처음이라며 입문하는 손님들이 많은데 그렇게 단골이 되는 손님들이 생기면 기분이 참 좋다.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의 삶에 소소한 재미를 주는 그 작은 영향력이 내 삶에는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매일 입어야 하는 옷이 재미있었으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거기에 시간이 깃든 매력적인 것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쇼룸 입구에 작은 크기로 붙여 둔 글귀인데, 오가는 손님들이 편하게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

았다. 비단 옷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을 가졌으면 한다. 뜻대로 할 수

있는 취향이 있다는 것은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방법 중 하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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