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일하는 나 : 실수보다 중요한 건, 그 뒤에 남는 감정들
'잘하려던 마음'이 언제나'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사회에 막 들어온 스무 살의 나는,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눈치껏 움직이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첫 직장, 입사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에서는 외부 손님들이 초청된 큰 행사가 열렸고,
단상 양옆으로 화려한 꽃꽂이 화환이 놓여 있었다.
그 장면이 마치 무대처럼 느껴졌던 내게는 꽤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첫날 행사가 끝나자, 선임 언니는 말없이 행사장으로 향했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그 선임은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후배인 나로서는 늘 긴장이 되는 존재였고,
선임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가 뭘 하는지만 따라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선임은 말없이 고무장갑과 봉투를 챙겨 꽃꽂이된 화환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떨떨한 채 뒤따라가, 그걸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선임과 함께 꽃을 뽑아 버리고 행사장을 정리했다.
그렇게 행사장은 말끔히 치워졌다.
잠시 뒤,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다른 부서의 여자 부장님이 굉장히 화가 난 얼굴로
우리가 아까 뽑아버린 꽃 뭉치를 손에 들고 들어오셨다.
"이 꽃, 누가 버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장님이 들이닥치자,
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삼켰지만,
함께 꽃을 뽑은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었었기에,
조심스레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선임 언니는 눈물을 터뜨리며 탈의실로 도망쳤고,
결국 나 혼자 부장님 앞에 서게 됐다.
부장님은 그런 나에게 성큼 다가오더니, 금방이라도 때릴 듯한 기세로 막말을 쏟아냈다.
"너는 가정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받은 애니? 자다 일어나서 너네 집 이불도 갖다 버리냐?
너네 부모는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나는 사실 이 모든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 말이 모욕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행사가 하루 더 남은 상황이었고, 부장님이 꽃꽂이 담당이셨다고 한다.
행사를 우리가 망쳐버렸으니 화가 나실만도 했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서 부장님과 과장님이 부장님을 간신히 진정시켜 돌려보낸 후
과장님이 조용히 내게 물으셨다.
"꽃, 네가 판단해서 뽑은 거야? 누가 시킨 거야?"
그 순간 나는 어떤 대답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도, 모든 걸 덮어쓰는 것도
어딘가 찝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찰나
때마침 선임 언니는 퉁퉁 부은 눈으로 탈의실에서 나왔고,
과장님은 바로 눈치를 챈 듯 선임 언니를 불렀다.
"ㅇㅇ씨, 네가 후배한테 지시를 해놓고 그렇게 울면서 자리를 피하면 어떡해?"
나중에 과장님은 부장님께 상황을 설명해 주셨고,
얼마 후 부장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사과하셨다.
"그날은 내가 좀 심했지? 얘기 들었다. 미안해."
그 후에도 한참을 많은 말씀 하셨지만, 다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사과를 해주셨다는 거에 기분은 깨끗이 풀렸던 거 같다.
그 후로 부장님은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가끔 회식자리나 우연히 동석하는 자리가 생기면 다른 분들께
"애가 참 묵묵하고 괜찮다고" 칭찬해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퇴사를 하던 날에는 직접 찾아와 선물까지 챙겨주셨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직장에서의 실수란, 단순히 업무를 잘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상황을 몰라서, 혹은 감정을 숨기지 못해서,
아니면 말을 아껴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회사에서 너무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생각보다 위험하다.
화가 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나의 사정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설명하거나,
혹은 무심코 한 말이
나중에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는 '비밀'이 없다.
내 말은 내 뒤를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오고,
나의 감정은 나만 기억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표정과 말투로 새어 나간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울며 숨었던 선임 언니, 죄송하다는 말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다가온 따뜻한 위로들.
사실, 그 모든 건 누구도 악의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단지, 서툰 선택과 미처 몰랐던 상황,
그리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겹쳐 만들어낸'사고'였을 뿐이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어떤 이들에게는 '강단'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무던함'으로 기억되었다.
그날의 실수는 잊혔지만,
그 감정은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조금은 서툴렀고, 조금은 억울했지만,
그 감정들은 나를 바꾸었고,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하며,
묵묵한 내가 되어가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