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목욕 교육을 받았다. 신생아실 선생님은 아기를 뒤집고 눕히고 자유자재로 다루며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시켰다. 유산균을 먹이고 바디 로션을 삭삭 바르고 속싸개까지 짠. 나와 남편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엄두가 안나는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우리도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을 거야. 솔직히 방금 본 광경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본 거라곤 선생님의 현란한 손놀림뿐이고, 믿을 것은 오직 촬영한 동영상밖에 없지만 뭐 어떻게든 되리라 굳게 믿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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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외래 진료를 다녀왔다. 자궁이 잘 수축하고 있는지, 수술 부위가 잘 아물었는지만 간단히 확인하고 진료가 끝났다. 이제 겨우 아기를 낳은 지 이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기가 곁에 없는 것도, 혼자 차를 타고 병원을 가고, 혼자 음료를 사 마시는 것도 낯설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와 조리원 앞에 있는 카페에서 카페인이 없는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젖이 가득 차 저릿한 가슴을 옷으로 여미며 생각했다. 분명 시간은 고르게 흐르고 계절도 여전한데,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것 같다.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차원의 문처럼, 어떤 문을 열고 돌아갈 수 없는 다른 곳으로 건너온 기분이다.
그나저나 내일이 조리원 퇴소라니, 애 낳은 것도 안 믿기는데 조리원까지 끝났다니. 이거 진짜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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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짐을 미리 차에 싣고 돌아온 남편이 조리원 선생님으로부터 아기가 든 카시트를 건네받았다. 선생님의 따뜻한 인사를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남편과 나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가 세상으로 나가는 첫 순간,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저렸다. 늦겨울이라 밖이 쌀쌀해 미리 히터를 틀어둔 차 안으로 아기를 얼른 넣었다. 서툰 손길로 바구니 카시트에 벨트를 두르고 아기의 배를 토닥이며 집으로 향하는 길. 익숙한 집으로 간다는 기대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염려로 창 밖에 무엇이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채 허공을 바라봤다.
집에 도착하니 고양이가 므와아아앙 하며 뛰어나왔다. "모카야 누나 너무 오랜만이지. 누나도 반가워 반가워. 근데 인사부터 해야 돼. 앞으로 우리랑 같이 살 아기야. 환영한다냥- 해줘." 아기를 역류방지쿠션에 눕히고 스트랩으로 둘러 거실 한복판에 두었더니 고양이가 조심조심 아기의 냄새를 맡으러 왔다. 그리곤 캣타워 위로 올라가 멀찍이서 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반투명 커튼을 쳐도 햇살이 잔잔하게 들어왔다. 속싸개에 어설프게 싸인 아기는 쿠션 위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 풍경을 나란히 서서 바라보았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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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아침 9시 산후도우미 이모가 도착했다. '차분하고 깨끗한 성격,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데에 불편함이 없는 분이었으면 좋겠다'가 나의 요청 사항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업체는 나의 요구사항을 잘 반영해 주었다. 이모를 보자마자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적어도 염려했던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모는 아기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시스템에 대하여 설명한 후 간단한 아침을 만들어 주었다. 요청한 토스트와 잼과 사과, 우유가 식탁 위에 예쁘게 차려졌다. 식사를 마치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나자 이모가 말했다. "산모님, 내가 아기 트림시키고 재울 테니 들어가서 좀 쉬어요. 어제 거의 못 잤을 텐데." 아아, 도우미 이모의 뒤로 후광이 보였다. 천사가 오셨구나 천사가.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내가 아기 볼 테니 좀 자요' 만큼 행복한 말은 없다. 지난밤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감사 인사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기절하는데에 1초도 걸리지 않았다.