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기를
동시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제목은 ‘엄마 무릎’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맞춰 낭송해봅니다. 세상에 ‘엄마’라는 글자가 붙은 제목 치고 정겹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요. 시든 노래든 모든 사물 속에 엄마가 깃들어 있으면 이불처럼 포근해집니다.
엄마 무릎
임길택
귀이개를 가지고 엄마한테 가면
엄마는 귀찮다 하면서도
햇빛 잘 드는 쪽으로 가려 앉아
무릎에 나를 뉘여 줍니다.
그러고 선 내 귓바퀴를 잡아 늘이며
갈그락갈그락 귀지를 파냅니다
“아이고, 니가 이러니까 말을 안 듣지”
엄마는 들어 낸 귀지를 내 눈앞에 내 보입니다.
그러고는
뜯어놓은 휴지 조각에 귀지를 털어놓고
다시 귓속을 간질입니다.
고개를 돌려 누울 때에
나는 다시 엄마 무릎 내를 맡습니다.
스르르 잠에 빠져듭니다.
‘엄마 내’라는 시어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나는 책을 덮어 교탁에 올려놓고 열한 살 어린이들에게 묻습니다.
“엄마 내 맡아본 사람?”
수업 목표는 글쓴이의 중심 생각 찾기인데, 뜬금없이 ‘엄마 내’를 물으니 모두 아리송한가 봅니다. 하나같이 눈만 동그래질 뿐입니다. 아이들 키가 벌써 엄마 어깨까지 만큼 닿을 만큼 많이 자라서, 그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까요. 찬찬히 떠올려 보라며 기다려 봅니다.
“우리 엄마한테 가면 화장품 냄새가 나는데요.”
“엄마가 방 닦을 때 땀 냄새가 났어요.”
“엄마 옆에 가면 샴푸 냄새가 나지 않나?”
남보다 빨리 발표하기를 좋아하는 아이 몇몇이 얼렁뚱땅 대답을 합니다. 나는 도리질을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서는 느낄 수 없는 엄마 내, 엄마가 없을 때 더 맡고 싶은 엄마 내, 그런 것이 엄마 내라고 암시를 줍니다. 아이들은 다시 잠잠해지고 나는 좀 안타까워집니다.
엄마 내를 찾으려는 듯 코를 씰룩거리는 아이, 손가락만 입에 물고 멀뚱 천장을 바라보는 아이, 짝꿍과 눈을 맞춘 채 ‘대체 뭐지?’ 하는 아이, 각양각색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뿐 선뜻 손을 들고 발표하지 않습니다. 이건 참 의외입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잊고 있던 엄마 내를 꼭 찾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맨 뒷줄에서 손 하나가 불쑥 올라옵니다.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큰 상현이입니다.
“베개에서 엄마 냄새 맡아봤어요!”
그래 맞다! 맞다! 나는 너무 반가워 박수를 쳐 줍니다. 그제야 아이들 눈이 반짝거립니다. 드디어 고사리 손이 여기저기 쑥쑥 올라옵니다.
“엄마가 안아 줄 때 그 냄새 말이죠. 나도 전에 맡아보았어요.”
“우리 동생이 잘 때 목덜미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해요.”
“나도 기억나요. 달콤하지는 않은데 달콤한 것 같은 냄새예요.”
교실 안은 어느덧 포근한 엄마 내가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을 저만 알고 있기에 더 들뜹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엄마 내’에 대해 발표를 시키지 않고 덮어두었던 국어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한 아이가 눈에 밟혀서 그렇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동생과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 퇴근할 때, 텅 빈 운동장에서 유치원 동생과 놀아주는 아이를 봅니다. 엄마처럼 동생을 돌보는 착한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내는 엄마가 없을 때 더 사무치게 그립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