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에 아이가 불러주던 자장가 이야기
아주 오랜 전 이야기입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네 살짜리 딸한테 “나중에 커서 뭐 되고 싶어?” 하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꼬마는 잠시 눈을 반짝거리더니 “기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림책에서 본 기린이 제일 멋져 보였나 봅니다. 그러자 그 옆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제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던 세 살 아들도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자동차!”
그즈음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 한 분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우리 집에 선사했습니다. 하얀 털북숭이 강아지는 딸과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이한 동물 가족이었지요. 아이들은 강아지 이름을 ‘멍멍이’라고 지었습니다. 몇 달 후, 멍멍이를 데려다 주신 선생님 부부가 우리 집에 들렀을 때, 아이들은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멍멍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음씨 좋은 멍멍이 선생님과 멍멍이 사모님은 유쾌하게 웃으셨습니다. 아이들이 저희들 맘대로 지어 부른 별명은 또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별명, ‘오이 할머니’입니다. 그렇지만 길쭉하고 신선한 녹색 채소를 뜻하는 ‘오이’가 아닙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오냐 할머니’가 되겠습니다.
남도 사투리를 쓰시는 어머니는 손자들이 “할머니!” 하고 부르면 “오이~”라 답하며 활짝 웃으십니다. 표준어 ‘오냐’의 사투리입니다만, ‘오냐’보다 더 살갑고 정답습니다. 어린아이한테도 ‘오이~’라는 화답이 무척 좋았나봅니다. ‘오이 할머니’. 참으로 깜찍한 꼬마 작명가들입니다.
아이들이 그때보다 더 어린 아기였던 어느 날 깊은 밤이었습니다. 나는 밤늦게 작은방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고, 큰방에는 두 살 세 살 연년생인 아이들과 아내가 나란히 누워 토닥토닥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딸은 유달리 밤잠이 없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졸음에 못 이긴 제 엄마가 아이들을 재우다 어쩌다 스르르 눈꺼풀이 떨어지면 “눈 켜! 눈 켜!” 하면서 선잠이 든 제 엄마를 흔들었지요.
이윽고 재잘거리던 아이들 목소리와 아내의 자장가 소리가 차츰 잦아들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깊이 잠든 줄 알았던 큰방에서 무슨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 들어 보니 딸이 부르는 노랫소리였습니다. 꼼지락거리며 장난치던 동생도 자고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도 그쳤는데, 저 혼자 동요를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힌 편안한 자세로 큰방에서 들려오는 딸의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한밤중에 콜콜 잠들었던 산토끼와 나비들과 송아지, 그리고 우물가에 개구리 한 마리가 차례로 호출 당해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밤늦게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동요는 접속으로 이어지더니 얼마 안 있어 잠잠해졌습니다. 아마 아는 노래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큰방은 굴 따러 간 엄마를 찾아 아이마저 나가버린 집처럼 고요했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의자를 당겨 앉아하던 일을 마저 시작하려던 차에 딸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아까 한 번 불렀던 ‘송아지 노래’를 한번 더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짧은 동요는 ‘엄마 소도 얼룩 소 엄마 닮았네’를 끝으로 금방 끝났습니다. 딸아이는 또 송아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끝 소절 가사 ‘엄마 소’를 ‘아빠 소’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아빠 소도 얼룩소 아빠 닮았네 ♩♪
한밤중에 궁상스럽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무심한 아빠는 기분이 좋아 어쩔 바를 몰랐습니다. 송아지 노래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아기 소도 얼룩소 아기야 닮았네 ♩♪
그 부분에서는 새근새근 잠든 제 동생을 보며 노래하는지 목청이 한껏 올라갔습니다. 송아지 메들리는 줄줄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할머니 소, 삼촌 소, 숙모 소, 고모 소, 고숙 소가 줄줄이 흘러나왔습니다. 멀리 있는 할머니 삼촌 소 고모 소 숙모 소도에게도 밤 인사를 드렸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 모두 편안히 잘 주무시라고 자장가를 불러주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작은 방을 나와서, 천사 같은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는 딸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얼마지 않아 사랑스러운 천사는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고, 얼룩 소 아빠는 속눈썹 긴 아기 소를 바라보며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