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JTBC 마라톤 2시간 55분 47초
이번 대회에는 처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달렸습니다. 상암을 출발하여 마포와 서울시청, 청계천을 지나 어린이 대공원과 잠실대교를 통과하고 탄천을 건너 수서와 가락시장을 거쳐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는 서울 여행 마라톤이니 즐기듯 음악을 들으며 달리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평소 훈련과 대회 때 아이 연락을 받으려고 휴대폰을 벨트에 넣고 뛰는데요. 비록 오늘은 아내와 아이가 대회 동안 연락할 일은 없었지만 유*브 뮤직 스트리밍을 위해 벨트에 휴대폰, 귀에는 인이어 이어폰을 넣었어요. 음악 들으며 달릴 생각에 살짝 설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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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저는 언제나 ‘뭔가’를 들으며 달리는데요. 대회에서는 처음이기 때문에 한 달 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바흐나 쇼팽, 리스트를 들어보기도 하고, 파바로티에서 팬텀싱어까지. 케이팝이랑 90년~2000년대 가요도 시도해 봤어요. 유*브에서 제가 즐겨 듣는 파이아키아, 최재천 아마존, 셜록현준, 알릴레오 북스나, 가든패밀리, 교집합스튜디오, 교육대기자 같은 채널도 해봤는데요. 대회 때 듣기에는 좀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풀코스 마라톤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오랜 시간 지루하지 않게 들어야 하고, 발걸음 케이던스와 팔치기 속도, 그리고 어쩌면 심장박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저는 쿵작 거리는 음악들로 정했어요. 같은 음악이라도 방 안에서 들을 때랑 달리면서 들을 때 느낌이 다르고, 밤에 들을 때와 낮 시간에 들을 때도 완전히 달라서 좋아하는 곡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아도 마라톤에는 도움 될 것 같은 곡들을 섞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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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일인 오늘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났습니다. 평소처럼 따뜻한 물 샤워, 화장실 용변, 식사 또는 보급, 화장실 용변, 준비 보강 운동, 화장실 용변 순서로 대회일 새벽 일정을 해야 하는데, 이전에는 항상 어두컴컴한 새벽 저 혼자 일어나 조용히 움직이며 준비했지만, 오늘은 아내와 아이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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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친구네와 함께 일본 여행을 가는데, 아내와 아이는 하루 먼저 출국합니다. 제가 오늘은 대회 때문에 공항에 함께 갈 수 없으니 동네에서 출발하는 새벽 리무진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거든요. 5시 10분 버스라서 새벽 4시부터 가족 모두가 일어나 바쁘게 움직였고, 평소와 다른 새벽이라 저는 결국 화장실 용변을 못했어요.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와 아이를 6010 버스에 태워 보내며 인사합니다. “공항 도착하면 연락해! 조금만 기다리고 다시 보자!” 저는 6호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삼각지 역으로 이동. 다행히 삼각지 역에서 화장실 용번 성공. 대회 출발지인 월드컵 경기장 역에 도착하여 한 번 더 화장실 용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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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보관 차량 앞 미니 풋살장에서 팀오리지널파이어 분들과 만나 옷을 갈아입고 짐 보관까지 완료. 모임 장소로 이동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네요. 오늘은 대회장 어딜 가도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내년 JTBC 마라톤은 과연 내가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요즘 마라톤 대회 신청이 워낙 치열해서 내년 3월 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은 제가 신청을 못했거든요. 전쟁 같은 대회 신청과 러닝화 구입까지. 점점 마라톤 하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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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운동 마치고 출발선 대기. A 그룹 앞 줄에는 마린님, 잠잭님, 깜모님이 있고 몇 줄 뒤에서 권개토님, 진승오님, 어리덩님, 일수오노님과 저도 함께 있었어요. 8시 정각 휠체어 부문 선수들 출발하기 전 엘리트/마스터즈 출발 5분 정도를 앞두고 Coldplay <A Sky Full of Stars> 아비치 버전을 들으며 마음 준비를 합니다. 출발 직전, 다음 곡은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의 <Don’t You Worry Child>. ‘그래, 걱정하지 말고, 아가야. 그냥 달리자. 내 몸아!‘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출발.
