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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학년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 시대

by 강 산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 스무 살의 나. 그 당시 내 관심사는 새내기 치고 꽤 미래지향적이었다. 또래와 술 마시며 노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때는 내가 다른 새내기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모두들 그렇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 주변에도 술만 마시며 놀던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 친구가 있어도 관심사가 달라 친해지기 어렵기도 했고.)


술을 마시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스무 살의 나는 놀 때마다 술을 마시는 관행에 불만을 느꼈다. 모두가 “새내기 때는 마시고 놀아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지만, 나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술찌”였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잠이 쏟아지는 안타까운 알고리즘을 지녔기에 술은 그저 알코올램프 맛 나는 수면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놀지 못했던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을 흔히 “불안의 시대”라 부르지 않나. 겨우 스무 살이었던 나는 참 많이도 불안해했다. 미래는 나에게 투명한 족쇄이자 목에 들어온 칼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라는 말은 “지금 당장 열심히 살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 될 거야”로 들렸고, “여러 가지를 도전해 봐”라는 말은 “네 학과는 취업을 보장하지 않으니 스펙을 쌓아야 해”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아래는 2019년, 내가 입학한 해 3월에 쓴 일기 발췌록이다.


“너무 일을 벌여놔서 힘들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 불안하다. 할 일은 쌓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늘어나는 스케줄이 더 스트레스였나 보다. 나는 꿈만 많고 그걸 다 해낼 능력은 없는 바보다. (중략) 나 스스로를 혹사시켜서 미안하다.”



발췌록

이렇게 불안은 나를 내모는 채찍이 되어 매일 끝이 없는 경주에 나서게 했다. 다른 말들이 나보다 앞서 달리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내 능력 이상으로 일을 벌였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당연히 지쳐서 모든 걸 놓아버리는 시간이 1시간, 2시간씩 생겼고, 그조차 견디지 못해 자책하며 위의 일기를 썼다.


혹자는 스무 살부터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어쩌면 내가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낀 불안이 정말 터무니없는 환청이었을까?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말을 귀가 터지도록 들어왔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너무 과장된 듯이 보이는 이 환청 덕분에 나는

10개의 대외활동,

6개의 외부교육,

5개의 수상 이력,

4번의 아르바이트,

2번의 인턴,

4학년 1학기 기준 학점 3.99

의 성과를 이뤄냈다. 요즘 취업 시장에서 나쁘지 않은 스펙 아닌가? 어쩌면 아직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당장 저번 주만 해도 서포터즈에 떨어진 걸 보면 아직 멀었나 보다. 스무 살부터 불안에 잠식당해 쉼 없이 달려왔지만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다.


이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나의 포트폴리오, 개인 블로그, 일기에 캘린더까지 다 뒤져봤는데 일주일을 내리 편히 쉰 날이 없더라. 모두 내 선택이었지만 너무 독하게 달려와 질릴 정도였다. 마치 하루라도 푹 쉬면 경주마로서의 자격을 잃고 아무도 나를 선택해주지 않을 것처럼 나는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이며 고문해 왔다.


그렇게 1학년이 된 우리는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과연 기호의 문제일까?



대외활동 사이트를 매일같이 살펴보는 20살의 나에게


네가 무엇이든 도전하며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어. 특히 학교 포털 공지사항을 매일 보는 습관을 들여줘서 고마워. 그 덕에 모든 외부교육을 무료로 듣고, 여러 공모전에 나가 상도 탈 수 있었어. 하지만 너무 불안해하지는 마. 불안해한다고 미래가 바뀌지는 않으니까. 현재를 믿는다면 미래도 믿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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