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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l 02. 2024

친구들과 미국에서 한 달간의 공동육아

1년 전부터 친구들과 꿈꿔온 일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LA 지역에서 아이들을 함께 썸머캠프에 보내자는 것. 이른바 '한달간의 공동육아.' 우리는 동고동락하며 2024년 여름을 제대로 불태워보자고 1년전부터 줄기차게 이야기해왔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꾸준히 말하다보니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도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셋은 각자 가족들에게 우리의 플랜을 밝히고, 이윽고 올해 2월 썸머캠프를 등록하고야 말았다. 일찍 등록하면 캠프 비용에 약간의 할인이 적용되기 때문에 2월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썸머캠프 등록은 환불 불가여서, 어떻게 보면 우리의 계획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데 도움이 됐다.


문제는 다같이 어디서 한달을 보낼 것인가였다. 썸머캠프 장소가 우리 집 근처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우리 동네에서 지내야 하는 건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단순하게 '우리 집에 와서 다함께 지내자!!'라고 제안했지만, 우리 셋 다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와 남편, 친구 2명, 아이들 5명...총 9명이 한 집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내는 게 가능할까? 수련회를 방불케하는 단체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단체생활을 하며 잡음이 생기진 않을까? 혹여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거나, 나와 남편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건 아닐까? 호스트, 손님 모두 불편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히 가장 우려된 부분은 아이들이었다. 요즘 두 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다. 별일 아닌 것으로 잘도 싸운다. 둘만 있어도 그럴진데, 과연 친구의 자녀 3명이 추가됐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차마 예측이 되지 않았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손님들에게 장난감 양보를 잘 해줄 수 있을지도 자신있게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많은 걱정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난 'Go'를 외쳤다. 애초에 계획적이지 않은 성격의 보유자로서 사실 미래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미리 예측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난 그저 친구들과 한 달간 함께 지내고 싶었을 뿐이다. 안 그래도 미국에 사느라 친한 친구들을 자주 못봐서 아쉬웠는데, 한 달 동안 한 집에서 함께 머문다니? 개인적으로는 걱정 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오히려 주변에서 우리의 계획에 대한 걱정이 컸는데, 그런 우려의 말을 듣고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 "아 몰라, 그냥 해볼래!"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한 날. 회사에 출근해서도 왜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 두 아들도 형과 동생들이 오는 날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터라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오후 3시쯤이 되자 단체 카톡방에서 LA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울렸다. 친구들이 내가 있는 LA에 오다니! 같은 하늘 아래 있다니! 빨리 친구들을 맞나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퇴근 후 썸머캠프에 있는 두 아들을 픽업해 부랴부랴 집에 와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면 늘 김치찌개를 끓이곤 하는데, 장시간 비행을 하고 내리면 매운 음식이 땡기는 한국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하던 시절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끝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몸은 피곤해도 행복했던 기억. 그 기억이 좋아서 미국에 방문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꼭 김치찌개를 끓여놓는다. 비루한 요리실력으로 인해 거한 한 상을 차려줄 순 없지만 말이다.



딩동-


기다리던 벨소리가 울렸고 두 아들은 꺄아- 반가운 소리를 내지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부끄러운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주진 못하고 도망을 간 아이들. 나도 소리를 지르며 현관문을 열었고 늘 한국에서만 보던 친구들과 친구의 자녀들이 문 앞에 있었다.


친구들이 문을 열고 '내 세계'에 들어왔다.



꺄아아아. 우린 10대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얼싸안고, 탄성을 내뱉었다. 친구들이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보고 웃음이 빵터졌다. 아니, 무슨 아프리카 오지에 오는 것 마냥 음식을 한가득 캐리어에 담아가지고 오다니! 누가 한국 아줌마 아니랄까봐! 철부지였던 친구들이 어느새 알뜰살뜰한 아줌마가 되다니,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어색한 순간도 없이 잘도 놀았다. 정원에서 뛰어놀고, 자기들만의 비밀 이야기를 속닥이고, 그림을 그리는 등 잠시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그간 못나눈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마침 남편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딱 친구들하고만 회포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얼싸하게 취한 채 수다를 떨며 마치 나도 여행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미국에 있다는게 하나도 이질감이 없었다. 그런데 동시에 신기한 감정도 자꾸만 올라왔다. 어떻게 친구 두 명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에 올 수 있었을까? 그것도 동시에? 이건 그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 두 명 모두 시간과 금전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라는 것. 한달간 함께 지내는게 모두에게 분명 힘든 부분도 있을텐데 모두 해보겠다는 용기를 냈다는 것.


유일한 문제라면 이대로 쭉-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갈망이 올라와서 그게 문제다. 먼 한국에서 친구들이 왔는데 이직 후 일년 동안 휴가가 없는 나는 매일 출근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심지어 이 시기는 LA 시청이 곧 여름휴회에 돌입하는지라 사무실이 아주 널널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미국에 온 이후로 사무실에서 퇴근 시간만 간절히 기다리며 몇 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퇴근 후 뭘 하고 놀지 생각하는 요즘의 나날이 어쩐지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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