무척 더운 날씨입니다. 출발 전부터 장갑은 벗었어요. 이제 막 10분 정도 달렸지만 벌써 땀이 꽤 나기 시작했는데, 초반에 어리덩님, 일수오노님, 진승오님, 권개토님 그리고 다른 많은 선수들이 무리를 이루어 1km 3분 53초~3분 57초 페이스로 달립니다. 처음 5km 정도는 따라갔는데, 지금 제 몸 상태와 실력에서 이런 날씨에 이런 속도로 달리면 가장 힘든 30km 이후 구간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경기를 망칠 것 같아 이른 시기부터 페이스를 낮추고 저만의 4분 00초~4분 05초 페이스로 달렸습니다. 이 속도는 249(2시간 49분 목표 그룹, 평균 4분 01초/km)도 아니고, 255(4분 09초/km)도 아니기 때문에 무리가 형성되지 않는, 모호한 속도입니다. 함께 달리는 무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혼자 음악을 들으며 달리니 발걸음 속도 케이던스도 유지되고 심장박동과 마음의 긴장도 유지됩니다. 이거 좋은데요? 마라톤 대회에서는 앞으로 계속 음악을 들으며 달릴까 생각하고 있어요. 만족스러웠거든요. 3종 경기에서는 전자 기기 휴대가 안 되기 때문에 음악 들으며 달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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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서는 1km 4분 00초~4분 05초 페이스를 유지했고 오르막 내리막에서는 조금씩 속도를 내렸어요. 더운 날씨에 지금 몸 상태와 실력에 비해 빠른 페이스를 유지하니 체력이 빠르게 소모될 것 같아 에너지 젤은 많이 먹었습니다. 13km 지점, 하프 지점 부근 대회 측에서 나누어 준 젤, 27km 지점, 36km 지점까지 출발 30분 전 먹었던 젤을 제외하고 경기 중 4개나 먹었어요. 이전 대회보다 많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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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코스가 바뀌었어요. 어린이 대공원에서 건국대를 지나 잠실대교를 향하는데 <궁> 산후조리원을 지나갑니다. 아내의 산후조리를 했던 곳이네요. 원래는 여기가 아니었는데 아내의 전치태반과 하혈로 예정보다 일찍 제왕절개 출산하게 되었고, 입원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가장 가깝고 빈자리가 있던 곳으로 급히 찾은 곳이었습니다. 그때 아내와 저는 혹시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일어날까 마음 쓰면서 주변에는 애써 괜찮은 척 예정일에 출산한다고만 간단하게 얘기하곤 했는데, 지금은 모두 추억입니다. 대부분 조리원 인연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생일 시기와 연말 크리스마스 때마다 건대입구 근처 숙소를 잡고 파티를 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 주변에는 신기하게도 오랜 친구나 속 깊은 인연이 많은데 이것도 아내 덕분인가 생각합니다. 제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입원 기간과 산후조리 기간 내내 아내와 함께 했던 그때를 생각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오늘 마라톤을 달립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새벽 운동은 매일 했습니다.
잠실대교를 지나는 30km 지점. 풀코스 마라톤의 진짜 게임이 시작됩니다. 그늘 없는 아스팔트를 계속 달려오며 체력이 많이 닳았고 페이스도 1km 4분 05초~10초 정도로 내려왔습니다. 이전 대회와 비교했을 때 체력 저하와 초반/후반 페이스 차이가 크진 않았습니다. 이 정도 속도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더운 날씨에 힘들고 느려진 후반이었지만 저는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덜 느려진 것 같았어요. 초반부터 페이스를 낮추고 체력을 아낀 덕분이었을까요? 이때부터 많은 분들을 추월했습니다. 잠실대로를 지나 종합운동장에서 삼전동 방향으로 좌회전. 이 구간에서는 알리쏘의 음악들이 많이 나왔어요. 재생목록 2시간 지난 구간에 많이 넣었습니다. 예전 울트라, 월디페 찾아다니던 시절 좋아하고 많이 들었던 디제이입니다. 코로나 초반, 공연 3일 앞두고 감기 걸렸다며(아마 코로나 펜더믹에 겁먹어서) 내한 취소했을 때 다시는 알리쏘를 듣지 않겠다고 ‘절음’을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다시 듣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인기를 유지하는 디제이들 가운데 클래식 순수 음악을 전공하거나 공부한 아티스트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예전 음악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예술가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21세기 교향곡으로 화려하게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요? 운동에서도 재능 있는 운동선수들이 축구, 미식축구, 농구, 야구에 쏠리고 기초 종목인 육상, 수영, 체조에는 관심이 덜한 현실이 떠오르며 계속 달립니다.
