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에디슨은 기차에서 처음으로 창업을 하고 수완을 발휘합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에디슨 다시보기(https://brunch.co.kr/@ipnomics/3) 연재로 시작합니다.
1859년 늦을 가을 에디슨의 나이 12살, 이제 에디슨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이 무렵 아버지 새뮤얼의 사업은 어려웠고 에디슨이 농장일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이 가족의 생계에 큰 보탬이 될 정도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가지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낸시 여사는 여러 이유를 들어 말렸다. 그러나 에디슨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그녀는 그랜드 트렁크 철도회사(Grand Trunk Railway)에서 신문판매 일을 허락했다.
첫번째 창업
에디슨은 매일 아침 8시, 디트로이트로 출발하는 기차의 화물칸에 신문, 잡지, 과일 등을 실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까지 가는 3시간의 여정 동안 이 물건들을 팔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디슨은 디트로이트와 포트휴런과는 물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 물가 차이를 이용한 사업에 착수했다. 먼저 두 소년을 고용하여 포트휴런에 점포 두 개를 열었다. 하나는 신문과 잡지, 또 다른 하나는 채소와 버터 등을 팔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 가게에서 판매할 물건은 기차역 주변에 사는 농부 또는 디트로이트에서 도매가격으로 구매했다. 구매한 물건의 운반은 기차의 화물칸 중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했다. 운반에 필요한 인력은 철도회사 노동자의 도움을 받았다. 대신에 물건 운반을 도와준 노동자들에게는 할인된 가격으로 버터와 채소 등을 팔았다. 이 비즈니스는 꽤 잘 되어 에디슨은 다른 역으로 확장하였다.
화학실험과 폐쇄
에디슨은 신문판매와 채소가게 사업을 하면서 화학실험에 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인구 5만의 번화한 도시로 산업과 운송의 거대한 중심지였다. 그곳에는 어떤 종류의 화학 약품도 팔고 있었다. 에디슨은 화학 약품을 마음껏 구매했다. 마침내 열차의 화물칸에 자신만의 화학실험실을 차렸다. 기차의 차장은 사전에 이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우연히 그가 가지고 있던 화학 약품이 공기에 노출되면서 열차 내부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그의 실험실은 폐쇄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