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릿 Jun 12. 2022

나의 서른 -1-

29+1=30

생일날 나이에 깔린 내 모습 (일기 일부)

30살은 대체 뭘까. 30살이 되어가는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내 나이가 계란 한 판이라니.", "서른.. 반육십이요? 난 반오십 되고도 우울하던데.", "좋은 날 다 갔네.", "서른이라고? 많이 먹었네.", "서른 되기 전에 자리 잡고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래야지. 더 늦으면 애 낳기도 힘들어.", "남친은 있지?", "20대가 좋았다는 걸 깨달을 거야. 체력이 달라져."...


10대부터 오늘날까지 저런 말을 가~끔 들었다. 그래서일까 30살이 되는 순간 내 세상이 크게 바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등이 굽거나 기미가 피어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서른은 oo 해야 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사회에 속한 인간으로서 사회적 시선이 어떻게 바뀔지 두려웠다.


30살, 서른. 다들 그렇겠지만 20대 초반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 숫자였다. 두려우면서도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것뿐인데 큰 차이 있겠냐는 '희망적인' 생각 회로를 돌렸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20대 후반에 접어들자 27살까지는 괜찮다가 정확히 28살부터 30이 주는 압박감과 두려움을 몸소 느꼈다. 28살에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실례지만(실례인 걸 알면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대화가 시작되면 '또 비슷한 말을 하겠구나' 싶었다.

"저는 28이요."

몇 분 전까지는 빨리 친해져요~ 하며 말을 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몇몇의 표정이 바뀐다.

"저는 반오십인데! oo님은 곧 있으면 반 육십이네요?"

"제가 나이 많은 사람이랑 잘 못지내는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곧 25살 되는 것도 두려운데 30살이라니... 그 나이로 안 보여요!"

오래 만날 사람도 아니니 무시하려 했지만 적으면 3살 많으면 5살 정도 차이나는 사람들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유쾌하지는 않아 탄식을 하며 소개를 마쳤다.


위와 같은 상황은 29살에는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혹시 몇 살이세요?"

짧은 대화를 잘 주고받다가도 나이를 알면 더 친해질 수 있는 듯 몇몇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꼭 나이를 묻는다.

"29살이요."

이번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하며 빠르게 답한다. 대부분은 "아~ 저는 xx살이요."하고 지나가지만 몇몇 사람은 몰상식한 말을 덧붙인다.


간헐적으로 기분 상하는 말을 들으니 '30살이 되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후다닥 해치워버리고 싶은 과제처럼 여겨졌다. 하루하루를 잘 보내다가도 '30살이 대체 뭔데 이렇게 짜증 나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내 마음도 모르고 29살 생일이 되었다. 친구와 "우리 아직도 너무 애 같은데 내년이면 서른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케이크에 꽂힌 초(29살은 긴 초가 2개, 짧은 초가 9개로 총 11개나 되었다)를 속으론 '서른이 대체 뭔데! 어서 오던가!'를 외치며 훅 불었다.


29살 생일을 보내고 3개월이 지나 드디어 2020년 12월 31일. 오래도록 해치우고 싶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제야의 종소리 타종 행사도 신년 맞이 행사도 없어져서 조용히 1월 1일을 맞았고 나는 30살이 되었다. 30살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1+1는 2인 것처럼 29살에 1살이 더해져 30살이 된 것뿐이었다.


신기하게도 30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에 대한 두려움은 옅어져 갔다. 이 감정을 느끼기 위해 28살 생일부터 종종 두려움에 떨었던 걸까. 2년을 기다려 끝낸 과제 '30살이 되는 것'은 A+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후련하게 마무리됐다. 과제가 끝나 마음이 편해졌고, 30살을 기점으로 오래간 미뤄온 일을 해나갔다. 20대의 끝자락에서 '지금 이걸 해도 될까? 할 수 있을까?'를 되뇌며 미뤄온 글쓰기를 시작했고, 엉망진창 그림을사람들에게 공개했다. 30살이 되면 이마에 30을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왜 사회적 시선이 달라질까 걱정했을까. 내가 30살인걸 누가 안다고. 달라진 것은 나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뿐이었다. 인간인지라 '20대 후반에 알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 후회를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된 것이 있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