삼전사거리에서 탄천 1교 방향 오르막, 수서 ic 램프구간 오르막, 헬리오시티 앞 지하차도, 가락시장 사거리에서 오금 사거리(가락 쌍용아파트)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오르막이라 속도는 떨어졌지만 신기하게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계속 추월하며 달려갑니다. 물론 더 빠른 분들에게는 추월당하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 나이* 알*플라이 3 러닝화를 구하지 못해 결국 오늘 처음 마린님이 거리주와 대회 2회 달려 100km를 훌쩍 넘긴 것을 빌려서 처음 신었는데, 레이스 후반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구간에서도 든든한 쿠션이 받쳐주니 다리에 쌓이는 충격과 피로가 베이*플라이 3보다 훨씬 덜 합니다. 진짜 좋네요. 참 좋지만 이 러닝화를 구하는데 너무 치열해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디*스에서 12월 새로운 러닝화가 출시되는데 꼭 아주 좋은 러닝화로 만들어 재고 넉넉하게 시장에 나오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가장 바쁜 평일 오전 10시에 가슴 졸이며 PC나 휴대폰 앞에서 신청을 위해 대기하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지만, 적어도 저에게 러닝화 구입은 그럴만한 일이 아닙니다. 베이* 3보다 쿠션만 좋게 나온다면 알* 3가 아니더라도 다른 브랜드 제품 구입해서 이번 겨울 훈련으로 다음 마라톤 대회에서 개인 기록에 도전하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요.
오금 사거리를 지나 올림픽공원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약한 경사 내리막입니다. 파란 유니폼 함프로님이 보입니다. 나중에 함프로님이 ‘총 맞았다’ 표현하셨는데 베를린 마라톤에서 이미 풀코스를 멋있게 달리셨으니 오늘은 우리에게 팬 서비스와 같은 레이스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함프로님!” 소리치며 옆으로 달려가는데, 헉! 내리막에서 잘못 달렸는지 순간 햄스트링 근육이 훅 올라옵니다. 우왁! 재작년 경주 마라톤에서 햄스트링 경련을 경험해 봤어요. 다리 뒷근육(햄스트링, 종아리)은 한번 올라오면 천천히 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멈춰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큰일이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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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는 경주 마라톤 때 경험해 봤기 때문에 제 나름 해결법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몸의 무게중심을 최대한 올려줍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끼리 바지허리를 잡아당겨 올리며 바지가 엉덩이에 꽉 끼도록 짓궂은 장난을 쳤는데, 마치 그런 장난칠 때처럼 다리가 대롱대롱거릴 만큼 무게 중심을 올립니다. 다리가 뒤로 가버리면 엉덩이와 햄스트링이 수축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고관절을 이용해 악착같이 허벅지를 앞으로만 들어 올리고 엉덩이와 햄스트링을 늘리며 천천히 달립니다. 지나칠 정도로 허벅지를 앞으로 위로 들어 올립니다. 절대 엉덩이와 햄스트링 근육을 수축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발이 착지하면서 엉덩이와 햄스트링이 뭉치는 순간조차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지면 접촉 시간을 짧게 하기 위해 발걸음 속도 케이던스를 올립니다. 천만다행으로 햄스트링이 진정됩니다. 다시 속도를 올립니다.
박문호 교수님의 빅히스토리 강의에서 들었는데, 페름기 이후 현무암 범람, 마그마 홍수 때 대기 중 산소 농도가 20%에서 15% 정도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15% 산소 농도는 해발 4,500m 수준이라 생물이 살아가기 힘든 수준. 대멸종이 이루어지며 살아남은 몇몇 생물들은 크게 두 갈래로 새롭게 진화했다 해요. 공룡의 조상은 몸속에 공기주머니(기낭)를 가지는 것으로, 포유류의 조상인 키노돈트(견치류)는 가슴 아래 갈비뼈가 없어지고 배를 부풀리며 더 크게 산소를 들이마셔 호흡하는 방향으로요. 가슴 아래 갈비뼈가 사라지며 또 하나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허리가 자유로워지며 다리를 훨씬 자유롭게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포유류는 하체를 앞뒤로 크게 움직입니다. 뱀은 땅 위에서 헤엄치고, 고래는 물속에서 걷습니다. 나는 지금 서울을 달립니다. 소마미술관까지 약한 오르막을 지나 몽촌토성역 방향 내리막. 오늘 경기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리를 앞뒤로 크게 흔들며 온몸의 힘을 다합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마지막을 달립니다.
