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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Mar 01. 2024

요르단에서 보낸 명절, 추석과 설날

안 쉬니까 명절 같지 않았지만...

  해외에 있는 한국회사는 대부분 현지 공휴일을 따르며 우리나라 4대 국경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그리고 개천절을 쉰다. 요르단 생활 3개월 차 추석을 맞이했다. 추석 하면 떠오르는 즐거운 기억도 딱히 없다. 어렸을 땐 휴일이라서 좋았는데 성인이 된 후엔 친척들이 모여 북적거리는 큰집이자 우리 집을 떠나 카페와 만화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취직 언제 하니.", "결혼은 언제 하니.", "만나는 사람은 있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싫었다. 추석은 그저 휴일일 뿐. 근무를 하루라도 덜 하고 싶은 마음에 추석과 설날까지 쉬었으면 했지만 역시 쉴 수는 없다.


  추석 연휴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했다. 며칠 뒤 타기업에 방문해야 하니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잘하려고 노력 중인 신입의 자세로 영어 서류를 뒤적거렸다. 누군가 플라스틱 칸막이를 '똑똑'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현지 직원이 쟁반 위에 여러 개의 떡을 들고 서 있었다.

  "웬 떡이에요?"

  "대표님이 나눠 주래요."

  원래 타국에서 우리나라 명절을 더 잘 챙기는 법이다. 프랑스에서도 그랬고, 설 연휴에 놀러 간 태국 여행 중에도 그랬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인들과 추석음식을 해서 먹었고, 말레이시아 친구들도 본인들의 명절에 모여 음식을 해 사람들을 초대했다. 추석 전날 모여서 기름냄새에 절어 전을 굽고 일하는 건 싫지만 추석에 아무 노력 없이 받은 음식 보상은 제일 달콤했다. 휴일은 아니었지만 근무 중 받은 떡을 먹으며 기분 좋게 일을 끝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 선물로 요르단에서 장 볼 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받았다. 까르푸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물건이 제일 다양한 시티몰(City Mall) 까르푸로 향했다. 2~3주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매했다. 평소 어울리던 사람들과 모여 추석을 핑계로 저녁을 먹었다. 강제 노동이 필요 없고 서로에 대한 책임이 필요 없는 추석이라 편안했다. 해외 근무의 최대 장점은 평소 스트레스를 주던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견딜 수 없으면 피하는 것이 답이다. 가족들과 보내지 못했지만 평온하게 보낸 요르단에서의 추석.



  요르단에서 맞은 두 번째 명절, 설날. 간단히 연말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요르단의 1월은 춥다. 집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오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베이킹이 하고 싶어서 한 번 도전해 봤는데 오븐을 예열해 두고, 베이킹을 하면 부엌에 따뜻해져서 더 열심히 했다. 전기세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두려웠는데 추위에 떨다 지쳐 돈을 더 내고 훈김이라도 얻기로 마음을 틀었다. 힘들게 레몬 제스트를 만들고, 밀가루를 비롯한 온갖 가루류를 체치고, 만든 반죽을 휴지도 시켜가며 케이크와 쿠키를 구웠다. 신년 선물로 나눠주고 싶었는데 맛이 없어서 포장해서 드리진 못했다. "구워 본 건데 맛보실래요?" 하며 소심하게 나눠드렸다. 다들 괜찮다고 맛있게 드셔 주신 착하신 분들... 



  요르단에서 보낸 23년 1월. 시작은 마라탕이다. 요르단에서 마라탕을 먹고 싶다면 돼지고기 정육점에 가서 소시지를 사면 된다. 고기는 저렴한 대패 양고기 또는 소고기지만 우리는 연말이고 연초를 잘 맞이하기 위해 와규를 구매해서 마라탕에 넣었다. 나머지 재료는 전부 아시아마켓과 중국마켓에서 구매했다. 연말에 압달리몰 쪽에서 행사가 있었던 것 같고, 여러 식당과 술집에서 서로 연말 분위기를 내며 연초를 맞이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가족들과 모여서 밥 먹는 정도라고 한다. 나는 내가 귀여워하는 회사 분과 같이 마라탕을 해서 먹었다. 12시 땡 하는 것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22년도가 끝나고 23년도가 온 건데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요르단에서 직접 끓여 먹은 마라탕이 특별했지.



  연말에 받은 또 다른 보급품. 역시나 플라스틱 칸막이 '똑똑'소리에 옆을 돌아봤는데 이번엔 회의실에 있는 설 선물을 가져가라고 한다. 내려갔더니 요르단에서 구하기 힘든 약과와 찹쌀유과가 있었다. 토니모리는 화장품은 덤. 아껴 먹다가 다른 외국계 기업 다니는 친구들한테 조금씩 나눠줬다. 외국에 있는 한국 기업은 명절은 챙기지만, 외국계는 연차를 두 배 더 주지만 명절은 챙겨주지 않는다.



  요르단에 지내는 기간과 비례하여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도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설날도 의무적으로 챙겼는데 여기서는 그럴 일이 없다. 마음 맞고 잘 지내던 한국인 동료들, 친구들과 모여 명절 분위기 내는 게 좋다. 보통 각자 음식을 요리해서, 간식을 사서 모임 주최자의 집으로 모인다. 준비한 음식을 식탁에 놓고 뷔페식처럼 먹는다. 아니면 같이 반찬처럼 놓고 먹거나. 기온은 낮고, 실내가 따뜻하진 않지만 좋은 사람들 덕에 따뜻한 연말과 설을 보낼 수 있었다.


  부모님은 외국에서 명절을 보내면 외롭지 않냐고 걱정한다. 군걱정이 따로 없다. 명절이라 딸로서 해야만 했던 것들, 불편한 말을 듣는 것보다 타국에서 나 혼자 또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조용히 명절을 보내는 게 오히려 더 행복하다. 23년 7월 한국에 돌아와서 추석과 설날을 보냈다. 추석은 동생과 공주 여행을 했고, 설날엔 어쩔 수 없이 시골에 들어갔다가 일찍 나와 가족과 담양 여행을 했다. 전에 비해 간소해진 명절.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좋겠다. 그럼 기꺼이 명절을 즐기고 약간의 일손을 보탤 텐데. 아, 물론 그전에 다시 준비해서 다른 곳으로 나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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