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식빵에 디테일을 바른다

칼디에서 만난 빵 위의 기획력

by 한이람



신주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문득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본 가면 꼭 칼디 들러봐, 너 취향일 거야.


일본에선 그냥 식료품점인데, 묘하게 볼 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구글맵을 열어 근처 칼디(KALDI)를 찾아갔다. 입구에 가득 쌓인 파란 봉투와 좁은 통로, 어딘가 뒤섞인 향신료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나는 거기서 커피보다 먼저, 식빵 위의 우주를 마주했다.


식빵 위에 디저트를 기획하는 방식.


커피팜이라는 이름 때문에 커피만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여긴 커피보다 스프레드와 조미료, 수입 간식들이 더 눈에 띄는 식재료 왕국이다. 게다가 그 구성도 심상치 않다. 계절 한정, 지역 한정, 교토 한정, 모르겠는 한정. 무언가를 ‘발라 먹는 것’에 이토록 진심인 나라가 또 있을까.


그날 내가 본 건 이랬다. 명란 스프레드. 메론빵 스프레드. 카레맛 스프레드. 퀸아망 스프레드. 전부 동그란 통에 담겨, 은근히 귀여운 패키지로 ‘빵에 발라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명란은… 밥에 얹어 먹는 게 익숙했는데.

메론빵은 좋아하긴 하지만, 이걸 식빵에 발라서 만들 수 있다고?

카레맛 빵이라면 보통 고로케 아니야?

퀸아망은 그냥 퀸아망이지, 그게 ‘맛’으로 추출 가능한 거였어?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단지, 내가 아는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일본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감각이다. 도시락 코너에만 가도 반찬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나뉘어 있고, 계절이 바뀌면 컵라면의 맛조차 바뀌는 곳. 익숙한 재료와 음식이 매번 새로운 조합과 기획으로 등장한다. 익숙한 재료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등장할 때, 거기엔 늘 조용한 진심과 작은 기획이 붙어 있다.


‘빵 위에 얹는 것’ 하나에도 태도가 묻어나는 나라. 일본에서는 식빵 하나에도 기분을 입히는 방식이 느껴진다. 스프레드는 단순히 발라 먹는 걸 넘어, 오늘을 어떻게 시작할지에 대한 제안처럼 보인다. 딸기잼이면 상큼한 하루, 퀸아망이면 바삭하고 달콤한 하루.


식빵 위에 얹는 건 스프레드가 아니라 기분.


나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이걸 사면 내일 아침엔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해보고, 명란과 메론빵 사이에서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결정하지 못한 채 계산대를 지나쳤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명란 스프레드를 바른 아침은, 어떤 하루였을까.

그건 아마, 짭조름한 하루가 아니라, 작은 진심 하나 얹힌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 여행은 마트에서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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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삽입된 상품 이미지는 온라인 리뷰에서 발췌한 예시이며, 직접 구매/사용한 내용은 아닙니다.

이미지 출처: ruru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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