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를 설계하며
" 내가 너 하는 꼴이 한심해서 그런다!"
퇴사 후 1년 동안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며 남편이 던진 말입니다.
그의 말속에는 저를 향한 걱정과 답답함이 뒤섞여 있었지만, 이 말을 듣는 저는 가슴속 비수가 되어 불안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잘못된 걸까?'
'나는 지금 한심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걸까?'
불안은 밀물처럼 밀려와 끊임없이 나에게 되묻습니다.
적지 않은 연봉, 대기업 타이틀, 사회적으로 가장 '몸값'이 높다고 여겨지는 시기에 제가 내려놓은 것들은 주변 사람들의 아쉬움 섞인 말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그 회사를 왜 나와!"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과 충고 속에는, 누구도 나에게 '힘들었지', "괜찮아'라고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산다'는 말로, 제 마음을 외면하고 현실에 순응하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매일 밤 잠 못 이루는 시간은 늘어갔고, 불안은 그림자처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명상이었습니다.
은퇴 후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고 계신 지인분께서
"남의 시선과 걱정에 눈치 보지 마세요.
명상을 해보면 마임이 조금씩 가벼워질 거예요."라고 건네주신 선물 같은 조언이었죠.
처음에는 명상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온갖 목소리가 가슴 안에서 뒤엉켜 몸부림치듯 터져 나와 10분을 가만히 앉아 있기도 어려웠습니다.
명상 영상도 들어보고, 향도 피워보며, 여러 수단을 꾸준히 시도하고 노력한 끝에, 이제는 명상은 제게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으로 조용히 자리 잡았습니다.
마치 과부하 걸린 컴퓨터를 로그아웃하고 고요함을 느끼는 것처럼, 제 마음은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복잡했던 내면의 UI가 차분히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필사는 아들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는 아들은 늘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ADHD 성향이 있는 아이는 감정 컨트롤을 잘하지 못해, 물건을 던지거나 자신을 자학하는 행동이 사춘기 들어 심해졌습니다.
1년의 노력 끝에 지금의 아들은 많이 안정되고 화내는 횟수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저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래서 아들과 저,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될 만한 글을 필사하고, 그것을 소리 내어 읽어주거나 짧은 편지로 만들어 아들 책상에 올려두는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 제 마음은 고요해졌습니다.
아들을 위해 시작한 작은 습관이, 어느새 저 자신에게는 가장 강력한 '마음 안정제'가 되어 마음의 평화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오늘 필사한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그걸 할 수 있겠어?"라는 '멸시'를 당합니다. 가능성 자체를 하찮게 취급하지요. 다음에는 '굳이 그걸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반대 의견'에 부딪치게 되죠. 마지막으로, 마침내 꿈을 거의 다 이룰 것 같은 단계에 오면, 그들은 '변명'으로 가득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죠. "너니까 가능하지. 나는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불가능해." 꿈을 이루면 어떻게 될까? 명시하고 반대하던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와 따스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처음부터 네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혹시 지금 누군가 여러분의 꿈을 멸시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하나요? 그건 우울한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의 꿈이 누가 봐도 멋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이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명상과 필사는 제 마음의 UI를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 같습니다.
복잡하고 무거웠던 인터페이스를 차근차근 정리하고, 불필요한 기능과 정보를 삭제하고, 정말 중요한 것들만 남겨두는 작업 말입니다.
누군가 저의 선택을 비난한다면, 이제는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제 꿈이 그만큼 멋지기에,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비난은 오히려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니까요.
40대. 새로운 출발선에 선 우리에게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정된 것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용기.
주변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용기.
가끔 주변의 비난에 불안과 걱정이 내면에서 올라와도 명상과 필사를 통해 이겨낼 수 있는 지금의 '나'가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더 나은 우리 자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