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트 입구엔 꽃이 있다

대파보다 먼저, 꽃을 집는 나라

by 한이람



미국 마트를 처음 찾았을 때, 가장 눈에 띈 건 입구와 출구를 채우고 있던 꽃이었다. 그 넓은 주차장도, 입구 앞 벤치에 앉아 있던 홈리스도, 그 순간엔 배경에 가까웠다. 보통은 장바구니나 특가 상품이 있는 자리인데, 여긴 꽃이다. 정육도 우유도 아닌 게 사람을 맞이한다는 건, 뭔가 말하고 있는 셈이다.


IMG_5288.jpg 대파보다 먼저 꽃을 집는 나라


우리나라 마트에서도 물론 꽃을 판다. 마트 안에 일반 꽃집이 입점해 있거나, 코스트코처럼 화분을 모아둔 구역이 따로 있다. 하지만 미국 마트처럼, 입구와 출구를 생화로 가득 채워두고, 그걸 대파 한 단 고르듯 카트에 넣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았다. 꽃을 사는 일이 특별한 이벤트라기보다, 그냥 장보기 목록 중 한 줄처럼 보였다.


게다가 꽃이 싸다. 장미 한 다발, 튤립 한 다발이 한국의 절반 수준 가격에 널려 있다. 한국에선 꽃이 ‘기념일’에 어울리는 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 미국에선 그보단 조금 더 생활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다. 단순히 가격 차이뿐만 아니라, 원예업 규모나 유통 시스템의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많은 집은 울타리 너머 작은 마당이 붙어 있고, 파티오에는 테이블이나 바비큐 그릴, 흔들의자가 놓여 있다. 실내도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어, 꽃을 두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창가나 현관에는 조화가 아니라, 매일 갈아 끼우는 생화가 더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꽃은 누군가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장을 보러 마트에 오는 김에 꽃을 사는 건, ‘오늘도 나 자신과 내 공간을 가꾸겠다’는 생활의 반복처럼 느껴졌다.


taylor-musser-dupe.jpeg 이벤트가 아니다. 장보기 목록의 한 줄이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집 안엔 꽃이 놓여 있고, 다음 주 마트 갈 때쯤 시들어 있으면 다시 하나 더 사는 것. 특별하지 않은 반복. 그 무심함 안에, 미국에서 느낀 정서의 리듬이 깃들어 있었다.


초대받았을 때도, 미국인들은 자주 꽃을 선물한다. 와인을 사 오기도 하지만,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꽃도 잘 주고받는다. 그래서 더 자주, 편하게 사는 문화가 형성된 듯했다. 양파랑 휴지를 사러 온 길이지만, 입구에 꽃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잠깐 느려진다. 지금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공간이 달라지는 무언가. 그런 게 먼저 보이도록 짜인 구조다.




미국에선 장을 보러 갈 일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꽃을 사볼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남편 졸업식 때 들고 갔던 꽃다발 정도? 트레이더조에서 뭐 사 먹어보라는 추천은 많이 들었지만, 그날 내 눈을 끌어당긴 건, 뜻밖에도 꽃이었다.


emma-ripperdan-dupe.jpeg 장을 본다는 건, 마음을 골라 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콘도여서 꾸밀 정원도,

센터피스를 놓을 큰 테이블도 없었지만,

그날은 꽃을 사가고 싶었다.

잠깐일 테지만, 그 잠깐이 내 하루엔 충분했다.


장을 본다는 건, 마음을 골라 담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 여행은 마트에서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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