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 42.195km 서울을 달린다 - 01

3월 17일. 2024년 첫 풀코스 서울마라톤을 준비하며

by 아이언파파

2024년 3월 17일. 올해 첫 메이저 마라톤 대회이다. 서울마라톤, 옛 이름 동아마라톤.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코스로 마라토너들에게는 가장 큰 봄 축제이자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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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 1913~1978)는 놀이를 크게 4가지 아곤(agon), 알레아(alea), 미미크리(mimicry), 일링크스(ilinx)로 분류했다고 한다. 승부와 기록 등 결과에 집착하는 것은 아곤, 내기를 하는 등 행운을 시험하며 마음 졸이는 알레아,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즐기는 자체가 좋을 따름인 미미크리, 흥겹고 다양한 먹을거리 등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일링크스. 마라톤 대회라는 놀이를 각자 어떻게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정답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어떤 유형일까. 다른 분들은 어떤 취향으로 대회와 놀이를 즐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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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유아에 의하면 놀이를 즐기는 취향은 개인적인 삶의 길, 사회의 방향까지 결정한다고 한다. 아곤형이 많은 세상은 경쟁과 승리를 가장 중요시한다. 공정한 경쟁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미미크리형이 많다면 무슨 놀이를 어떻게 하든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일링크스형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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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향은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키와 마라톤, 3종 경기를 대하는 나는 역시나 아곤형에 가깝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대회에 임해야 한다 다짐하며 한편으로는 딱히 준비도 제대로 안 하고 대회 참가와 완주만을 목표로 하는 다른 이들을 보면 내심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거라면 이걸 왜 하는 것일까?’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공감력 제로에 가까운 까탈스러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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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빠르고 뛰어난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며 매번 필사적이었던 나였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아곤의 성향보다 미미크리의 성향이 조금씩 커져감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아이가 커가며 더욱더 바빠지는 일상과 나도 모르게 조금씩 노쇠화되고 있는 신체 때문에 점점 충분한 운동 시간 확보가 어려워져서.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며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점점 온순해지는 성격 탓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첫 번째 이유는 핑계일 가능성이 높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두 번째 온순해진 성격 때문 아닐까. 멀쩡하게 사회 생활하는 성인이 된 우리는 운동 대회 또한 수많은 ‘놀이’ 중 하나일 뿐임을 잘 안다. 하긴 사나운 인간이 계속 사나운 상태로 남아있고 온순한 사람이 계속 온순한 상태만 지속된다면 인류는 진화 단계에서 모두 멸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은 늙을수록 약해지고 아내는 점점 무서워진다.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해 필연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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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무수히 많은 놀이가 있는 것처럼, 마라톤 대회에서도 별처럼 많은 재미있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겨울에는 여러모로 나 자신 스스로 봄 축제 준비가 미흡했다. 마지막까지 아곤으로 최선을 다하고 대회 당일에는 미미크리로서 대회 자체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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