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에 당도와 도시가 쏟아지는 맛
한참 걷다 보니 목이 바싹 말랐다. 과일 코너를 지나고, 망고를 지나면서도 정작 입엔 아무것도 대지 않았다. 슬슬 뭔가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주황색이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진열대 한쪽에서, 주황색·분홍색·노란색·초록색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처음엔 음료수 코너인가 했는데 가까이 보니 티 파우더, 액상차, 인스턴트 밀크티가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포장만 보면 차라기보단 거의 디저트거나 향초 느낌. 색감이 너무 열일 중이었다.
그 속에서 익숙한 로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차뜨라므. 방콕 시내에서 줄 서서 마셨던 그 브랜드다. 한 번은 한국에서도 우연히 발견해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어쩐지 뭔가 빠진 맛이었다. 맛이 빠졌는지, 공기가 빠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태국에서 마신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선 다르다. 같은 로고인데 더 진하고, 더 눅진하고, 웃고 있는 주황색이다. 작은 파우치 하나에 당분과 갈증이 눅진하게 담긴 느낌. 별생각 없이 그 하나를 집었다. 카트는 다시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진열대 앞에선 잠깐 멈췄다. 어차피 집에 가져갈 것도 아니면서 나는 하나씩 들어보고, 이름을 읽고, 또 내려놨다. '밀크티 파우더'는 가장 기본형. '로티 믹스'는… 밀크티에 로티를 갈아 넣는다는 뜻인가? '짜이 베이스'는 약간 마법사 느낌. 다 티인데 이름은 제각각이다. 색은 다 주황인데, 미묘하게 톤이 다르고, 포장은 다들 자기만의 자신감이 넘친다.
이 나라 사람들은 티를 차갑고 달고, 선명하게 마셔야 마음이 놓이나 보다.
찾아보니 이 오렌지색도 의도된 결과다. 원래는 그냥 홍차인데, 여기에 식용색소, 향신료, 때로는 타마린드 같은 걸 넣어 색을 더 낸단다. 진하게 우리는 것도 기본. 뜨겁고 끈적한 공기, 땀이 줄줄 흐르는 나라에서 그냥 물 마시면 부족하니까, 시원하고 달고 묵직한 걸 마신다. 말하자면 이건 ‘마시는 기분’의 구조물이다. 단순히 갈증을 푸는 게 아니라, 한 모금으로 기분을 리셋하는 방식.
나는 주황색 파우치를 들고 다시 카트를 밀었다. 투명한 비닐 포장 너머로 방콕의 한낮이 번져 보였다.
어쩌면 오늘, 내가 삼키는 건 차가 아니라
여전히 뜨겁고 진득한 이 도시 그 자체인지도 몰랐다.
이 도시 여행은 마트에서 시작됐어요.
“카트 안의 도시들”이 재밌었다면,
구독은 다음 도시로 가는 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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