다시 포유류. 포유류는 말 그대로 젖을 먹이는 생물 종인데, 새끼를 태의 형태로(가슴 아래 갈비뼈가 사라져 자유로워진 허리 덕분에) 뱃속에서 어미의 양분을 직접 주며 키우고, 낳고 나서도 젖을 통해 내 몸의 영양분을 나누어 주며 새끼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종이라고 합니다. 젖을 먹이는 것은 원시 감정, 최초 감정의 시작이라고 해요. 나를 바라보며 내 젖을 물고 있는 새끼를 보는 어미의 감정과 눈을 뜨기도 전에 엄마의 젖을 찾아 쪽쪽 빨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새끼의 마음은 그렇게 처음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저와 아내도 병원에서 처음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순간을 아직 기억합니다. 아내는 당황하고 놀라면서도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아이가 잘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고 저는 옆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젖 먹던 힘은 숭고한 힘입니다. 이런 뜻깊은 말을 고작 취미로 운동 경기를 하면서 함부로 써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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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00~400m. 함께 운동하는 어리덩님을 다시 만납니다. 작년 JTBC 마라톤에서도 종료 직전 어리덩님을 만나 함께 피니시 아치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똑같습니다. 피니시. 2시간 55분 47초. 가을을 달렸습니다. 아니, 11월 가을이라고 하기엔 오늘 너무 더웠습니다.
지난봄 보스턴 마라톤을 다녀오고 저에게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너무 비장하거나 진지하게는 운동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을 반성했어요. 더 이상 대회가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서 먹을 것을 가려 먹거나 휴식과 회복을 이유로 가족 여행이나 나들이를 미루지 않습니다.
이번 마라톤 대회도 열심히 했지만 훨씬 여유 있는 마음으로 참가하였습니다. 대회 일주일 전에도 밥과 고기를 먹었고, 하루 전날에도 밥과 고기를 먹었어요. 항상 그랬듯 여름과 가을 내내 매일 아침에는 아내와 커피를 마시고 가끔 오후와 저녁에는 아이와 집 근처 편의점에 나가서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대회 직전까지도 주말마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제가 직접 장소를 알아보며 가족 손을 잡고 끌고 다녔어요. 아내는 제가 달라졌다며 흥미로워하고 아이는 더욱 좋아했습니다.
기록 도전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여유가 많아진 만큼, 일상에는 더 촘촘하게 운동이 자리 잡았어요. 3종을 즐기다 보니 이동 수단을 자가용과 대중교통에서 자전거와 달리기로 조금씩 바꿨습니다. 출근은 따릉이 자전거, 퇴근을 달리기를 하고, 웬만한 곳은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기본으로 자리 잡다 보니, 동선을 계획할 때도 옷차림을 생각할 때도 거의 모든 생활에서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수영도 매일 아침마다 하는데요. 이 또한 이제 완전 습관으로 자리 잡아 어차피 샤워할 것이라면 수영장 가서 샤워하자는 마음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조금씩 하는 자유수영 효과가 생각보다 매우 컸습니다.
공간에서 인간 척도, 휴먼스케일을 기준으로 높이, 너비와 구성을 짜듯 저의 시간을 러닝 스케일, 워킹 스케일로 계산하게 되었어요. 지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약속이나 등교, 출근 같은 것을 할 때 항상 최단 시간으로 미리 계산하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빨리 갔던, 또는 제일 빠르게 갈 수 있는 계획으로만 계산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모든 조건과 변수가 딱 들어맞지 않고 최단 시간으로 갈 수 없어 결국 지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번, 며칠만 항상 다니던 길을 동력 장치 대신 달리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다 보면 시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시간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요. 신기한 것은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시간을 계획하고 당연히 지각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됩니다. 시간의 진짜 주인이 된 기분입니다. 시계는 빨라지고 삶은 느려져요. 똑같은 24시간, 봄 여름 가을 겨울 365일이지만 마치 이전보다 오래 살고 하루는 길어진 느낌입니다.
마라톤과 3종은 제 일상과 하나입니다. 이런 나의 생활 변화 덕분에, 비록 더딜 수는 있지만 제 운동 능력도 더 높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운동을 즐기고,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저를 바꿔나가며 남은 가을과 겨울을 부지런히 보내야겠어요.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습니다. 더 잘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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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울을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