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처럼

교실에는 맑고도 투명한 실개천이 흐른다

by 최형식

맑은 아침, 아이가 학교 현관에서 하얀 실내화로 갈아 신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새처럼 가볍습니다. 콩콩 단숨에 교실까지 오는 걸음이 얼마나 날렵한지, 파랑새 한 마리가 실개천을 스쳐 오르는 듯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갖지 못한 가벼움의 미학이 있습니다.


교실에 들어온 열한 살 지우가 제 자랑을 쏟아놓았습니다.

“선생님, 우와! 나 어제 대박 났어요.”

“뭔데?”

“원호가 날 좋아한데요. 문자로 그랬어요.”

덜렁이 원호가 여학생한테 관심을? 그 무뚝뚝이 개구쟁이가? 아무래도 뻥 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 한번 보자”라고 했더니, 서슴없이 휴대폰 화면을 공개합니다. 헐! 휴대폰 액정화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여도 되나요]

“오! 대단한데”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지우 양도 ‘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라는 도도한 눈빛을 보내고, 제 자리로 휘리릭 돌아갔습니다. 지후가 떠나자 아까부터 옆에서 지켜보던 꼬맹이 서은이가 부러운 듯 내게 말합니다.

“지우, 대따 인기 좋아요. 다른 반 남자아이도 좋아해요. 민혁이도 좋아해요”


민혁이까지?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닙니다. 민혁이가 누군가! 하얗고 작은 얼굴에 오똑 선 콧날. 검은 띠 삼품을 자랑하는 시 대표 어린이 태권왕입니다. 지난달, 봄소풍을 갔을 때, 우연히 같은 장소로 소풍을 온 여중생들이 “누나들 하고 사진 한번 찍자. 제발”하면서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습니다.


때마침 민혁 군이 황금빛으로 물들인 금발을 휘날리며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녀석은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합니다. 나는 아우라를 발산하며 제자리로 가는 인기남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귀에 대고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너 지우 좋아한다며?”

순간, 민혁이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살짝 돌아봅니다. 그리고 대답 대신 빙긋 웃고 제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꼬마 여학생들은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고 싶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맑고 투명합니다. 첫 시간 수업이 끝나자마자 또 지우가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제 새끼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말합니다.

“아이 참, 손가락 다쳤어요.”

에게게! 겨우 살짝 긁힌 정도입니다. 이 속 보이는 어리광은 선생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나는 손가락에 호 해주고 나서, “남자애들이 왜 너를 좋아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지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잘 모르겠다며 살짝 튕깁니다. 나는 진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채근했지요.

“선생님이 비밀 잘 지키는 것 알잖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진짜로!”

나는 두 손으로 나팔꽃을 만들어 내 귀에 펼쳐 보였습니다. 지우가 조심조심 다가와 속삭입니다.

“예쁜가 봐요. 어제 민혁이가 전화로 그랬어요. 내가 예쁘다고요.”


열한 살 아이의 깜찍한 사랑 이야기와 상관없이, 교실 여기저기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웃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맑은 실개천에 따라 춤추는 파랑새들 같습니다. 돌과 수풀과 바람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파랑새들 사이에서, 나는 참 행복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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