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이 너무 화려한 나라에서

박람회처럼 정교한 도시락, 연출자는 늘 무대 밖에 있다

by 한이람



도쿄의 마트를 걷다 보면, 자꾸만 '응?' 하고 멈추게 되는 구역이 있다. 낫또 코너, 스프레드 코너… 그리고 이번엔 도시락 용품 코너였다.


김을 얼굴 모양으로 자르는 커터,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유산지 컵, 귀여운 문구가 적힌 미니 픽까지. 언뜻 보면 문구 코너나 장난감 진열대 같지만, 전부 도시락을 위한 부속품들이다.


93f4f8e950d536199a22b3d5bf79d0ec.jpg 얼핏 보면 미술 코너 같지만, 전부 도시락에 들어가는 도구.


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도구라기보단, 도시락을 연출하는 소도구들이라고 해야 할까. 이건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를 꾸미는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점심도시락이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매일 아침 기획되고 준비되는 무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진열이다. 그 도시락을 연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 반응까지 계산된 듯한 디테일.


유튜브 속에서 반복되는 일본의 ‘이상적인 도시락’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매일 다른 테마, 다른 캐릭터, 다른 구성. 사각 도시락 상자 안에는 사랑, 정성, 창의력까지 포장되어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작은 쇼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탄스러우면서도, 문득 생각했다. 만약 매일 그런 도시락을 만들어야 하는 나라에 산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나라에선 급식이 일상이다. 도시락은 대부분 소풍이나 특별한 날에 등장하는 이벤트다. 하지만 일본에선 그 이벤트가 매일 열린다. 매일이 특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문화가 도시락에 정착해 있다.


미국은 반대다. 사과 하나, 감자칩 하나, 샌드위치 하나. 어찌보면 '이게 다야?' 싶은, 간단한 구성이 전부다.


스크린샷 2025-05-27 092159.png 샌드위치 한 조각과 간단한 간식. 미국의 도시락은 감정보다 구조에 가깝다.


거기에 정서나 연출은 개입하지 않는다. 도시락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의 도시락은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비주얼, 균형 잡힌 색감, 캐릭터, 별 모양 반찬. 때로는 그 도시락 하나에 그날 하루의 기분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43b1ae16.jpg 밥 위에 눈, 코, 입을 붙이는 순간, 식사는 감정 전달 도구가 된다.


도시락 하나에 담긴 건 영양이나 식사만이 아니다. 기획된 감정, 반복되는 정성, 보이지 않는 새벽의 시간이 쌓여 있다.


일본은 일상의 정성을 상품처럼 만드는 데 진심이다. 문제는, 너무 잘 만들면 그게 표준처럼 굳어버린다는 거다.





이 도시 여행은 마트에서 시작됐어요.

1화부터 따라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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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모든 이미지는 상업적 활용이 아닙니다.

출처: otajo, thespruce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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