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밀크티는 진해야 마음이 놓인다

한 모금에 당도와 도시가 쏟아지는 맛

by 한이람



한참 걷다 보니 목이 바싹 말랐다. 과일 코너를 지나고, 망고를 지나면서도 정작 입엔 아무것도 대지 않았다. 슬슬 뭔가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주황색이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진열대 한쪽에서, 주황색·분홍색·노란색·초록색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처음엔 음료수 코너인가 했는데 가까이 보니 티 파우더, 액상차, 인스턴트 밀크티가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포장만 보면 차라기보단 거의 디저트거나 향초 느낌. 색감이 너무 열일 중이었다.


그 속에서 익숙한 로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태국에서 티는 색으로 정렬된다. 브랜드도 감정도.


차뜨라므. 방콕 시내에서 줄 서서 마셨던 그 브랜드다. 한 번은 한국에서도 우연히 발견해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어쩐지 뭔가 빠진 맛이었다. 맛이 빠졌는지, 공기가 빠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태국에서 마신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선 다르다. 같은 로고인데 더 진하고, 더 눅진하고, 웃고 있는 주황색이다. 작은 파우치 하나에 당분과 갈증이 눅진하게 담긴 느낌. 별생각 없이 그 하나를 집었다. 카트는 다시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진열대 앞에선 잠깐 멈췄다. 어차피 집에 가져갈 것도 아니면서 나는 하나씩 들어보고, 이름을 읽고, 또 내려놨다. '밀크티 파우더'는 가장 기본형. '로티 믹스'는… 밀크티에 로티를 갈아 넣는다는 뜻인가? '짜이 베이스'는 약간 마법사 느낌. 다 티인데 이름은 제각각이다. 색은 다 주황인데, 미묘하게 톤이 다르고, 포장은 다들 자기만의 자신감이 넘친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10일 오후 08_47_37.png 같은 타이 밀크티인데, 말투가 이토록 다르다.


이 나라 사람들은 티를 차갑고 달고, 선명하게 마셔야 마음이 놓이나 보다.


찾아보니 이 오렌지색도 의도된 결과다. 원래는 그냥 홍차인데, 여기에 식용색소, 향신료, 때로는 타마린드 같은 걸 넣어 색을 더 낸단다. 진하게 우리는 것도 기본. 뜨겁고 끈적한 공기, 땀이 줄줄 흐르는 나라에서 그냥 물 마시면 부족하니까, 시원하고 달고 묵직한 걸 마신다. 말하자면 이건 ‘마시는 기분’의 구조물이다. 단순히 갈증을 푸는 게 아니라, 한 모금으로 기분을 리셋하는 방식.


나는 주황색 파우치를 들고 다시 카트를 밀었다. 투명한 비닐 포장 너머로 방콕의 한낮이 번져 보였다.


당도도, 온도도, 기분도 눅진하게 내려앉는 한 모금.


어쩌면 오늘, 내가 삼키는 건 차가 아니라

여전히 뜨겁고 진득한 이 도시 그 자체인지도 몰랐다.





이 도시 여행은 마트에서 시작됐어요.

1화부터 따라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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