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예전과 달라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어른들은 "관리를 잘해야 해. 어렸을 때부터 챙겨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어렸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건강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일찍부터 내 몸을 챙겼다. 까탈스럽게 식단을 챙기고, 적당한 운동을 했다. 야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술은 1년에 한 잔을 마실까 말까, 담배는 입에 대본 적조차 없다(이런 나를 간접흡연하게 만드는 모든 흡연자들 특히 걸으며 담배 피우는 사람을 증오한다). 그렇기에 30살에 몸이 급격하게 바뀔 거라는 의심은 1%도 하지 않았다. 의심과는 별개로 20대 후반부터 몸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한국 나이로 28살부터 몸의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를 알리는 생리 전 증후군이 바뀌었다. 생리할 때 아랫배가 조금 묵직하고 허리에 무거운 추를 달아둔 것 같긴 했지만 생리통이 심한 친구들에 비하면 없는 편이었다. 엄마의 건강한 체질 덕분이라며 감사해했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생리 전 손가락이 붓기 시작했다. 아니면 허리나 골반이 아파서 '이게 말로만 듣던 배란통?!'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배란통이라기엔 한결같이 왼쪽 아랫배만 아파서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이런 증상은 달마다 바뀌었다. 피곤함이 심하게 몰려오는 날, 식욕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날, 괜히 짜증이 나거나 우울한 날, 손이 붓는 날, 손목이 시린 날... 31살인 지금까지도 아주 다양한 생리 전 증후군을 겪고 있다.
한국 나이 30. 2021년 1월 30살이 되면서 20대 후반의 걱정과 근심을 해결했다. 30살이 되는 것을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으나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된다. 20대 후반부터 느끼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변화가 날 찾아왔다.
피부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화장품이나 마스크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진 듯했다. 피부과에서는 접촉성 피부염 진단을 내려주면서 약한 스테로이드성 연고와 약을 처방해줬다. 하관과 목 부분이 가렵고 열꽃이 피었다. 어떤 화장품을 발라도 얼굴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겨우 가라앉혀놓고 샤워를 하거나 약간의 운동이라도 하면 얼굴은 터질 듯 뜨거워졌다. 피부과 약은 독했지만 피부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듯했다. 연고를 바르라니 바르긴 했지만 연고 역시 얼굴의 열감을 가라앉혀주진 않았다. 한두 달 정도 지나니 자연스레 나아졌다. 그 이후 몇 개월 동안 생리 시작 전에는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이 지속되었다.
푹푹 찌는 여름. 고온 다습한 날이 이어졌다. 피부염 증상을 겪을 때 손목에는 건초염이 생겼었고 전신 무기력 등도 느꼈다. 이런 날엔 잘 먹고 움직여야 하는데 속이 너무 좋지 않아 평소 좋아하는 음식도 먹기 싫었다. 침을 삼킬 때도 이물감이 느껴졌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손목이 아파서 움직이는 것이 꺼려졌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 체중이 많이 줄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걱정 어린 눈으로 "왜 이렇게 살이 쪽 빠졌어?", "너 어디 아프냐?", "살이 엄청 빠졌네 무슨 일 있어?"라며 한 마디씩 했다. 나중엔 이러한 걱정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걱정해주는 말을 듣고도 짜증을 낼 정도로 예민해졌다. 먹는 것도 별로 없는데 설사를 했다. 동네 내과에서 피검사와 소변검사 등을 했는데 당뇨 전 단계라고 조심하라고 했다. 더 큰 병원에서 초음파와 내시경 검사를 실시했다. 신체의 그 어느 곳에서도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별 문제없는 것은 정말 다행이지만 그러면 대체 왜 아픈 걸까. 이런 생각을 뒤로하고 나이 듦(사회적인 것뿐 아니라 신체적 변화)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가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을 되찾았다.
갑작스러운 신체의 변화를 겪은 것이 하필 30살이라 30살을 기점으로 건강이 확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2022년 31살에는 조금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종합 검진을 받았다. 작년에 내 몸에 갑자기 찾아왔던 건초염, 설사병, 피곤함, 당뇨 전조 등의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검진 결과 운동 부족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과에 기뻐하는 날은 얼마 가지 않고, 또 얼굴 피부에 이상이 생겼다. 세 곳의 피부과에서 모두 같은 진단을 내려줬다. 지루성 피부염. 하루하루 세포가 분열됨에 따라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질병이 이유 없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질환이 내 몸에 찾아올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라고 무시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특히 그것이 얼굴과 같이 드러나는 곳이거나 열, 가려움 등을 동반한다면 말이다. 20대의 나보다 사회적 시선에 신경을 덜 써서인지 이제는 '덜' 스트레스받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 없이 붉어지거나 가려워지는 피부는 여전히 신경 쓰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20대에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30대의 나는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배우는 30살을 보냈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했던 말 중 "건강이 최고다."는 말은 하나 틀린 것이 없다. 건강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 건강을 잘 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