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우유는 죄가 없지만
일일육아 6 / 출산 24-29일
24일
눈을 뜨니 저녁 6시였다. 산후도우미 이모의 퇴근은 5시. 집이 너무나 고요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헐레벌떡 거실로 나갔는데 아기는 거실에 내놓은 이동식 아기침대에서, 고양이는 소파에서 곤히 자고 있다. 방을 하나씩 들여다보다 뒤늦게 확인한 핸드폰에는 '곤히 자길래 조용히 나왔어요. 좋은 밤 보내세요.'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 감사했다. 두 시간을 내리 자는 일이 너무나 간절한 날들이라.
+ 다행히 회사에 있던 남편이 거실 cctv로 모든 상황을 파악한 후 카메라를 켜두고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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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혼자 있는 시간에 아기가 큰 일을 봤다.
임신 막달부터 손가락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뼈가 뻣뻣해지고 잘 구부러지지 않았으며 잘못 누르거나 힘을 주면 통증이 상당했다. 하지만 막달이라 괜찮았다. 출산만 하면 회복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출산 후에도 손가락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노산이라 그런 걸까.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속이 상했다. 손가락이 불편해서 가장 힘든 것은 아기를 안을 때, 특히 아기가 큰 일을 봤을 때다.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엉덩이를 닦는 일은 목욕 다음으로 높은 난이도를 요구한다. 혹여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아기를 놓칠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언제쯤 두려워하지 않고 아기의 기저귀를 열어볼 수 있을지. 괜한 손가락만 쭉쭉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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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2시간 수유텀을 벗어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아기를 길게 재울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간혹 먹던 초코우유 때문일까? 초코우유에 들어있는 카페인 때문일까? 남편은 유의미하지 않은 양이라고 했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어 초코우유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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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아기가 칼같이 3시간 수유텀을 지키기 시작했다. 초코우유를 끊어서 한 시간을 더 자는 것만 같다.
아니, 사실 나도 안다. 이건 까마귀가 날고 배가 떨어진 것뿐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다시 초코우유를 마실 수는 없다. 내 입장이라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초코우유는 죄가 없지만, 당분간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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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저녁 6시. 해가 떨어지면 빼액 숨 넘어가는 울음이 시작된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내 핸드폰 검색 기록에는 '신생아 강성울음', '신생아 마녀 시간' '마녀시간 극복하기' 등이 빼곡하다. 눕혀도 울고 안아줘도 울고 쪽쪽이도 싫단다. 조용한 시간은 오직 입에 젖을 물었을 때뿐이다. 두통이 오고 눈이 침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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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이대로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산후도우미 이모에게 '아기 그냥 분유 좀 먹여달라'고 부탁하고 쓰러져 자버렸다. 꼬박 4시간을 잤다. 자는 동안 꿈도 꾸지 않았고 아기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눈을 뜨니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이모는 부스스 일어난 나를 보며 아기가 분유를 40ml도 채 먹지 않았다며, 바로 모유수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 엄마가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하며 주섬주섬 젖을 물렸다. 아기는 꼬박 50분 동안 젖을 먹었다. 이마에 땀이 한가득 맺혀 포실포실한 머리카락이 흠뻑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