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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I. 3화 퇴사 후에도 상처는 계속됐다.

Part I. 일하는 나 : 떠났지만 떠나지 못했던 회사 이야기

by 이로우미




앞서 다니던 소기업은 1인 개인사업자를 운영하던 5명이 모여 설립한 법인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오래된 속담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회사는 오픈하고 1년 만에 직원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세 번째 회사는 문을 닫아, 나는 또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


‘이번엔 안정적인 곳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지인의 소개로 네 번째 회사에 지원하게 됐다.

이곳은 국내 손꼽히는 대학에 있는 연구소였고,

면접 제안을 받았을 때,

드디어 나에게도 ‘안정적인 직장’이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첫인상부터 뭔가 이상했다.

행정업무를 전담할 인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소장은 약속시간보다 30분이 훨씬 지나 나타났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 함께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은

재빨리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방으로 따라 들어갔고,

속닥속닥 나의 이력에 관하여 설명하는 듯했다.

그러자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력서는 됐어요. 선생님 마음에 들면 출근하라고 하세요.”


면접은 없었고, 감정도, 존중도 없었다.

불쾌했지만, ‘괜찮아. 들어가서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설득했다.


연구소는 총 13명 정도의 소규모 조직이었다.

나는 회계, 총무, 인사, 급여를 담당하는 유일한 행정직원이었다.

다른 구성원들은 대부분 석·박사 과정의 연구원들.

말 그대로 나는 그 안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이 연구소의 소장이자 대학교수였던 그는 늘 담배를 입에 물고 권위적으로 굴었다.

(이 당시는 실내흡연이 가능한 시기였지만, 조금씩 실내흡연을 지양하려는 추세였다.)

내가 그를 단독으로 대면하는 건 고작 한 달에 한 번,

급여와 지출 결재를 받기 위해 갈 때였다.

그 마저도 갈 때마다 그는 늘 학생을 대하듯 나를 지적했다.


“말끝 흐리지 말고, 또박또박 끝까지 얘기해.”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정확하게 보고하는 연습을 했다.

말이 너무 빨라지지 않도록, 그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늘 긴장하며 그를 만났고,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월요일 주간보고 회의자리,

나 역시 다른 동료들처럼 오늘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 연구원 둘이 지각을 했고, 소장은 그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화살은 지각한 이들에게 가지 않았고, 대신 만만한 내게 돌아왔다.


“야, 너 인사 담당 맞아? 직원들 관리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니가 무슨 인사담당이야.
평소에 어떻게 관리를 하길래 이렇게 애들이 출근시간도 못 지켜? 어? 내 말이 틀려?
그따위로 할 거면 너 나가. “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단지 화풀이할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지만,

당시의 내게는 그의 말이 사과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화가 났지만 일단 모두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떨어졌고,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못한 사과로 그 상황을 마무리했다.


옆에 앉아 있던 연구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또래였기에, 그 순간이 더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이들은 언젠가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좋은 길로 나아갈 사람들이었고,

나는 어찌 보면 그들보다 먼저 ‘회사’라는 세상에 도달했지만,

이런 모욕을 견디고 여기에 남아있는 내가 오히려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없이 작아지고, 한없이 위축된 순간이었다.


다음 날, 나는 소장을 찾아가 말했다.


“소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그는 처음엔 당황한 눈치였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감정적으로 굴지 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뇨, 어제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래도록 생각하고 있었고, 어제 소장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저는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만난 곳이 이 연구소였어요.
다른 직원들은 모두 소장님을 교수님으로 생각하고 따르지만,
저에게 소장님은 교수님이 아닌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느낀 건 소장님은 사장님이 아닌 교수님이 맞다는 생각을 했고,
이곳은 내가 찾던 회사가 될 수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곧 저도 서른이고 어린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아니라면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표 수리 부탁드립니다.”


내 결연한 표정과 단호한 말투에

소장은 나를 처음으로 이름이 아닌 ‘장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전까지는 "야" 혹은 아무 호칭 없이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본인의 말을 내가 오해했다며 연구소를 확장하고 싶은 의지와

그 뜻을 내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며 설득을 했고,

그날 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연구원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나의 퇴사를 말려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나는 퇴사를 번복했다,


그 후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더 이상 ‘무시’는 없었지만, 딱히 친절함도 없었다.

그저 그가 나를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정도랄까..


그 후 2년을 더 일했다.

하지만 연구소 운영구조로는 회사와 같은 운영이 불가능했고,

결국 4대 보험 직원을 모두 정리하게 되어 나 역시 퇴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다시 길 위에 섰다.


회사를 떠났지만, 마음은 쉽게 따라 나오지 못했다.

다시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조용한 밤이면 문득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고,

잠결에도 억눌린 감정들이 꿈처럼 피어올랐다.


혼자의 시간이 많아질수록, 생각도 많아지고 상처는 더 생생하게 아픈듯했다.

'왜 나는 늘 이런 상황에 놓이는 걸까?',

'내가 너무 부족했던 걸까?',

자책과 반추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감정을 아무 일 없던 듯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그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 위에 조용히 쌓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그 감정들도 조금씩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뒤편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나는 안다.

그때 그 모욕감도, 외로움도, 상처도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라는 것을.

떠났지만, 완전히 떠나지 못한 그 회사의 기억은

어쩌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 ‘이름 없는 선물’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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