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은 겨울 운동입니다.
새벽에는 80분 정도 꽤 느린 속도로 달렸습니다. 어제보다 기온이 떨어져 집에서 나갈 때에는 추웠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니 5분도 안 되어 몸에 열이 오르고 견딜만했습니다. 반포 트랙에 도착할 때 입고 있던 얇은 패딩 조끼와 바람막이도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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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부터는 겨울 추위가 제대로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해마다 되풀이했던 제 겨울 달리기 기억으로는 1월을 지나면 기온이 꽤 오르지만 마음속 추위는 여전히 계속되기 때문에 2월 말까지도 겨울 달리기 옷차림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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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달리기 복장은 해를 거듭해도 언제나 고민하고, 해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고치고 나아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달리기 실력, 체지방률과 같은 몸 상태, 겨울 운동에 대한 마음가짐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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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변함없는 원칙은 귀, 손, 발처럼 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노출되는 곳은 보온에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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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밴드나 비니처럼 귀를 덮으면서 달릴 때 동작에 방해되지 않는 장비를 착용하여 귀를 보호해야 합니다. 저는 머리에서 배출되는 열이 꽤 많아 비니보다는 헤어밴드 착용을 더 좋아합니다. 버프나 마스크를 써서 목과 턱을 감싸는데, 달리기는 생각보다 꽤 격한 운동이기 때문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귀걸이가 달린 제품이 좋습니다. 너무 추워서 입이 얼얼할 정도라면 가끔 입을 덮기도 하지만 숨쉬기에 방해되기 때문에 저는 입을 덮지 않도록 착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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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는 새벽 운동 상황에 따라 다른데, 집 밖을 나서자마자 달리기 시작하고 운동을 마치고 복귀할 때에도 집 문 앞까지 달려오는, 평일 새벽에는 되도록 가볍게 옷을 입습니다. 롱패딩 같은 두꺼운 옷은 착용하지 않고, 기능성 긴팔 티셔츠 1장, 바람막이 1장, 얇은 패딩 조끼 1장을 입어요. 마라톤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절에는 땀 때문에 옷이 젖어 체온이 떨어질까 봐 망사 이너웨어 제품을 착용하고, 긴팔 티셔츠 위에 반팔 티셔츠를 덧입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여러 겹 착용하지는 않습니다. 달리기 실력이 늘고 체형이 변하면서 땀이 덜 나기도 하고, 추위에도 적응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두꺼운 옷을 입는 것보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착용해서 운동 시간과 강도에 따라 내 몸 상태가 변할 때 탈착을 쉽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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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이나 하남 등 멀리 떨어진 트랙으로 차량 이동하여 다른 분들과 모여 함께 달리는, 주말에는 롱패딩을 착용합니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앉아 운전하는 시간 동안 체온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요. 롱패딩을 입고 준비운동으로 트랙을 2~3바퀴만 가볍게 달리면 금방 체온이 올라 벗어던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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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는 러닝용 타이즈를 착용합니다. 남자가 타이즈 착용하면 민망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상의 티셔츠와 바람막이가 어느 정도 덮어주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 없어서 주변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저도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에서 사회화를 거쳐 자랐기 때문에 동네에서 달릴 때에는 스스로 민망하기도 해요. 어쩌면 그런 이유로 새벽 4시에 나가서 달리고, 7시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회장이나 트랙에서는 타이즈 복장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오히려 펄럭거리는 바지를 입고 달리는 것이 어색합니다. 바람 저항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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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 영하 10도 이하 매우 추운 날씨에도 타이즈를 착용하는데, 중요한 것은 '기모 안감'이 아니라 '방풍 원단'입니다. 기모 안감의 따뜻한 느낌은 운동을 시작하기 직전 잠깐 동안 좋을 뿐입니다. 달리기 운동을 하면 아무리 느린 속도라도 차가운 공기가 타이즈 원단 사이사이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데, 방풍 처리가 되어 있어야 추위와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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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마다 양말과 신발에 대한 고민을 반복합니다. 평소 착용하는 러닝화 갑피가 얇거나 구멍이 뚫려 있어 추위에 약한데요. 영하 1도만 되어도 달리면서 신발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고통받게 됩니다. 예전에는 러닝화에 키네시오 테이프를 붙여서 바람을 막기도 했고, 양말을 두 겹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겨울에는 토워머(방풍양말) 제품을 쓰고 있어 아직 양말 두 겹을 착용했던 적은 없고 신발에 테이프를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저와 가장 잘 맞고 좋은 CEP 런삭스를 착용하고 온전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어 훈련의 성과가 더 좋아졌다고 느낍니다. 간혹 고어텍스 재질이나 갑피가 두꺼운 러닝화, 심지어 트레일 러닝화를 착용하기도 하는데 저는 좋은 해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날씨 때문에 억지로 최상의 러닝화가 아닌 제품을 착용하고 달리면 훈련의 질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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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또한 중요합니다. 영상 날씨에는 기온과 몸 상태에 따라 큰 고민 없이 장갑을 선택하면 됩니다. 영하일 때 저는 벙어리장갑을 선호합니다. 좋은 품질의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보다 온라인 쇼핑에서 흔히 검색되는 스노우 보드용 보급형 제품을 사용하는데요. 이유는 가격 때문이 아니라 브랜드 제품은 너무 품질이 좋아서 달릴 때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보온력이 지나치게 좋아 달리다 보면 손에 땀이 나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벗을 수 없어 힘들었거든요. 비지떡처럼 값싼 가격에 보온력은 부실한(?), 무늬만 보드 장갑인 제품이 더 잘 맞았습니다. 손에 열이 나도 덥지 않았고 영하 5도 이하 아주 추운 날에는 얇은 장갑을 하나만 더 착용하면 달릴 때 손이 시리지 않고 운동 중 에너지 젤을 먹거나 시계를 조작할 때에도 잠시 장갑을 벗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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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작년과 다르게 다행히 아직 큰 추위가 없고, 비나 눈이 덜 내려 바깥 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강추위가 몇 번 찾아왔고 특히 겨울비와 눈이 자주 내려 연습량을 확보하지 못해 애먹었거든요. 지금 같은 날씨가 계속되어 무난하게 겨울 운동을 마치면 좋겠어요. 기온이 낮거나 바람이 부는 것은 어떻게든 견디고 이겨낼 수 있지만 겨울비나 눈은 위험합니다. 바닥이 미끄러워 제대로 정확하게 착지와 도약이 안 되면 발목, 아킬레스, 종아리, 햄스트링에 부상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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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빠른 속도 고강도 훈련보다 적당한 속도로 긴 시간, 긴 거리를 달리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온 유지가 중요하고 러닝 복장에 자신만의 경험과 해법이 필요합니다. 연구하고 적응하면 달리기야말로 겨울 운동임을 깨닫게 됩니다. 몇 년 전까지 한창 스키에 푹 빠졌을 때에는 2월 기술선수권대회를 마치고 3월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기만 되면 기분이 우울하고 몸은 무기력했습니다. 지나가는 겨울이 너무 아쉬웠고 다가오는 봄에 속상했습니다. 달리기 덕분에 이제 더 이상 봄을 미워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겨우내 의지와 열정으로 준비했던 과정에서 결실을 맺을 봄 마라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겨울 운동인 달리기를 건강하게 즐겨 모두 원하는 바 이루는 행복한 봄 마라톤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