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으로 구획된 공간, 태국의 마트
망고 무더기를 지나, 밀크티 코너를 지나, 그렇게 한 코너씩 지나가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과일 냄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을수록 무언가 더 진한, 달콤하고 묘한 향기가 공기 속에 퍼지기 시작했다. 과일 향 같기도 하고, 꽃향 같기도 하고, 어쩐지 비누 냄새 같기도 한 향기.
섬유유연제 코너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알았다.
여기는, 공기부터가 이미 향수다.
포장지는 거의 미술 시간 수준이었다. 연분홍, 보라, 금색에 열대 과일과 꽃이 빼곡하게 그려진 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뚜껑을 열기도 전에 향기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가까이서 맡아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 한국 마트에서 맡던 뽀송한 향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서는 아예 향이 공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생각났다. 지난 휴가 때 여행 기념으로 사온 하이젠 방향제. 태국에선 워낙 인기 많은 브랜드라 '쇼핑템'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는 제품이다. 끈으로 걸 수 있고, 가볍게 기념품으로 돌리기에도 부담 없어서 좋을 줄 알았는데, 집 화장실에 걸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방향제가 아니라, 무기를 걸어둔 수준이었다. 이틀 동안 문 열 때마다 숨을 참고 들어가야 했고, 남편도 조심스레 말했다.
"향이... 좀 세지 않아?"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모처럼 사온 거니까."
하지만 사실, 나도 살짝 울고 있었다.
왜 이렇게 향이 세야만 하는 걸까.
태국은 사계절 내내 덥고 습하다. 옷이나 가구, 심지어 집 안 공기까지 쉽게 냄새가 배기기 때문에, 향으로 덮어버리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섬유유연제, 방향제, 차량용 디퓨저, 야돔. 향이 이 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작은 방패처럼 쓰이고 있었다. 길거리 가게부터 ATM 기계 옆까지, 어디에나 작고 강한 향들이 숨어 있었다.
향을 꺼리는 문화와 즐기는 문화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북유럽이나 일본처럼 개인 공간을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무취가 깔끔함의 미덕이지만, 동남아에서는 향이 '나만의 영역'을 만드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자기만의 공기, 자기만의 공간.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향으로 자기 구역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다시 마트. 고심 끝에 연분홍색 바닐라향 섬유유연제를 카트에 담았다. 향이 좀 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 알록달록하고 진득한 냄새가 방콕 같아서 좋았다. 카트는 멈췄지만, 향기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의 공기는, 그렇게 누군가의 하루를 감싸고 있었다.
이 도시 여행은 마트에서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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