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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Nov 26. 2020

다정해질수 있을까

요즘들어 부쩍 내 글이나 말에서 “다정”하다는 표현을 자주쓰는것을 깨달았다. 구태여 깨달은 것을 보면 예전에는 좀처럼 찾아볼수 없었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내가 요즘들어 부쩍 “다정”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것이다.


다정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묻는다면, 난 다정한'척' 하는 것을 꽤 체질에 맞아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다정한 것을 다정한 “척”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으니 어려웠으려나? ..  그래 나는 그다지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는게 맞겠다. 난 엄마에게 다정하지 못한 딸이었고, 남편에게도 그다지 다정한 아내는 아니다. 글쎄, 아이들에게도 다정하기만한 엄마는 아닌것 같다. 다정한 마음과 다정한 표현은 나에게 전혀 다른 것으로 뚝 떼어 놓아도 이상할것 없는 것이어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되지 그걸 꼭 표현을 해야하냐고 생각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안타깝게도 나는 다정한 것이 뭔지 잘 몰랐던것 같기도 하다. 친절하고 공손하게 구는건 어렵지 않았지만 살갑고 다정하게 구는건 내겐 늘 어색한 숙제였다.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최근에 읽었다. 한국에 사는 다정한 친구가 편하게 읽기에 좋았다며 권해줬다. 난 연애소설은 좋아하지만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연애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늘 바보같이 기다리는 남자란 없고, 우연은 그렇게 늘 계속되지는 않으며, 사랑은 항상 해피앤딩이 아니니까. 게다가 늘 한결같이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책속의 주인공인 책방 주인이자 오랫동안 짝사랑을 한 남자는 여러모로 둘러봐도 그저 다정한 남자였다. 그 남자가 쓰는 글은 읽기만 해도 다정하다.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정하게 생긴 남자 배우가 그 역할을 했겠거니 생각한다. “다정”하다는건 예전에 생각했던것 만큼 간질거리거나 너무 말랑말랑한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쩌면 사람관계를 좁히는데 가장 필연적인 표현인것 같기도 했다. 살면서 남의 이목때문에 혹은 내 성격이나 자존심때문에, 그도 아니면 때로는 귀찮고 편협한 마음에 그 좋은 “다정함”을 무심하게 지나쳤던것 같기도 하다. 다정함을 주는것에 서툰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다정함을 받는 것에도 영 소질이 없었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다가오는것을 밀어내는것은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냥 깨끗하고 투명하고 다정하기만 한 소설책 한권을 읽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신것처럼 가슴 어딘가가 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더불어 가끔이지만 멀리서 마음을 전하고 책을 전하고 음악을 전해주는 다정한 친구에게 감사했다. 생각해보면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살아온것 같기도 하다. 내가 태어나기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에게 다정한 엄마와, 예민하게 구는 나를 다정하게 다독이는 남편과, 멀리서도 늘 다정한 마음을 보내오는 친구들, 그리고 굿나잇 키스를 해줄때마다 “you are the best mom ever” 라고 속삭여주는 다정한 딸아이.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다정한 딸이고, 아내이고, 친구이고, 엄마였을까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소설책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에는 내가 너무 오랫동안 “다정함”에 굶주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보니 다른 사람에게 “다정함”을 베푸는데 내가 너무 인색했구나 싶다. 전화로 하는 말 한마디나 카드, 아니 수시로 울려대는 말 한마디로도 “다정함”을 표현할수 있는 길은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나는 다정해질수 있을까?



덧. 스스로의 이름을 "다정"이라는 예명으로 부르며 다정한 사람이 되길 원햇던 안다정했던 대학선배가 하나 떠오른다. 어이없다면서 마음껏 비웃어줬었는데, 뭐야 그 선배는 그 나이에 벌써 "다정"의 가치를 깨달았던 거야?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 






커버이미지 by Marek Piwnic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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