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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ul 03. 2023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동물을 향한 인간의 위선

강렬한 방식으로 동물에 대한 고민을 이끈 작품이다. 2년 전, 채식하겠다며 큰소리 빵빵 쳐놓고 매우 해이해진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동물을 향한 두셰이코 부인의 사랑과 배려는 숭고했다. 동시에,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장면은 하나둘씩 묵직한 경고를 건넸다.


이 작품은 생명을 쉽게 죽이는 인물들의 최후를 그리며 동물 보호를 강조한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의 지독한 위선이다. 마을은 사냥꾼을 성인으로 추앙하고, 사냥꾼 협회를 만들어 사냥을 윤리적 행위로 포장한다. 사냥을 지속하기 위해, 윤리와 종교를 덧씌워 거룩한 행위로 만들었다.


현대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기업은 이윤 추구의 목적을 가리고, 지속가능성을 내세워 윤리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언젠가 찾아봤던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떠올랐다.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나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편안한 도축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사냥꾼 협회 역시, “사냥과 관련된 문화와 윤리, 규율을 수립”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사냥과 도축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여기서 인간의 윤리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이다. 사냥꾼 협회와 지속가능한 축산업 가이드라인은 과연 동물을 위한 것인가? 사냥과 육식을 ‘죄책감 없이’ 지속하기 위한 합리화가 아닌가? 오히려 어떤 윤리적 장치 없이 진행하고 죄책감을 감내하는 것이 더 정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물론,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만…


*


친구가 비건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비건을 지향하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비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판단하고 싶다면서 여러 책을 읽고 있다. 그는 육식을 “눈 감고 먹는다”고 표현했다. 식탁 위에 고기가 올라오기까지 사육과 도축의 모든 과정을 외면했기에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점점 외면하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 선량하고 정직한 고백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편리를 택하고 고통은 외면한 위선적인 인간이었다.


친구는 생추어리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반려동물이 없어 동물과 한번도 교감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핑계였다. 사실 생추어리에서 동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을 때 나를 향할 실망과 혐오가 두려웠다. 이전에도 비건(도 아니고 적당한 채식)을 시도했으나, 점점 하나둘씩 포기하지 않았나. 나의 얄팍한 의지와 두꺼운 게으름을 통렬히 자각했다. 이런 부족한 내가 생추어리라고?


내 반응을 지켜본 친구는 위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경험을 말해주면서, 아무리 스스로가 공정하다 믿어도 누군가에게는 위선적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완벽한 수평을 유지할 수 없고, 언제나 주관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위선을 끌어안고, 위선을 고민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친구는 생추어리뿐만 아니라 축산업의 실상을 낱낱이 고하는 다큐멘터리도 함께 보자고 제안했다. 내 약한 비위를 떠올리며 거절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아볼까 한다. 나를 내던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동물권을 외칠 줄 알면서도 동물을 먹고 축산업을 외면하는 위선적인 나지만, 위선이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위선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으레 그렇듯 말미에 연쇄살인범이 밝혀진다. 그러나 범죄자에 대한 처벌과는 거리가 먼 흐름이다. 이 뒤틀린 권선징악 속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풍뎅이의 영혼을 괴롭히는 자는 
끝없는 밤의 나락을 헤매게 된다.
- 작중에 소개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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