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G와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처음으로 소아과에 갔다. 걸어서 15분 거리인데도 혹여 추운 날씨에 아기가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염려스러워 차를 끌고 갔다. 막상 가보니 남편은 주차장이 없어 우당탕탕, 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아기가 들어있는 바구니 카시트를 들지 못해 우당탕탕. 엄마의 품에서 처음 주사를 맞은 아기는 꺼이꺼이 울었고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던 아빠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온 아기는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눈이 퀭했다. 내 얼굴도 만만치 않았다. 예방접종 하나가 이렇게 난리일 일인가. 아기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첫걸음마를 배우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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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이사 온 지 1년 차. 오며 가며 가벼운 인사만 나누던 이웃이 우연히 아기 출산 소식을 듣고 집 앞에 과일들과 메모를 남겨주었다. 예쁜 딸 낳으신 것 너무 축하드린다, 로 시작되는 쪽지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이웃에게 출산을 축하받는 일이 흔치 않은 요즘 세상에, 서로에게 관심을 끄는 것이 최선이요 피해를 주지 않으면 최고의 이웃인 요즘 세상에 참 만나기 힘든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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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일
아기의 수유텀이 최대 5시간이 되었다. 효孝 라는 게 따로 뭘 해야 하는 게 아니다. 생후 1년간 잠을 잘 자주면 그게 효다.
33일
산후도우미 이모가 있는 시간에는 낮잠을 푹- 자고, 이모가 퇴근하면 꺼이꺼이 울어대는 이 아기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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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
남편이 감기에 걸렸다가 회복되자, 곧이어 내 코가 막혔다.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는다. 혹 아기에게 옮길까, 수유를 할 때나 아기를 안아 재울 때마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날이 추워 자주는 안되지만 하루 한 두 번은 꼭 환기를 시키고 있다. 24시간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유의미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뭐라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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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일
하지만 기어코 옮았다. 간간히 재채기를 하고 코를 킁킁거리는 정도이지만 속상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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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일
아기가 코막힘으로 숨을 잘 못 쉬는 것 같아 소아과에 갔다. 노련한 중년의 선생님은 아기를 꼼꼼히 진찰하고는 말했다. '별로 심하지 않네요. 이 정도는 식염수로 코세척만 해줘도 금방 좋아져요. 코 빼주는 기계는 아직 어리니 쓰지 마시고 식염수 스프레이만 아침저녁 한 번씩 넣어주세요.' 진료는 그렇게 1분 만에 끝났다. 진료비는 천 원. 걱정할 게 없다니 다행이지만 뭔가 유난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고 민망스러워 허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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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프린세스 메이커를 좋아했다. 노동을 하고 기술과 예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활력이 생겼다. 제인 에어의 성장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랬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영상을 보면 청소를 하고 싶어 진다. 말을 잘하는 강사의 수업을 들으면 언변이 좋아졌다. 그런고로 자기개발 컨텐츠를 꾸준히 보며 살았다. 즉, 나는 타인과 환경에 영향을 아주 잘 받는 인간인 것이다.
지치고 지쳐 '누가 나 좀 딱 기절시켜 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마다 에너지를 주입할 수 있는 컨텐츠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괜찮은 것을 만나면 조금 생기가 돌았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나 함께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나 나와 같이 양가의 도움 없이 홀로 퇴근하는 남편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며 신생아를 육아하는 사람들의 글과 영상이었다. 그런 것조차 없었다면 나는 아기에게 두 번 웃어줄 것을 한 번 밖에 못 웃어주는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자신의 육아 이야기를 시시콜콜 인터넷상에 나누어준 수많은 엄마아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좀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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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
분리수면을 일찍 하기 위해 아기 침대를 고르고 있다. 신생아들이 많이 쓴다는 이동식 작은 침대는 사용하지 않았다. 디럭스 유모차에 딸려있는 캐리콧으로 어찌저찌 한 달을 버텼다. 사실 바퀴가 없다는 점 빼고는 아기용 침대와 다를 바가 없어 별로 불편함을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쭉 뻗은 아기의 팔이 양 끝에 닿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의 속도를 고려했을 때 캐리콧으로 몇 달은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
인기 있는 아기 가구는 왜 쉽게 살 수 없는 건지 나는 아직도 의문이다. 우리는 아이가 커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슈퍼싱글 사이즈에 창살 가드와 문이 있는 원목 침대를 원했다. 선택지가 넓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은 침대를 두 개 찾았는데, 둘 다 지금 주문하면 두세 달 후에나 물건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떡 하니 붙어있었다. 아니 이것 참, 사람들이 아기를 너무 안 낳아서 돈을 받아야만 물건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뭐 어쩔 도리는 없다. 우연히 두 브랜드 중 한 군데 매장에 집 앞에 있어 그쪽에 먼저 방문해 보기로 했다. 아직 병원 말고는 외출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날이 추우니 이 뽀시래기 같은 아기를 데리고 잠시 걸어가는 그 거리도 염려스러워 해가 제일 잘 드는 낮 시간에 다녀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