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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estories Nov 29. 2020

Life is too short

to wear boring clothes

Life is too short to wear boring clothes.

출장으로 떠난 상해의 어느 골목을 지나며 본 길 한가운데 놓여있던 입간판의 문구가 내 발길을 사로잡았다. 입간판이 놓여있던 대로변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중정이 나오고, 그 안에 여러 가게 중 한 옷가게가 그 입간판의 주인이었다. 가게의 옷들은 그리 기억에 나지 않았지만, 그 문구만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평소 눈에 띄는 옷을 입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이 괜한 위축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는데, 이것 봐! 괜찮아 그래도! 라고 격려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듯한 공감이자, 지루하지 않게 옷을 자주 사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듯한 느낌 때문이랄까. 위안이자 위트가 믹스된 이 문장이 참 반가웠다. 


“제일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란 나에게 너무 어렵다. 각각의 색이 가진 고유의 느낌은 다 그 나름의 매력이 넘친다. 게다가 채도와 명도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이 된다. 연한 블루 컬러는 하늘하늘하고 여린 느낌 때문에 좋고, 마젠타 핑크 컬러는 명료하면서도 강한 느낌이 들어 좋다. 진한 차콜 컬러는 단정하고 단단한 느낌이 들고, 쨍한 오렌지 컬러는 경쾌하면서 산뜻한 기분이 들고, 물기를 머금은 민트 컬러는 고요하고 차분해서 좋다. 블랙 컬러는 단정하면서도 시크하고, 개나리 같은 옐로우 컬러는 해사하면서도 반가운 기분이 들고, 레드 와인 같은 버건디 컬러는 비밀이 많은 것 같아 좋다. 때와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좋아하는 색들을 마음껏 믹스해서 입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로, 이 컬러들이 소재를 만나면 또 그 느낌이 무궁무진해진다. 


같은 블랙 컬러라도 실크를 만나면 은은한 광택감이 돌면서 차르르 흐르는 우아한 느낌이 들고, 울을 만나면 차분하면서 포근한 느낌이 들고, 쉬폰을 만나면 섹시하면서 은밀한 느낌이 들고, 벨벳을 만나면 고급스러우면서 따뜻한 느낌이 들고, 면을 만나면 활동적이면서 깨끗한 느낌이 든다.    

어느 날은 컬러가, 어느 날은 소재가, 어느 날은 소품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컬러, 소재의 옷과 소품들이 만나서 그 날의 아웃핏이 되고, 그것은 그 날에 대한 나의 각오이자 태도가 된다. 오늘을 이렇게 살아내야지, 하는 다짐을 온종일 입고 있는 옷에 담아보는 것이다. (교복을 벗은 후 십 수년간의 자체 임상시험을 통해 이것은 꽤 유의미한 방법이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대부분의 패션 회사는 어떤 풍으로 옷을 입어야 하거나, 자사 옷을 자주 입거나 해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 당시 한창 회사에서 권장했던 문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옷 잘 입기”. 매주 2도 배색으로 같은 브랜드 전 직원이 컨셉에 맞춰 옷을 사진을 찍는 행사로, 그 주의 컨셉이 레드, 네이비에 마린룩이면 2가지 컬러로만 전 직원이 코디를 맞춰서 입는 것이다. 매주 한 번 입고 찾지 않을 옷을 사서 억지로 입는 웃지 못할 촌극이 펼쳐졌다. 평소에도 눈에 튀는 옷을 입으면 안 되는 나날들이었고, 나름 조절한다고 해도 튀어 보이는 나는 디자인실장에게 눈엣가시였으리라. 나에게는 고역이자, 패션강점기 같은 나날이었다. 

패션 회사에 입사했는데 눈에 띈다고 지적을 받으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난하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도 그런 시기는 금세 지나고, 지금은 그 실장님에게 자기 소리 듣는 사이가 되었다. 


널 만나고 내가 달라졌어. 

상당히 로맨틱한 멘트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쪽은 아니다. 나와 친한 지인들이 많이 하는 말인데, 저런 색을 입어도 되나? 저런 패턴을 입어도 되나? 이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보고 아 저래도 되는구나, 혹은 나도 해 봐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도전해보게 됐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면 취향을 또 하나 발견한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것은 내 취향이 아님을 발견한 것이니까 그대로 또 좋다. 나를 통해 작은 시도를 해보고 그의 세상이 조금 넓어졌다면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빈티지도 마찬가지다. 제가 빈티지는 처음 사보는데요. 라는 말을 하는 손님을 만나면 반갑다. 익숙한 것에 대한 관성 대신 새로운 모험을 해보려는 사람을 늘 응원한다. 정성껏 응대해주고, 좋은 첫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의 삶의 한 카테고리에 첫 문을 열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삶은 하던 것만 하며 지루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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